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8.불날. 맑음

조회 수 910 추천 수 0 2016.10.24 10:30:57


사랑하고 존경하는 큰 어르신 선생님한테서 글월이 왔더랬다.

요새는 밥 딜런 노래에 한참 빠져있다고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한 부분을 적어 보내주셨다.

그의 노벨 문학상 선정으로 여기저기 들썩이는 며칠이더라.

위대한 미국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

수상 이유였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얼마나 많이 올려다봐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사람들은 하늘을 볼 수가 있을까요?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다른 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 많은 이가 죽었음을 알게 될까요?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있어요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답니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 소년은 어른 되나,

이렇게 번안곡은 시작되었지.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는데도

2004년 상설학교를 시작하며 아이들과 피아노 앞에서 같이 가장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내가 찾는 아이’와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와 함께.

캐나다 친구랑 하는 모임에서도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r”과 함께

그해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시간은 힘이 세고, 노래는 강하다.

노래는 그날의 공기와 그날의 햇살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데려다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고 노래했던 사랑했던 그리운 벗도

노래와 함께 공기처럼 남았노니.


어제 오후 들어오기로 한 지하수 공사업자는 오늘 오전으로 일정을 미루었다.

일은 되려는가.

이른 아침 수행을 끝내고 달골에 올라 기다림.

하지만 오후 2시경 들어온다는 전갈.

낮 2시, 소식이 없다.

3시, 역시 소식 없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이적지 소식 없으리,

어이 되는지 연락 달라했다.

까부룩까부룩 잠이 쏟아진다.

그건 단순히 졸음이 아니라 실망에서 오는 주저앉음 같은 것.

또 얼마나 씨름을 해얄 것인가 하는 그 까마득함에서 오는 것.


4시, 이제 접고 저녁에 갈 바깥수업을 준비해야겠네.

지난 한 달 지독하게 전화를 넣었고, 간간이 연결되는 통화는 조율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현장소장하고 직접 연결이 되어 그나마 일이 조금 수월하게 풀리려나 싶더니

그마저도 사장과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시 엉키는 실타래.

뭐 결국 비용문제이지.

우리 편에선 누가 부담하든, 어떻게 나누든 일이 되는 게 중요.

물! 공기와 다르지 않을진대 하루라도 빨리, 더구나 겨울 오면 꼼짝 못하는 여기 아닌가,

일이 되어야!

또 얼마를 더 지난한 싸움을 해얄 것인가.


16:08, 지금 도착 하려해요.

아, 후다닥 밖을 나간다.

곧 사람들이 왔다.

기계가 들어올 수 없어 이걸 만들어 오느라...

삼각봉을 세워 도르래를 달고 그것으로 관들을 빼내려는.

정말 일이 되려나 보다.

간간히 작업 사진을 찍고,

달골 마당 풀을 정리했다.


쉬 어두워지는 산마을,

저녁 밥상을 차리러 먼저 내려왔고,

밥을 내고 차를 냈다.

소장은 지난번 밥과 차를 냈던 비 오는 날의 답례로

학교 부엌 수도꼭지를 선물로 사 오신다더니

정말 새 것으로 바꿔주었다.

꽤 값이 나가는 것이어 아무래도 우리가 지불해야겠다 하니

차 값이라셨네.

차 값을 아는 분이라...

한 분은 드론을 날리는 게 취미이고 또 다른 이는 정악을 하신 분.

뜻밖의 인연들이다.

사장이 일하러 우리 보낸 것만 해도 성공하신 거예요.

얘기인즉,

선생님 아이들한테 말하듯이 말씀하시잖아요,

그것도 또박또박 느릿느릿,

사장이 아주 골머리 아파 죽을라 그래요,

전화만 울리면 이걸 어쩌냐고 머리를 싸매요,

마치 사람 갖고 노는 듯이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해서 아주 사람 죽겠다고,

사람 갖고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고.

느릿느릿한 말투가 그런 순기능을 할 때도 있구나.

“누가 내든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지, 어째 몇 해를 이리 미루고 방치할 수가 있냐구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올해는 기필코 해를 넘기지 않고 해야 했어요.”

사장이 워낙 바쁜데, 말하자면 이건 AS 같은 거니까 귀찮고 돈도 안 되고,

그러니 어찌하든 피해가려 한 거라고,

그의 일 방식이 매사 그런 식이라고.


뭐, 중요한 건 일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일 오전 마저 하기로 한다.

8~90% 공정을 한 건데, 현재까지는 양호하고 순조롭다고,

그런데 마지막 공정에서, 짐작대로 위아래서 물이 나는 현재 상황이라면 다행인데,

그러면 위에서 스미는 것만 막으면 되니,

스미는 물을 막았는데 아래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면

더는 방법 없이 새로 파야한단다.

음, 내일 일은 또 내일에.

몇 해 위의 나이대들인데, 그래도 같이 80년대를 관통한 사람들,

그 시절 얘기로 즐거웠다. 참 오랜만에 꺼내 보는 옛 시절이었네.

산마을의 훈훈한 저녁 밥상이었으이.


늦은 밤 상담. 사춘기 아들과 오춘기 엄마의 갈등.

사춘기와 갱년기 여성이 날마다 충돌하는 이야기였다.

갱년기!

아, 나도 그 궁금하던 갱년기인가 싶더라.

특히 가장 가까운 벗에게 유독 심통 부리고 벌컥 화내고 못살게 굴고

그리고 정직하지 않음으로 상처를 주기까지.

너무 심하게 굴어 나중에는 그의 미움을 볼까 봐 무서워 연락도 못한 채 쩔쩔매기도 하고.

갱년기, 그거 하나로 퉁 쳐주면 좋겠네,

사춘기가 무기인 우리 아이들처럼.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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