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2.물날. 헐렁한 맑음

조회 수 725 추천 수 0 2016.10.21 16:51:26


난로 연통을 들였다.

겨울이 오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이곳에서 그 문장은 좀 더 단단한 각오를 요구한다.

그것은 지독한 슬픔으로 쓰러져있더라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오는 길 있을 때 들러달라던 한 어르신 댁에 갔다.

입성 하나 챙겨주셨다.

피아노를 치시는 당신은 일흔 나이에도 청반바지를 예쁘게 입고 다니시는 분.

도드라진 패션 감각은 늘 눈부시다.

그 감각으로 때마다 그렇게 옷을 주신다.

입고 다니는 치마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게 없을 정도일 점퍼는

당신이 내 차림을 눈여겨보신 결과일 터.

사랑하는 건 그를 그렇게 ‘살피는’ 것임을 새삼 생각하였노니.


관내 초등학교에서 교장샘이며 여러 샘들과 밥 먹고 차 마셨다.

올 가을학기는 제도학교와 같이 논의할 일이 여럿.

10월에만도 사흘을 같이 보낸다.

“벌써 20년은 됐겠네요.”

그만큼은 아니지만,

연구년 3년을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와 맨 먼저 갔던 바깥 강의였으니,

관내 한 초등학교에 연극으로 교사연수를 들어갔을 때 만난 한 선생님이

그 학교로 부임해계셨다.

퍽 반가워라셔서 또한 아주 고마웠으니.


자꾸 상처 받아요,

한 친구가 말했다.

너무 아파요.

아, 아프겠구나...

그 사람이 내 상처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살펴봐주지 않아요.

아, 힘들겠구나...

그런데, 같은 일도 상처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가 있다.

핵심감정, 아킬레스건, 버튼 벨리(belly button)가 다다르지 않더뇨.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개인의 상황에 따라 감정이 다르리.

내가 받는 상처가 네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내가 상처받지 않은 게 아니지.

네가 넘겨짚는 거야, 네가 예민한 거야, 네가 별난 거야,

그렇게 무시해버리면 상처받을 밖에.

그런데 단단한 넌 아무렇지 않은 일에 나는 상처를 받는다면

너는 강한 거고 나는 약한 것인가.

너는 당당하고, 나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어서인가.

내게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싶은, 세상사람 다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꼭 네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해주면 좋겠는 바로 네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을 때 우리는 상처받는다.

헌데, 아차! 알아주지 않은 건 상처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서운한 거다.

그 서운함의 화살을 다시 내게 쏘아 상처를 내는 건 자신일지라.

아, 내가 서운하구나, 나는 그런 예민한 사람이구나,

그러므로 또 타인을 잘 이해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

내 감정을, 그런 나를 '스스로' 이해하고 존중하면 서운함은 다만 서운함일 뿐일 수 있으리.

오늘은 나도 어느 한 때 깊이 받았던 상처를 아프다는 그대로 인해 반추하며 쓰다듬나니.

그대 또한 일어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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