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 사흘째.
어머니, 아들이 있어야겠지?
그러게.
못 쓰고 있는 블루투스를 살려준 아이.
맞아, 우리 서로 없으면 안 돼, 동태 돼.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명태 가족일세.
없으면 동태 된다.
“한 팩에 세 도마가 들어있는?”
“그렇네.”
그렇게 또 낄낄댄다.
가족! 날이 더워져도 벗지 못하는 두터운 외투, 라고 일찍이 가족의 부정성을 말해왔는데,
힘의 원천이 또한 가족이라, 그 긍정성에 주억거리는 하루.
“딱 서른 배네!”
자주 아이의 어린 날을 생각한다.
그렇네.
오동통, 정말 귀여웠는데.
그런 날이 있으니 저 고릴라 같은 놈이 아직 아이로 봐진다.
그런 한국영화가 있었다. 어미가 아들의 범죄에까지 바쳐지는.
자식이어서 그렇구나, 그건 핏줄이어서라기보다
그 아이를 눈에 넣어도 안 아팠던 시간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니겠는지.
야삼경.
오늘도 12학년 수험생과 식탁에 마주앉아 있다.
저는 제 일을 하고 나는 내 일을 하고,
아비도 거실에서 책을 보고 앉았네.
며칠 전부터 수시원서 접수 중.
동료들이 이제야 대전에 나가 학원에서 자소서 첨삭을 받는다느니
아직 자소서를 쓴다느니 바쁜 틈에
일찌감치 마무리를 해두고 한가위 연휴를 공부하는데 긴히 잘 쓰고 있다.
고맙다.
다들 말이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좀 해주기로!
그게 서로를 돕는 일.
먼 곳에서 글이 왔다.
교환학생으로 가서 짐을 풀고 생활을 잘 시작하였노라는 전언.
추석을 잘 쇠셨는가 안부.
여기를 무에 염려하느뇨, 낯선 이국의 날들이 만만찮을 것을.
다행히 인근에 잘 아는 어른이 계신다 하니,
거기서 저녁을 먹으며 여러 안내도 받았다 하니
그랴, 늘 좋은 어른의 그늘이 그에게 있더라,
시름 놓다.
잘 지내는구나, 그래 서로 그리 지내주는 게 서로를 돕는 일이고 말고.
비 내렸다.
학교는 조용하다.
학교아저씨도 올해부터는 경기도로 귀성 중.
명절 인사를 오겠다는 이들은 해날로 날을 같이 두었다.
종일 비가 내렸다.
낡고 너른 살림, 맑으면 또 어딘가로 가서 움직일 테다.
그런데, 젖은 날로 가마솥방 안에서 종일 바느질을 했다.
조각이불을 만들다 밀쳐둔 지 또 여러 달이었더랬다.
가장자리 면을 빼고도 가로세로 12cm(시접 빼고) 조각이 258개.
258개를 이은 뒤 가장자리 면을 붙이고 솜을 대고 뒷면을 붙인 뒤
다시 258개 네모난 조각에 하나하나 바늘땀을 넣는데,
마흔 개가 좀 못 되게 남았던 것을
쉬엄쉬엄 사이사이 한 이틀 하겠네 했더니
어, 다 했더라.
와, 만세.
앞뒤로 꼼꼼히 살펴 혹여 빠진 칸이 혹은 빠진 줄은 없나 살피니, 정말 끝.
만만세!
무슨 실력인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만 들이면 될 일,
그걸 하고도 뿌듯하더라.
하기야 마지막 물기를 닦고 찌꺼기를 버리고
다시 행주를 빨아 탁탁 털어 귀를 맞춰 반듯하게 너는 설거지 한 번의 끝에서도
마치 대단한 일인 양 뿌듯함이 일기도 하지 않더냐.
다시 조각들을 잇기로 한다.
이불과 함께 놓을 베개가 될 수도 있겠네 했지만
마음에 남아있던 일 하나 있었네.
아끼는 한 벗의 베란다 창에 여름이면 햇살이 마구 쏟아졌는데,
거기 모시발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가 커튼을 만들어주어도 좋으련 했다가
아하, 이 천들로 작은 막 하나 지어줘도 좋겠구나.
사람을 생각는 일 기쁘다.
조각이불에 쓰였던 크기대로 36개의 조각을 이었고,
어느 하루 인근 도시에 나갈 일이 있을 때
무명을 사다 가장자리와 뒤판을 붙여야겠다 한다.
한참 소식 없었던 벗과 그 참에 또 연락 한번 닿겠다.
며칠 전 경주 규모 5.8 지진, 78년 계기지진 관측 이래 한국에서 가장 큰 진도라 했다.
이곳까지도 오래 집이 흔들렸다,
무슨 일인가 밖을 나가봐야 할만치.
계속 여진 중이라는.
그런데 비가 몰려오고 있다.
주말에는 큰비일 거란다.
북한도 홍수가 해방 후 첫 대재앙이라 부를 만큼이라지.
아무쪼록 무사하고 또 무사들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