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6.물날. 흐려가다

조회 수 734 추천 수 0 2016.11.14 20:29:20


복도 뒤란 창문에 보온비닐을 붙이기 시작했다.

세 해 전인가 원규샘이 시작한 일이더니

이제 월동 준비 하나로 아주 자리 잡았다.

겨울을 나는 일이 대단한 산골짝 살림.

올해도, 겨울은, 온다.


남도의 집안 어른이 큰 상자를 보냈다.

갖가지 건어물들이며 두어 가지 밑반찬이 들어있었다.

한 해 한 번쯤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물꼬 밥 먹고 싶어요 하고 물꼬에 하는 전화처럼

얼마 전 이른 아침 전화를 넣었다,

아, 사람들이 그렇게 고픈 영혼을 호소한 마음이 그러했구나 하고.

꾸러미를 열며 가슴 먹먹했다.

그렇다고 떠난 벗이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나

떠난 이로 애절했던 마음이 어루만져지기도 하더라.

그대 고단하신가, 같이 밥 먹세.


뺄 수 없는 바깥수업만 챙겨하고 얼른 들어오다.

벗이 와서 얼마쯤을 머물기로 했다.

이 시간들을 건너가기 힘들어하고 있는 때 벗이 왔다.

단감을 실어왔다.

일을 그만둔 지 몇 해, 그런데도 벗의 집에 온다고 벗이 좋아하는 걸 실어왔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주머니가 넉넉하다고 우리가 뭘 하는 건 아니다.

그를 생각하는 것, 그런 게 빛나는!

그런데 선배가 보낸 막 도착한 택배도 단감이었다. 철이다.

질리도록 먹겠고나.

그런데 정말 질릴까, 하하.


80년대를 거리에서 같이 살아낸 미술가들이 있다.

그 시절을 함께 건넌 한 판화가의 강연이 있었다.

낫과 호미라거나 민들레라거나 그 발언의 소재가 무엇이건

어떤 생각으로 그것을 쓰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결국 무엇을 노래해도 ‘참여’라는 생각이 들데.

한편, 묻고 싶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시냐고.

지금은 과거의 결론일저,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80년대의 기억들이 선명한 이들이 그 덕에들 모여

새벽이 오도록 두런거렸다.

읍내에서, 이 변방에서도 이런 날이 있다니.

그찮아도 80년대를 연상케 하는,

70년대에 대한 기억은 없으나 마치 그 시절로 회귀한 것도 같은 이 즈음에

지금 이 시간을 더듬게 하는 시간이었네.

이 지역의 이 끝에서 살고 저 끝에 살아 만나기 잦지는 않아도

더러 움직이는 소식들은 듣고 긴 시간 스치기도 하였는데,

비로소 오늘 말을 섞어보는 예술인도 있었다.

드는 나이가 고맙다. 이제야 사람한테 관심이 가지고는 한다.

지역에서 또 모임을 만들어 목소리를 모아보는 것도 필요할 때 되었네,

그런 공유도 있었고나.

벗이 동행하고 있어 더욱 유쾌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벗과 바깥일들 몇으로 잰걸음일 한 주이겄다.

아이들 학교로서보다 어른들의 학교로서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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