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이곳에서 노곤함을 잠으로 풀리라고 누워있기도 하고,

삶의 온갖 고단함을 온몸으로 휘감은 이는 자리를 걷지 못하기도 하고,

나머지 사람들만 창고동에서 아침수행을 하다.

이런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절이 절로 나오는.

티베트 대배로 하는 백배 절도 함께.


‘꽃자리’

마음과 몸이 지친 한 사람.

그를 돌보느라 우리 모두 기다리거나 지지한 아침.

이런 게 중요한 거다.

너도 꽃, 나도 꽃, 피자고 시작한 생일 것이라.

언제고 피고 질 것이라.

몽오리로 지고 말아도 그도 꽃을 품은 생일지라.


마당에서 서윤이와 강아지 조이가 놀고,

물꼬 개들 장순이와 사과와 만화도 덩달아 아는 체를 가끔 하는 한낮,

마을 한 어르신의 손자가 자전거를 타고와 놀았다.

아이들이 있는 운동장은 눈이 시리게 푸르다.

학교 뒷마 아이가 댄 자전거가 차들 곁에 예쁘게도 주차돼 있었다.

배운 대로 하는 아이들이다, 보는 대로 하는 그들이다.

우리가 곧게 걸어가야 하는 까닭.

눈길도 함부로 걷지 않았던 옛 어르신들을 생각했노니.


‘꽃자리’.

떼오오랑쥬를 마시며 열고,

어제 하지 못했던 물꼬 한바퀴를 그제야.

이 낡은 살림에 윤을 내기까지

이 오랜 살림이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빛내기까지

그리고 이곳에 그 자리를 지켜온 시간에 대한 찬사를

20년 물꼬 품앗이 아리샘이 보태다.


‘열매자리’.

달골 올라 풀을 매다.

명상정원 ‘아침뜨樂’ 들머리 바위 축대,

그 사이 흙에 자리 튼 잡초를 뽑다.

잡초, 우리가 가꾸고픈 것이 아닌 나머지의 이름자.

학교아저씨도 가위 들고 그 너머 칡넝쿨을 자르고,

또 한 사람은 햇발동 앞마당 풀을 뽑고.

마을이 어스름에 잠겨서야 호미들을 놓다.


일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

달골 내려오며 어여쁜 산국을 땄다.

꽃처녀들이 저기 오시네.

감국하고 산국이 꽃과 잎과 줄기가 어떻게 다르고,

그들의 성질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차로는 또 어떻게 다르게 덖는지를 이미 알려주었던.


“이야!”

저녁밥에 대한 찬사.

그 아무것도 아닌 산골밥상, 배식대에 놓인 것들 하나하나에 소리 지르는 사람들.

세상에! 다들 바깥에서 못 먹고 산다니까.

그저 흑미밥과 시래국과 떡볶이와 김치부침개, 막 익은 배추김치와 박나물과 구운 생선,

그 별 것 없는 밥상에 환호라니.

역시 일하고 먹는 밥이 최고일지라.

얼마나 표나지 않는 일이던가, 밥바라지.

밥하는 자리가 귀한 것임을 아는 사람들일지라.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큰 볼에 얼음을 채우고 굵은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작은 볼을 놓고 우유를 조금씩 저어가며 얼리면

정말 수분이 달아나듯 풀풀 날아가고 응고가 된다.

근데 이런! 우유가 없네.

마침 혜정샘네서 요걸트를 챙겨온 게 있어 대용.

하지만 우유처럼 되지는 않는다.

젓던 그 상태로 냉동실에서 살짝 얼리는 것도 방법일 테지.

얼마쯤 뒤 꺼내 유리잔에 담고 칩을 올리고 초코시럽을 뿌리다.

아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잊지 않고 챙겨 해주는,

실은 이런 게 고마운 것이다, 라는 문장처럼

이런 게 또 중요하다.

우리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못해줄까.

서윤이가 흡족해했다,

아이스크림이 주는 그 달콤함만큼이야 할까만.

아이들은 마음이 너른께.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한 곁에서는 꺾어온 산국 꽃을 땄다.

어둔 산길을 내려오며 훑듯이 꺾어왔으니.

모여서들 덖다.

산국은 그 성질이 강하니 고온에서 다섯 차례 덖기.

살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골고루 숨이 다 죽을 때까지 뒤적였다.

꺼내어 철바구니에 식히고 다시 덖기를 반복.

백차와 산국차와 목련차를 함께 달여 마셨네,

물꼬 호두를 다식으로 놓고.


저녁 밥상을 늦도록 물리지 않고 

양옆으로 휘령샘과 아리샘이 나란히 앉아 한참을 같이 노닥거렸는데,

무슨 말 끝에 과일 이야기가 나왔더라.

“밥 없이는 살아도 과일 없이면 못 살아, 난!”

그것도 모자라 또 덧붙임.

“과일 없으면 정말 안 살고 싶을 거야!”

지나친 과일 섭취가 위에 이상을 불러오기도 했건만

여전한 과일 타령하는 옆에서 아리샘,

“이거 뭐야? 어디서 그런 강짜를 부려?”

아이 야단치듯 곁에서들 주거니 받거니.

꼭 별일 아니어도 쓸쓸한 겨울 산골 밤,

깔깔대는 시간들이 위안과 위로로 번져가는데,

삶의 이런 순간들이 우리를 또 밀고 가는구나 싶은

눈물 찔끔해졌던 한 때였노니.


‘실타래’와 ‘夜단법석’.

밤이 많이 깊어 달골 창고동에서 난로를 피우고 고구마도 구으리라던 일정은 접었다.

대신 햇발동 거실에 모여앉아 도란거리고 두런거리고.

그때 기락샘과 류옥하다 선수도 등장.

“명절 같다!”

새벽 2시 방으로 흩어지기 전 아리샘이 말했다.

그랬다. 대처 나가있던 자식들이 노모의 집에 모여 마음 풍성하게 보내는 그 밤처럼

까르르르 자지러지게 웃음이 꽃으로 피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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