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동으로 아침빛이 하늘과 나무들과 함께 들어와 앉았다.

해건지기.

이심전심이라, 신기하기도 하지.

이 마음 저 마음이 오래전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만나는,

마치 ET와 엘리어트가 교감하던 검지 손가락 마냥

(옷을 입기 귀찮아하는 아이의 유아기 때 엄마와 아이가 검지끼리 만나는 그 같은 놀이는

이제 옷 입는 게 아이의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더랬지...

아이의 성장사에 함께한 무수한 기억들로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이 만들어지나니.)

우리 그렇게 닿아있었으니.

간밤 실타래 시간 모두가 둘러앉은 자리에서 느꼈던,

마치 가족이 모여 둘러앉은 명절의 그 따스함을 너도나도 느끼고 있었고,

아이와 어미가 가진 진한 신뢰가 주는 다사로움이 거기 있었고,

한편, 우리 안에서 눌러놓았던 마음들이 또 일어나서 소용돌이를 만들기도 했고...


‘천지빛깔’,

조근조근 하는 말처럼 비가 땅으로 오고 있었다.

그래도 가을빛은 환하여 천지에 빛깔이어라.

일러도 가을이고 더뎌도 가을.

또 한 계절이 우리 앞에 놓였네.

우리 생의 한 때를 산마을에 이리 모여 푹했으니.


세상이 좋다.

품앗이 연규샘이 이국에 있다.

휘령샘이 빈들 소식을 전했다.

먼 나라에서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한국이 그립진 않은데 물꼬가 그립다,

한식이 먹고 싶진 않은데 물꼬 밥 먹고 싶다 했단다.

울컥. 보고 싶다, 그대여.


빈들 닫는 날.

열이 모이기로 했고, 늦게 들어오기도 먼저 나가기도 했고, 오지 못하기도 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마친보람’도 같이 하다.

사흘이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였던가, 어떤 마음들이 오고 갔던가.

갈무리 하는 가을이라 그 같이 가을 되었으니.


떠날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이들 넷이 달골 올랐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며 잘 지내기 어렵지도 않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달골 기슭에도 이웃이 있는데,

이웃이라고 하지만 농막으로 쓰는 컨테이너가 두 채에

경기도에서 산장마냥 간간이 드나드는.

먼저 들어와 살며 발가벗고 개울에서 목욕도 했다 하니

뒤에 자리를 튼 우리가 침입자가 된 셈.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속에 십년이 넘어 시간 지났다.

‘확정적 편견’.

저 놈 나빠 하면 자꾸 나쁠 일만 보이는 그런.

서로 좀 그러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불편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데,

달골 들머리 쪽에 오래된 커다란 우리 호두나무 그 댁 머리 위로 뻗쳐있는데,

굵은 가지 하나 불안하게 꺾여있었다.

바람이 거칠지 않더라도 언제든 뚝 부러져 내릴 기세.

이웃에서 며칠 전 그거 좀 치워 달랬다.

헌데 묶어서 끌어당기는 중 그만 그 댁 전선을 건드리고야 말았네.

그 댁에 사람 있는 줄 알고 올랐던 길이나

마침 주인장 출타하고 우리끼리 하는데 일이 그리 된.

아이구. 멀리 나가있던 주인 돌아오고,

다음 이야기는 생략.

결론? 일단 무마되었다.

하루도 그냥 가는 날이 없다, 돌아보니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딱 그 짝이었네.


아리샘이 남았다.

그에게 친가족은 김포식구들로 불리고, 이곳은 영동식구들도 불린다.

12학년 수능 앞둔 아이도 있어 영동식구들 바깥음식 한번 멕인다지.

“황금이모네!”

gold aunt라고들 한다지.

요새 미혼 이모 삼촌들이

조카들에게 경제적 뒷받침에서부터 마음들을 쓰면서 나온 표현이라지.

가까운 우리 품앗이 선생네 하나만 해도

그들 이모가 조카인 두 자매를 위해 대학 등록금에서부터

어학연수며 해외여행이며 두루 지원을 한다데.

아리샘이 물꼬에 묻은 시간이 20년.

대학생 때 손발을 보태더니 교사 임용 때부터는 이적지 논두렁까지 겸하고 있다.

상설학교 문을 열던 즈음 두어 해를 빼고

물꼬 20년 역사가 아리샘을 통해 생생하게 기록되어 온.

고맙고, 뜨겁다.

‘의리’라는 말이 떠오르더라.


자정에야 서울 도착한 아리샘의 연락.

오래전 인연들에 대한 소식을 막 들었다고.

(서울에서 무열샘의 혼례가 있었고 물꼬 사람들도 거기 모였더랬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있는 자리에서 잘 살다 어느 때 그리 또 연결이 될.

물꼬가 잊혀도 물꼬를 거쳐 간 시간은 무엇으로든 어디든 남을.

우리가 산 생의 모든 흔적들 역시 우리에게 그리 켜켜이 얹혔고, 얹힐.

사는 순간 순간이 또 중해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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