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26.달날. 비

조회 수 805 추천 수 0 2016.10.08 17:25:16


끄응, 몇 번을 그리 뒤채며 보낸 아침이었다.

어제 길을 잃고 헤맨 산행이 힘이 들었던 게다.

감기 기운도 찾아들어, 날까지 우중충, 주춤주춤 걷는 오전이었다.

(물론, 그래도 수행은 계속되다마다!)

모기며 벌레들이 문 자국만도 열댓 군데 되는 몸의 가려움이

짜증을 좀 부르기도 했다.

“더위로 없던 모기들이 요새 늦게 난리래.”

“우리는 ‘내내’ 그랬어!”

이곳의 모기는 쉰 적이 없었다.


오늘도 입사를 위한 자소서 보기.

청년실업, 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당장 닥쳐있는.

(아이라고 하나 대학을 졸업하는 혹은 졸업한 품앗이샘들이고,

 대개는 아이 때부터 여기서 자라난 이들)

그리라도 손 좀 보태본다.

아무쪼록 건승들 하시라.


달골 지하수 건으로 업자와 실랑이질(뭐 적당한 표현이...)을 좀 해왔다.

그렇다, 이 역시 늘 ‘수리 중’이거나 ‘공사 중’인 이 낡고 너른 이곳 삶의 일부.

비가 오면 흙탕물이 나오고는 했고,

처음엔 으레 그런 거구나 하다 그게 그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그때는 이미 지하수를 파고 몇 해가 흐른 뒤였다.

그때부터 지난 5년(하고도 1년 더) 줄기차게 업자한테 연락을 취해왔다.

비 많은 날들에 몇 차례 전화를 하다

가을 오면 겨울 준비로, 그리고 늦은 봄까지 겨울과 씨름하느라 잊혀졌다

다시 봄이 오면 또 연락을 하기 반복한 시간이었다.

작년에는 좀 더 격하게 오십사 요구하고,

올해는 이제 더는 해를 넘기지 않겠다고 아주 작정을 하고

지난 2주 줄기차게 전화를 넣고 있었다,

다시 파든, 있는 걸 더 깊이 내리든, 돈이 어느 쪽에서 들건 일단 봐야지 않겠느냐고.

드디어 내일 소장이 오기로 한다.

그마저도, 이제는 조금 노기 어린 목소리로

‘보내겠다는 사람과 직접 연락을 하겠노라’ 하니

비로소 사장이 번호를 알려준.

소장이 내일 늦은 오후 ‘틀림없이’ 들리겠다고 했다.

산마을의 일이란 게 늘 이러하다...


몇 방울, 그러다 개더니 밤 몇 차례 소나기, 그리고 방울방울,

비 그렇게 내렸다.

늘 말하지만 고마운 하늘,

오늘도 그랬네.

장독들을 손보겠다고 받은 날이었다. 비가 그었다.

빗물이 그만 된장독에 들어 벌레가 생겨버려 뚜껑을 열지 못하던 여름이었다.

그걸 진즉에 어찌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 일을 잘 아는 이가 와서 손을 보태겠다 했다.

다 버려야 하나 걱정과 아쉬움이 크더니,

그예 오늘 살폈네.

“그러고 보면 물꼬에 있을 건 다 있어요!”

위에 것은 다 걷어내 가장 위쪽 건 거름장에, 다음 건 개밥에 섞기 위해 한편에 담아두고,

아래쪽을 살려냈다.

거기 다른 독에 있던 굳은 된장을 섞어 새로운 독에 쟁였다.

독은 짚을 태워 연기를 쐬 소독을 했네.

전엔 항아리 안에다 짚을 넣고 태웠는데,

오늘은 짚을 태워 연기가 오를 때 항아리를 거기 엎었다.

다시 독을 일으켜 세우니 연기 오래 머금고 있었고,

후끈했다.

정말 잡내가 하나도 안 나더라.

그러는 동안 장독대에 있는 모든 독과 항아리를 손봤네.

윤을 내거나 줄어든 내용물은 작은 항아리로 옮기거나 같은 것들을 한 곳으로 모으거나.

버릴 것도 생기더라.

지고추를 잊어서 못 챙겨먹고 여름 났더니 그만 상해버렸다.

너른 살림이 참 쉽지 않다.

식초며 효소며들도 살폈네.

학교아저씨도 와서 장독대 풀 뽑는 일을 거들었다.

무거운 독들을 옮겼다고, 그렇다고 혼자 다 한 것도 아닌데, 아이구, 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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