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비는 선생이었다.
그의 아비처럼 그도 무릎이 좋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운동도 멈춘 채 안에서만 쓰던 글이 도저히 진척이 없던 어느 날
목발을 짚고 밖을 나가 세상을 관찰하며 글이 되었더라지.
글이란 무릎으로 쓰는가 싶더란다.
그리고 아비 이야기를 했다,
당신 그 무릎으로 아이들 가르치고 식구들을 건사하셨구나,
슬하라는 말이 사무쳤다지.
膝下!
양가 부모님 슬하에서, 흔히 자기소개서를 그리들 시작하는, 부모 곁이라는 그 낱말은
‘무릎의 아래’!
몸을 잘 놀려야겠다는 생각이 속 깊이 미쳤다.
글이 글이 아니라 사는 게 시이고 소설인 나일진대.
바느질감 하나를 완성하다.
조각천을 잇고 정련한 광목을 가장자리에 둘러 창문 막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을 생각는 시간이 좋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색했다.
그러면서 인색하다 느껴지는 상대들에게 야속하기 자주였더랬다.
곧 멀리 갈 벗이다. 가는 곳에서 아름다이 쓰이길.
시작해놓고서야 가을학기 수업 시간들을 의논하고 있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들어와 하는 수업이 있을 것이고,
바깥수업을 나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실질 수업은 10월과 11월 두 달로 놓았다.
나머지들은 어른 공부들일 것이다.
고맙다.
일가친지를 잃고 먼 산마을에 흘러들어 홀로 삶을 꾸리는 한 사람,
20년간 명절을 잘 쇠어본 기억이 없다고,
그럴 때 물꼬 오라했더니 제 우울한 표정이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 그저 혼자 보냈다며
한가위 훌쩍 지나고 소식 보내왔다.
서로를 기대며 산골 삶을 그리 살지라.
사람이 사람에게 깃드는 고마움!
멋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비결을 오래 관찰했다는 이가 말했다.
그냥 멋있는겨.
굳이 비결을 찾으라 하면
내가 어찌 보이고 싶다 그런 생각도 없이 그저 제 삶을 열심히 사는 게 다여.
그가 말했다,
멋있다는 건 혼자 두는 장기처럼 결코 상대를 속일 수 없는 세계야.
그대는 멋있는 사람이신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