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장을 보고 들어왔다.

이번 명절에는 연휴 지나 주말에나 사람들이 들린다고들 한다.

설과 추석, 그렇게들 물꼬로 드는 이들이 늘 있다, 꼭 명절을 예서 쇠지 않더라도.

집안 어른들은 지난 주 뵙고 왔다.


이튿날, 한가위 연휴 첫날.

저녁상을 물린 뒤에 한가위 선물로 온 책 하나 펼쳤다.

큰 문학상을 받고 온 나라가 다 읽고 있던 책이라

외려 그 번잡한 때를 지나 읽지 싶던 책; 한강의 <채식주의자>.

아팠다.

세 편의 연작소설 그 첫 편 ‘채식주의자’.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되고자 한 게 아니라 되어버렸다.

대개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 생각, 호불호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부처의 위대함은 이 통찰에 있었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이 주관적 느낌 감정과 무관하다는 걸 안 거다.

그래서 외적 어떤 성취를 향한 갈망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망까지 ‘멈춘’ 것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영혜는 ‘멈춘’ 것이다.

(그래서 영혜가 행복했느냐 하는 것은 논외다. 우문이다. 그런 것에도 ‘멈췄’으니까.

굳이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불가식으로라면 열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음, 이건 진즉에 유발 하라리도 말했네.)

영혜는 연작의 두 번째 편 <몽고반점>에서 그 멈춤을 보여준다.

되고자 해서 된 게 아니라는 것이 이 소설의 비범성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 편을 읽을 땐 채식주의자가 되는 영혜에게 관심이 당연히 기울었다.

하지만 두 편을 다 읽고 나면 영혜의 언니에게,

<나무불꽃>까지 읽고 나면 영혜의 언니가 꼭 세 번째 편의 화자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 둘이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아홉 살이던 영혜가 우리 그냥 돌아가지 말자 했던)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혼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을 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p.191~192)


해설에서도 밑줄.

‘모두가 각자의 열정으로 나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 공간에서 누가 가장 고통스러운지를 묻는 것은 분명히 우문(愚問)일 것이다. 그러나 현답을 알려줄 누군가를 향해 이 우문을 그저 묻고 싶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울지 모른다.’(p.238)


내게 성실함이 있다면 그 역시 비겁한 생존의 한 방식이지 않았을까...

좋은 영화 좋은 소설 좋은 예술품은 그것이 우리를 생각게 한다는 것이다.

전수일과 장률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것 역시 나를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거칠긴 해도 김기덕 영화 역시)

<채식주의자>도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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