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31.물날. 비바람 치다 갬

조회 수 802 추천 수 0 2016.09.18 15:06:15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하늘이 말짱해진 오후였다.

아침까지 비바람 거칠었고,

먹먹했던 하늘이 열리고서도 바람은 기세를 꺾지 않았다.

종일, 생각난 듯 빗방울이 한 차례씩 지나고는 하였다.

바람은 달골 햇발동 데크의 작은 화분들을 쓰러뜨려놓았다.


밤 9시, 읍내 한 마을에 갔다.

2년여 영동에서 살았다는 이가 다른 마을(대해리랑 머잖은 마을이다)로 이사를 하며

책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엊그제 있었다.

또박또박 남겨달라는 자동응답기의 요청에 정말 그렇게 꼭꼭 박듯 남긴 음성이었고,

전화를 넣으며 물꼬를 어찌 아냐 먼저 물었는데,

시작은 모르겠으나 물꼬 누리집을 드나들었더란다.

그런데, 주소를 받았을 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나는 그 집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족히 10여 년 전이었을 거다.

읍내를 갈 때면 가는 걸음에 여러 일을 한 번에 하고 오려 몰아서 가곤 했다.

일이 꼭 시간마다 착착착 이어지는 것은 또 아닌지라,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서 다음 일이 이어지기도 하여

외진 곳에 차를 세우고 조용히 책을 보거나 쉬기도 했다.

일종의 숨어드는 공간이 필요했고,

외곽으로 몇 곳의 장소를 그렇게 찾아들곤 하였다.

그 해는 한 주의 사흘 반에 24학점을 수강하던 공부도 하고 있어

눈을 붙일 만한 곳이 특히나 절실했다.

그때 지금의 그 댁이 위치한 곳은 막다른 골목의 제법 너른 공터를 끼고 있었는데

그 집 담벼락 아래 차를 세우고 잠깐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거나 교무실 일로 통화를 하고는 하였네.

긴 시간 흘러 오늘 그 담 아래 차를 다시 세웠다!

연인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창 아래이기라도 한 양 감정이 밀려오더라.

인연에 대해,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게 되데.


자정께 문자를 주는 몇 이들이 있는데,

한 사람이 건강을 챙겨주었다.

몸살 괜찮냐고. 코가 맹맹한 아침에 통화를 한 뒤여.

고마울 일이다.

나를 염려해주는 이가 이 지상에 있다는 것이 왈칵 고마웠다.

한밤 인적 드문 곳에서 만나는 맞은 편 차의 불빛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귀한 깊디 깊은 산골짝의 밤처럼

아마도 텅 빈 달골에 칠흑의 밤에 들어온 까닭일 테다.


일이 많은 하루였다.

오전 내내 비몽사몽, 어제 고추 따는 일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늦은 수행을 하고 낮밥을 먹고서야 움직였다.

아침부터 초등 1년생 부모의 상담의뢰가 있었고,

계자를 다녀간 아이의 부모 전화가 있었다.

유기농장 광평에 나가 사과즙을 실었고,

군청에 들어가 몇 가지 일을 처리했고,

건축사무소도 연락을 취했다.

몇 년 전 달골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려고 받아둔 허가 문제가

집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시간 동안 해마다 면허세를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기숙사에 있는 아이를 만나 두꺼운 이불을 전했고,

보일러 수리 아저씨한테 양해를 구하는 통화를 하다.

히터봉을 혼자 갈아보겠노라,

비싼 수공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하다.

그리고 책을 실으러 갔던 것.


밤 10시, 실어온 책을 책방에 부렸다.

불이 들어오는 지구본도 함께 왔다,

불을 켜면 별자리가 보이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한 면을 읽게 되기도.

그의 관심이 나랑도 닮아

겹치는 책도 많았고, 읽고픈 책도 많았다.

소장할 만한 책도 꽤 되었는데,

귀한 책을 선뜻 내주어 고마웠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으니

예 와서 또 읽으십사 했다.

그리고, 이삿짐을 부리고 편한 날 국수를 혹은 차를 내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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