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계셔?

학교요.

점심 먹었어?

아직요.

바쁘시나?

입사 지원서 자소서 하나 첨삭 하느라 정신없네요.

고속도로 타고 서울 가는 길인데, 무주에서 빠져서 물꼬 들릴까 하고?

누구랑?

선생님이랑이지.

아, 어서 오셔요, 혼자거나 다른 사람이랑이면 담에 오십사할 건데,

선생님이랑이면 그게 아니지! 가만가만 30분은 더 봐야 하니까...

아니, 우리도 1시간은 걸릴 거야.

예, 어여 하고 기다릴게요.


바람 쐬이고 정리해서 넣겠다고 나와 있는 장의 차들이 상 가득 늘려있는 가마솥방으로

이생진 선생님과 승엽샘이 그렇게 학교에 닿으셨다.

“여기 오면 반겨주겠다 하고 왔지요.”

교장선생 밥도 한 끼 대접한다고.

여기서 무슨 밥을 먹으러 가요? 찬 없는 산골 밥상이나 제 손으로 해드려야지요.

저희 먹는 게 그래요, 기껏해야 된장.

마침 단호박이 좋은 때, 쪄서 다식으로 놓고 차도 마셨네.

어제 발견했던 대단한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는 보이차 숙차를 꺼냈더라.

일주일 섬에 들어가 쉬었다 나오겠다고 나섰으나

태풍에 발이 묶여 남도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걸음이셨다.

얼마 전 슬프고 고단한 일을 겪으셨던 샘은 그리 시간을 펼치다 가셨다.

아리고 안타까운 일을 이곳에서도 겪었던 마음을 같이 쓰다듬어주고 가셨으니.

이심전심이라,

선생님이 나 견디라고 그리 다녀가셨구나 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연락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나니...

슬픈 인간의 삶에 무엇이 남으리,

순간순간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이 마주보고 더 자주 얘기하고 더 잦게 손뼉 치리라!


선생님들 보내고 쌓여있던 차들을 정리했다.

차(차나무에서 딴)를 즐기니 대용차는 아무래도 밀린다.

차 좋아한다고 알거나 사람 많이 드는 곳이라고 차 선물이 흔한 이곳,

쌓인 차들이 많았다.

읍내 한 댁 오가는 이들 많은 거기 늘 커피만 있더라,

나눠주면 좋으리라 하고 따로 챙겨두었다.

큰일 하나 했네, 꺼내고 넣고, 거기다 여러 사람이 그러다보면 어질러지기 쉬운 찻장,

여름부터 벼르던 일이더니 그예 하였다.


억수비 쏟아지는 밤,

오래 손이 못간 부엌살림들도 꺼낸다.

뻐근할 정도로 움직이고 나니 자정.

일이 그러하데,

견디기 힘든 시간도, 몸을 혹사하는 건 어리석지만, 방법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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