밤, 비바람 거세다.

가끔 흐렸던 오전이었다.

고추밭에 있었다.


수행을 일찌감치 마치고, 새벽밥을 먹었다.

간밤에 수행방에서 묵은 객 하나도 나와 같이 밥상에 앉았다.

차까지 달여 내고 나니 7시 전에 나서겠다던 걸음이 그만 시간을 넘는다.

달려가 5천 포기가 있는 고추밭.

학교 아저씨와 나서서 장순샘네 일을 거든다.

날도 좋네.

“누구 덕?”

“물꼬 덕!”

그리 놀았다.

물꼬가 하는 일들에 늘 절묘한 하늘이라,

오늘도 고추 따기 딱 좋게 서늘하다고 그리 갖다 붙인.

할머니 두 분은 6시부터 나왔다지.

상품 가치를 위해서는 꼭지가 통일돼야 한단다, 다 붙이든, 다 떼든.

“추석 지나고도 하루 같은 멤버로!”

“할머니들이 무슨 재미가 있다고?”

“아니요. 재밌었어요.”

산기슭 밭에서 사람의 소리가 반갑고 고마운 수확작업이었다.

점심께 맞춰 일이 끝났고, 국수를 먹으러들 갔네.

밭에서 빨간고추를 담은 컨테이너를 다 내오자 떨어지기 시작했던 빗방울.

“누구 덕?”

“물꼬 덕!”

그리 놀았더라니까.


대파며 가지며 파프리카를 실어오다. (나는 실한 대파만 보면 탐을 낸다.)

아, 곧 한가위, 명절 선물로 실한 포도도 장순샘은 또 한 상자 실어주더라.

그네도 올해는 포도농사를 안 지었는데...

늘 받는 게 더 많은.

“오후에는 고추 씻어야 되지?”

“아이구, 못해요, 낼 해야지.”

힘들어 그렇다고. 그렇겠네. 다녀와 완전 쓰러졌다.


무 밭 곁에 알타리무를 심었다.

이제 밭은 겨울 먹거리들을 기른다.

땅 아래서 두더지들은 그들의 삶을 열심히 사는 중이더라.

구멍을 헤집어 막아가며 둑을 고른 지난 이틀이었더랬다.

우리는 또 땅 위에서 우리 삶에 열심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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