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기는 하나 화창하기 드문 날들이 오래이다.


학교아저씨는 운동장의 마지막 풀베기, 이제 풀이 더는 자라지 않는 때라,

그리고 교무실에서는 대기업 입사 원서 자소서 몇 장을 보고 있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품앗이샘들 꺼.

청년실업의 그 현장에 있는 친구들.

기도하듯 보노니, 그렇게라도 손을 보태노니.


아비가 리스본에 출장 중이라

오늘은 주말이면 들어오는 아이를 데리러 한밤에 읍내를 다녀왔다.

조금 일찍 나가 오랜만에 서점에도 갔네.

80년대의 거리에서 젊은 날을 보냈던 이들이 그곳으로 모이고는 한다.

산마을에서 언론도 끊고 살다가

성주 사드 반대 집회 영상들을 보며 이 시대를 살폈고,

서울의 대안대학 소식도 들었다.

문학서와 과학서와 교양서 하나를 집었다.

40회가 된 한 문학상을 받은 소설,

내가 사지 않는 동안에도, 도서관에서 책읽기의 욕망을 해소하고 있는 동안,

그 상은, 그 출판사는 계속되고 있더라.

고마웠다.


아이랑 돌아오는 차에서 지난 한주를 얘기하며 아, 문득 그런 생각 드는 거다,

이런 시간도 이제 머잖았구나.

12학년, 수능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고3,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기 쉽겠구나 싶어서도 더 열심히 하는 중이란다.

결과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시험지를 다 내고 내가 이거 할라고 그리 죽도록 했나 싶을 정도의 허탈감이 들만치

후회 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엄마 아빠의 이해와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라고 했다.

아이는 겨우 9학년에 학교 공부를 시작하고도

괜찮은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성적에 이르게 된 바탕에 그 힘이 컸다고.

(이게 말이지, 결코 붙었다는 말이 아님!)

부모의 경제력이 유리한 조건인 것은 맞다.

아무렴 금수저가 나을 테지.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또한 아니다.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노력과 열정이고

그것은 부모의 격려와 믿음 속에서 빛난다는 말은 정녕 옳다.

아이는 자주 말해왔다.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성실의 문제이고

이 성실은 무슨 일을 하거나 좋은 바탕이 될 거라고,

열심히 하면서 세상살이를 또한 공부중이라지.

수시를 쓰면서 여러 전형들 앞에 이게 다 무엇인가,

이러니 정보부족으로라도 지방 명문고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겠네,

부모 정보력을 동원할 수 없는 아이들은 또 어쩌란 말이냐,

그러다 결국 줄 세우기로 회귀하자란 생각이 들고는 하였는데,

아이는, 아니란다. 하려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구조가 학교이고,

하려드는 놈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아이의 주장이었다.

공부는 누적량의 문제이고,

공부라고 한 게 없다가 학교를 다니면서 그게 쌓여가자 성적도 오를 수 있었던 거란다.

결국 성적은 기나긴 노력의 산물.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다.

결국 자발성의 문제란 말일 테지.

그렇게 또 아이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다.

뜨겁게 자신 앞에 놓인 길을 가는 것,

쓰잘데기 없는 공부를 그토록 해야 하느냐 핀잔이기 일쑤이다가

아, 그 세계에서도 아이들은 저들대로 건강하게 삶을 배우고 있구나, 가슴이 데워졌다.

오늘은 교장샘이 불러 격려를 했다는데,

담임선생님의 헌신부터 여러 어른들이 그리 살펴 아이 하나를 또 기르고 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오늘 날적이의 끝은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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