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30.해날. 청아한 하늘

조회 수 879 추천 수 0 2016.11.14 20:36:07


학교에서는 마늘 심을 준비를 하는 중.

언젠가는 섣달이 시작되고도 며칠이나 지나 심기도 했었더니

올 겨울은 가을학기가 한산한 까닭에

겨울 날 준비 또한 여유를 가지고.

내년 학년도를 물꼬 안식년으로 받아놓기도 하여 더욱 한갓진 걸음일지도.


사천 봉명산 다솔사(多率寺)에 걸음하다.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는 말은 많은 소나무에서 왔는가.

경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이라지.

(이즈음의 시간을 곁에 없으나 어디든 한 벗과 동행하고 있다.

떠난 이도 그렇게 머무는 것이 또 사람의 마음이라, 사람의 일이라.)

쌍계사와 쌍벽을 이루며 한국의 차문화를 이끌었던 산실임을 이적지 몰랐네.

살 땐 모르다가 떠나오고서야, 그땐 모르다가 지나고서야 아는 일이 어디 한둘일까.

돌고 돌아 거기더라는 얘기처럼 다인들과 이러저러 만나는 몇 해이더니

마침내 여기 이르네.

거기 모리거사 있었잖아,

다솔사 간다 하니 한 선배가 말했더랬다.

모리거사 쓴 소설 배경이 그 시절 거기였지,

다른 선배가 말하기도 했다.

아, 오래 두병샘을 만나오면서도 정작 나는 당신 이야기에 별 귀 기울이지 않았던가 보다.

가는 길에 효당 최범술 선생의 상좌였다던 모리거사 두병샘께 전화 넣다.

가면 봉일암도 올라가보고 거기 동초스님 만나 맛난 것도 얻어먹고 차도 마시고, 하랬다.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면 거기 한번쯤 소풍을 가는 곳.

주차장에서 맨발로 오르기 시작하다.

물꼬의 바깥 식구들 점주샘과 저온샘과 함께였다.

오르자마자 오른쪽으로 집채만 한 바위에 새겨진 어금혈 봉표(御禁穴 封表)를 확인했다.

어명으로 다솔사 경내에 무덤을 쓰는 것을 금했다는.

부친의 묘를 이곳에 쓰면 가문이 일어난단 소리에 경상감사가 이장을 하려 하자

승려와 신도들이 탄원서를 써서 어명으로 막게 되었더라는.

더한 이야기는 답사지를 참고하십사.


유서 깊되 화려하지 않은 그만만한 절이 좋더라.

대양루가 먼저 맞았다.

차 역사 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신라시대 대렴공이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을 때 지리산은 진주에 속했다.

근세에 차인들이 차생활 중흥을 기약하고 차의 날을 선포할 때

그곳은 진주 촉석루.

효당 스님의 차정신, 아인 선생의 조형의식, 차농 교수의 차나무 연구가

거기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일제 때 항일기지이기도 했다는 다솔사.

만해가 머물렀다는 응진전 마루에서 당신이 심었다던가 하는 세 그루 측백을 올려다보며

세 여자가 걸터앉았기도 한참.

김동리 선생이 이곳에서 만해로부터 등신불을 전해 들었고,

이후 낙향해서 여기 머물 적 탈고를 했다고.

그러면 나는 그 등신불을 읽고 단편을 하나 써야겠네,

벗들 곁에서 벗들 믿고 그리 까불락거려보기도.


대양루 앞으로 적멸보궁.

70년대 끝자락 응진전에서 발견된 사리를 모시며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했다 한다.

드물게 와불이 있었다.

아침수행 안하고 그 절에서 같이들 합시다,

진즉에 그리 말했고, 세 여자들이 절집에서 백배 그리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딱히 무엇을 위한 기원이었겠는가,

그저 삶에 대한 겸손과 안녕에 대한 바람이었을 것.

적멸보궁 뒤로 사리탑,

거기 수능합격기원 리본들이 휘날렸다, 걸렸다도 아니고 그야말로 휘날린.

탑돌이도 하고 나오다,

물꼬 인연에도 고3들이 줄줄이라.


절 뒤란은 차밭이었다.

효당 최범술 선생은 이 앞마을에서 나 60여년을 예 머물렀더라지.

인근에 자생하던 차나무 씨를 받아 다원을 일구고

반야로차를 만들어냈더란다.

다솔사가 ‘다사’(茶寺)라 불리기도 하는 건 그 까닭일 터.

실화상봉수라, 차나무 말이다, 열매와 꽃이 만나는 나무라.

운화라, 마침 꽃 피었고, 작년 열매 여물고 있더라.

180에서 240개의 노란 꽃밥, 마치 동백처럼,을 달고

하얀 꽃잎 다섯 장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봉일암에서 주인장 찾으니 몇 해 두문불출하겠다는 선언만이 대문에서 사람을 맞았다.

어찌어찌 모리거사님 함자 앞세우고 소식 넣으니

새로 만들어둔 깊은 다실에서 먼 아래까지 내려와 손님을 맞아주었고,

다식을 시작으로 말차와 다솔차들을 내시었네.

다실에 이르기까지 길가로 심으신 어린 차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다실 마당 너머로 남쪽 바다가 얼핏 출렁이기도.

어둑해진 산길을 되돌아나오며

다솔사 보안암 석굴은 다음 기회에,

그리고 봉명산 산오름도 다른 날을 기약하였네.


2017학년도 물꼬 안식년에 대해서도 의견을 보태보고,

그러나저러나 계속될 우리들의 삶을 이리 펴고 저리 펴보기도.

고마운 인연들이 고마운 공간에서 또 이어졌더라.

사람을 잃고(사랑을 잃고 라고 써도 될) 찬바람 휑하던 마음을

늦은 가을 그리 어루만졌더라.

내 마음을 건사해야 아이들도 챙길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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