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 9.해날. 맑음

조회 수 959 추천 수 0 2016.10.21 16:43:42


한글날.

형용사와 부사가 발달한 한글을 예찬한 한 의사의 기고글을 읽었다.

70대 할머니가 배앓이를 호소했단다.

“명치 부근이 간질간질하더니 배속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나면서 애가 트는 것처럼 틀다가 식은땀이 좌악 나고 화장실에 갔더니 그냥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듯이 설사를 한바탕 하고 났더니 기운이 하나도 없어. 그래서 누워 있었는데 또 배가 트는 거야.”

‘칼릭 페인(colic pain)’을 그리 설명하더란다.

같은 날 오후엔 중학생이 배앓이 때문에 왔다지.

어떻게 아프냐 물으니 짜증난단 기색으로

“그냥 배가 아파요. 아 몰라. 그냥 아프다니깐요.” 했다고.

여기가 아픈가 저기가 아픈가, 쓰린가, 쥐어짜듯 아픈가 설명을 요구했다고.

‘사지 선택에 익숙하기도 할 텐데 머뭇거리며 답변을 못’하더란다.

“모르겠어요. 그냥 아파요. 아팠다가 사라졌다가 그래요.”

말은 많은데 말이 사라지고 있는,

떠나간 것들이 남기는 쓸쓸함이 읽히는 그런 순간이었네.


식구들 바깥나들이.

외식, 얼마만이던가.

한 때는 달마다 한 번 바깥으로 나가 밥을 먹기도 하였는데.

마침 기숙사에 있는 아이가 고3, 누구라도 그럴 대입수험샘의 고단함에

오늘 식구들 다 모여 근기를 보탰네.


손목훈련을 시작하다.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라고, 떨리기 시작한 게 여러 해,

다례 시연이라도 할라치면 차칙을 잡은 손도 떨려

사람들이 긴장했다 오해를 하기도.

뭐, 긴장할 때도 있겠지만.

지난봄부터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연필로 데생하는 걸로 나름 자가치료를 할 생각을 했는데,

것도 두어 번하고는 게을러졌더랬네.

뱃살 빼기며 허리 바로세우기, 그런 걸 알아도 우리 잘 안하잖아.

그런데, 이 가을 더 심해지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다시 자가치료!

연필 잡은 결에 아예 그림을 좀 그려도 좋겠구나 싶데.

유화를 더러 그렸는데, 라고 하지만 그것도 그리 많은 것도 아닌,

이제 수채화를 좀 그려볼까 한다.

지난학기 한 치유수업에서 아이랑 색을 다루기도 했던 바

이참에 내리 수채화를 그려 보려지.

쌓이면 실력도 되잖겠는지.

마침 인근에 아뜰리에를 가진 화가가 작업실을 쓰라고 열쇠를 챙겨주었다,

제자들도 같이 쓰고 있다고.

열쇠는 언제든 그곳을 부담 없이 쓰라는 허락, 신뢰 뭐 그런 것의 이름일 것.

고마웠다.


이제는 먼 곳에 간 벗이 새해선물로 빳빳한 세뱃돈이 든 봉투를 준 적 있다.

고이 넣었다가 그리움 깊어 그걸로 물건 하나 사들이기로 하다.

흔적을 그리 남겨두고 싶었던.

오늘 장만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뭐 그런?

가까운 곳이 아니어 가져오기 더디겠지만 가을이 가기 전 데려올라 한다.

그리움을 견디는 그런 방법들도 있나니.

이제는 영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들을 그리도 기억하리니.


숟가락과 숟가락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걸음과 걸음 사이, 말과 말 사이,

행과 행 사이, 문을 여는 사이, 수돗물을 잠그는 사이,

모든 틈에 그가 있었다.

사람 보내는 일은 밥을 먹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일이다.

글 한 줄 쓸 수가 없었다.

‘물꼬에선 요새’를 쉰다고 했다.

그래도, 쓴다. 혹여 덩달아 읽는 이에게도 슬픔이 번질까 글을 싣지는 않지만 쓴다.

것 또한 견딤이라.

그리고 그것이 내 일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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