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5.불날. 비 내리다 갬

조회 수 776 추천 수 0 2016.11.14 20:28:01


무슨 가을비가 여름 창대비처럼...

간밤 가랑비로 시작하더니 어느새 창대비가 되었던가.

아침절 내내 억수비 내렸다,

둥둥 마을이 떠내려갈 것만 같이.

다른 도시에서도 사정이 그러하였는지

오늘 있었던 오후의 약속이 그대로 괜찮겠나 묻는 전화도 들어오다.


도요에 가다.

산국을 한아름 따다가 가다.

답례로 다완을 하나 받다.

뭐 한 게 있다고 애쓴 것을 그리 덜컥 받나,

못 받는다 했다.

안 가져가겠다면 높은 데서 떨어뜨리려 하기 받아왔네.

고마웠다.

작업을 돕기로 했고, 일정을 논의하다.

11월 하순 한동안은 그 일로도 번잡스럽겠다.

11월 초에는 남도의 논두렁들과 절집에 가려는 일도 있고,

중반엔 이생진 선생님과 섬에 가는 일정도 있고,

고3들 수능을 돕는 일(뭐 달래 하는 일이야 있을까만. 겨우 기도나.)과

면접을 챙기는 일들이 있겠다.


물꼬를 거쳐 간 이들이 곳곳에서 좋은 공간들에 일조한다.

서울에서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에서는 물꼬의 수업들과 낱말들이 쓰이고 있고,

다른 대안학교들에 자리를 잡은 이도 있고,

지역에서 여러 공부방이며 지역공동체를 실험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엔 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품앗이샘 하나 사랑방을 만드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고.

‘심심한 사람, 괴로운 사람, 이야기 나누고픈 사람, 같이 책 읽을 사람 등

부담 없이 오가도록 빗장 느슨히 걸어두고 지내요.’

그러면서 겪게 되는 일들에 조언을 구한다는 메일이 왔다.

부엌이 문제였던 거다.

밥바라지를 맡았던 이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다지.

밥... 늘 먹고사는 것이니 어떤 것보다 중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하여 표 안 나고

그래서 맡은 이가 충족감이 덜하고 마음도 상하기 쉬운 공간이 바로 부엌.

행사를 하다보면 먹는 것이 다라고 할 만치 그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일찍이 공동체의 중심은 화덕이고,

공동체에서 가장 너른 마음을 요구하는 자리가 밥바라지임을 알았다.

그때도 이미 늦었을지도 모를.

나를 잘 쓰겠다 아무리 각오해도 자존감 없는 이라면 더욱 힘든 자리가 그 자리.

어떤 보직보다 헌신이 필요한 자리.

저 잘난 사람은 참 쉽지 않은 자리이다.

공동체에서 갈등이 가장 빚기 쉬운 게 또 바로 그 부엌.

이런 예도 있다;

여자가 밥을 한다, 그 시간을 쉬는 '남자'가 불가에서 책을 보거나 피아노 연습을 한다.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그 시간 쉬거나 책을 보거나 피아노를 연습하면

밥 하는 이는 거슬려한다.

밥 하는 게 무슨 권력이 된다.

이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있었던 일이다.

(이게 여자들이 가진 여성성의 문제일까...)

같은 여자끼리 잘 지내는 게 정말 어렵다.

그런데, 전체 일을 진행하는 이가 밥바라지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그 갈등에서 놓여나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공동체를 놓고(해체하고?) 사람들이 줄어드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내 손으로 밥해먹는 일이 젤 편하고,

내 손으로 밥 먹이는 일이 차리리 낫고,

내 손으로 밥하니 자유로워진다.

그에게 답메일을 써야겠다, 그대가 밥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보시구랴.

그런데, 대신 또 전체를 진행하는 감은 떨어지는 계산법이 존재한다.

언젠가 썩 편치 않았던 진행의 이곳 행사 하나를 평가하며 선배가 말했다.

“옥선생이 밥하지 마!”

지혜가 요구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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