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7.나무날. 맑음

조회 수 726 추천 수 0 2016.11.14 20:31:21


여기는 서울.

내일 강연이 있어 오늘 서울행.

점주샘과 함께 선배 댁에.

흙날 오전까지 머물기로 날을 받았다.

그런데,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선배가

강연을 제외한 시간들에 대해 일정을 다 짜 놨더라; 산골서 귀할 여러 전시회들.

아,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지난 6월 물꼬 나들이 순방에 대한

달마다 마지막 쇠날에 하는 인사동 시낭송에 답방도.


한강을 걷고 들어왔다.

(지금 있는 곳에 집중하지만, 그래도 산골에 들어설 적이 가장 안온하다,

별 것도 대단한 것도 없이 그저 밥 먹고 사람들 만나는 아주아주 낡고 허름한 물꼬가!)

저 먼 이국의 어느 진풍경을 봐도 누구와 함께였던가가 더 깊게 새겨지기도.

말 많았던 세빛섬에 갔고,

솔빛섬 미술전에 갔고,

언제 그런 걸 먹어봤나 싶은 코스요리를 먹었고,

그리고 한강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을 지나

맨발로 나무 그늘과 풀밭을 건너 강가에 앉아 빛이 잠긴 강을 오래 보았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성품은 어찌 만들어지는가.

함께 있는 벗의 사람됨이 그 무엇보다 감동이었나니.

내 이 생에 뭐 하나 잘한 것이 있어 이런 호사를 얻는가.

마음이 헤집어져있는 친구를 딱히 돌봐주고 위안하는 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럴 땐 그저 곁을 지켜주는 그것이 첫째 위로법.

사랑을 잃고 떠나간 연인의 창 아래를 서성이는 어느 이처럼

깊은 밤 어느 댁 불 꺼진 창 아래를 괜스레 서성이기도 하였네.


헬로 아티스트 전; 인상파 거장들의 빛의 이야기.

그림을 그림으로 봐야지 영상으로 보니 어지러웠다.

섬도 흔들리고 그림도 움직이니 영...

보다 단순한 걸 좋아하는 성향 탓도.

그래도 그림과 그 그림으로 옮겨진 원 풍경을 보는 것은 반갑기도 하였고,

인상주의 그림을 다 훑어보는 즐거움도 있었네.

바지유를 시작으로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쇠라 고흐, 고갱...

눈부셨다.

그리고 하루 종일 걷고도 아쉽고 또 아쉬웠던 오르쉐미술관을 그리워했다.


한밤에 차를 달여 마셨다.

문득, 어쩌면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늘 곧 죽겠다, 머잖아 죽겠다 싶었는데.

20대 터널 끝에서 그만 살지 싶더만 30대를 맞았고,

서른셋에 세상을 끝낸 위대한 이름들을 따라할 줄 알았더니 40대가 와버렸고,

그러다 그만 50대에 이르고...

이런! 정말 백세 시대, 백 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자, 그러하니 이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음 문장을 쓸까? 그렇지 않다.

그저 살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 사는 바로 그 방식대로.

생에서 간절히 원한 것은 결코 되지 않더란 걸 깨달았다는 마흔 후반의 후배는

그러면서 ‘무심히’를 내세웠더랬다.

무심히 살 것이다.

때로 사는 일이 혹은 하는 일이 지겹지만

그래도 살 것이고 그래도 일을 할 것이다.

물꼬에서 보낸 시간도 역시 그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살 것인 줄 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줄 몰랐다, 또한 오랜 시간 뒤 여전히 그리 오래 됐는 줄 모를.

겨울 앞에서 계절을 지나갈 각오를 세우고,

여름 앞에서 계절을 헤쳐 간 준비를 할 것이고, ...

그리고 다시 보지 못할 그리운 사람은

다시 보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그저 무심히 바라볼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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