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 6.나무날. 맑음

조회 수 846 추천 수 0 2016.10.10 09:21:18



초롱초롱한 별 본지 오래였다.

저 별 그대에게도 보내나니.


태풍 차바가 할퀸 남도, 떠오르는 얼굴들, 모두 안녕하시길.

여러분이 연락주시다, 거기는 무사한가.

엊그젯밤 자정부터 내리기 시작한 창대비가 어제 정오까지 줄비,

산마을이 둥둥 떠내려가겠는 양 내리부었더랬다.

마치 새로 세상을 다시 열겠다는 하늘의 의지이기라도 한 양

날은 컴컴했고, 공포가 칠흑에 뿌려져있었다.

먼 곳으로 간 벗이 남겨준 반지 하나가 든든하게 곁에 있어주었다.

늘 하는 그 말, 고마운 하늘이라.

흙이 쓸린 곳 있으나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저 손을 좀 기다리는 일이 있을 뿐.


재봉질.

샘들은 여름이면 이곳에 와서 몸배 바지를 즐겨들 챙겨 입는다,

활동하기 좋아라고.

그런데 밑단이며 허리 고무줄이며 다 터진 바지 하나,

말린 빨래에서 발견하고 언제 손봐야지 하고 구석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허리는 굵은 무명실로 듬성듬성 딴엔 임시로 꿰매 입었던데,

그런 게 바느질이지. 기특했다. 누구였던 걸까.

재봉틀 앞에 앉으니 거의 새로 바지를 만드는 일이었네.

가마솥방 피아노 앞 밥상머리무대는 아이들이 공연을 하는 때면 쓰임이 그러하지만

다른 땐 무슨 봉제실이라.

언젠가 전주 한옥마을 걸음에 동행했던 이가 사주었던 장식 식탁보 몇도

이참에 꺼내 다림질도 해두었다.


“빨리 말해!”

전화가 들어왔다. 결과부터 말하라 채근하다.

지난 하반기 입사 원서를 들고 여러 아이들(물론 이 할미한테야 그렇지만 청년들인 그들)이

청년실업의 대열에 서 있었다.

한 장도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던 한 아이,

오늘 성공했노라는 소식.

“고마워서...”

눈시울이 다 붉어지더라, 이제 시작, 다음 문을 또 열어야 하지만.

내가 읽어도 감동스런 그의 자소서 내용 때문이지 어찌 교열 좀 봤다고 그 공이겠는가.

애썼다, 고맙다, 잘 될 게다.

아직 봐야할 자소서들이 있다.

오늘밤에도 하나 넣는다는 소식도 있다.

그리라도 뭔가 할 수 있다면!


아침절에야 눈을 잠깐 붙였다.

내리 좀 시간을 쓸 수 있는 아침이었는데,

1시간이나 지났을까, 잠깐 누운 잠에 문자도착 알림이 들어와 버렸다.

다시 잠들기엔 하늘이 너무 좋았다. 얼마 만에 보는 햇볕인가.

그런데도 자정 가까이 밖에서 일을 고단하게 느끼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차 덕이었던 듯.

한참 보이차를 얻을 일들이 잦더니

있으니 또 칠자병차네 호자급이네 인자급이네 고정차구나 고수차네,

따져보게 되고 눈여겨보게 되고 자료를 찾아도 보게 되는 요즘.

오늘은 다인들이 모여 어른모임(요샌 정말 어른의 학교로서의 기능이 더 잦네) 하나 했네.

공예 하는 이는 옷에 하는 브로치를, 도자기 굽는 이는 다호를,

차를 파는 이는 차를 주었다.

애쓴 것들을 뭐 한 게 있다고 그리 덥석 받아도 되려나.

대신 차에 대해 정리해둔 몇 가지 강의 자료를 나누었다.

마침 찻장을 정리하려고 벼르기도 했던 터라 물꼬 차도 죄 꺼내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몇 백 만원에 거래되는 차를 보았네.

이제는 돌아가신, 중국 황실 다례를 전해주셨던 스님이 주셨던 차.

“이건 남 주지 말고 옥샘만 드세요.”

“이거 완전 약재다, 약재!”

이런! 차 좋아하는 벗이 있었는데, 진즉 꺼내주지 못하고 멀리 떠나 안타까웠네.

마셔본 사람들이 이구동성 정말 명성만하다 칭찬이 자자,

벗이 그립기 더하였다.


모기의 기억이 질기다.

언제 적에 물린 흔적들이 아직 가려움을 부른다,

턱도 이마도 목덜미도 종아리도 발목도.

질긴 것이 두고두고 가려운 부위만이랴.

오늘은 마음이 가려웠더라. 멀리 떠난 벗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대 연애에 부쳐-

헤어지려고 야멸치게 마음을 먹고도 이적지 몇 해 끌려가는 한 관계.

헤어져야 할 그런저런 까닭들이 있을 테지.

그런데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노라 한다, 그가 좋은 걸 어쩌냐.

그러게, 사람 좋아하는 그 마음을 어쩐단 말이냐.

얼마나 강력한 관성이더냐.

세상 그 무엇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그렇다면 사랑하면 될 게 아니냐.

아니요, 너무 힘이 들어요,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찌 안 돼요.

“기도하렴.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으면 그의 마음을 움직여달라고 말이다.

그의 마음이 돌아서면 자연히 멀어질 수 있지 않겠느뇨.”

내 마음이 어찌 안 될 땐 상대의 마음을 바꿔 달라 바랠 수도 있잖겠는가.

그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요, 그리하듯이

그가 날 떠날 수 있게 해주셔요 하고.

그것도 방법이라고 일렀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는 거지.

위로라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차라리 미움 받는 게 낫지, 미워하는 게 더 힘든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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