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4.쇠날. 맑음

조회 수 836 추천 수 0 2016.11.21 15:27:05


우리가 새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직 그 세상이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마솥방 칠판에는 늘 챙겨야 할 일들이 차례로 적혀 있다.

어떤 일은 금세 끝나기도 하지만

계절을 넘기거나 심지어는 한 해를 넘기고서도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기도 한다.

달골 내선 확인도 그 하나였다.

여름이면 습이 많은 창고동에 내려간 누전차단기를 좇는.

앉은뱅이 주인이 목수 열 몫한다는데,

달골에 집을 짓던 그땐 또 상설학교로 문을 열고 정신없이 그때의 삶을 사느라

건축 일은 고스란히 타인의 손에 두었고,

전체 진행도 당시 교무행정을 보는 이의 손에만 넘겨놓고

들여다보는 일조차 게을렀다.

게다 지은 뒤 입주하는 과정에서도 사감을 맡았던 이에게만 맡겨놓고

지어진 집에 대해서도 넘의 일이니 했던 무심함과 게으름.

그리고 갖가지 문제와 만났고,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되새겨준 지난 10년의 달골살이였네.

창고동 내선을 확인해야 했고,

누전이 되는 곳을 찾아야했다.

욕실에서 플러그를 꽂을 일이 없었으니 언제부터 문제였는지도 모른 채 지나온.

변기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히터를 달고 꽂으니 작동을 않은.

겨울 오기 전에 해결하자던 일이고 오늘 하게 되었다.

다행히 긴 시간 들이지 않고 문제가 된 곳을 찾아냈고, 선을 바꾸고.

산골서 사는 일이 늘 숙제라, 또 하나 그리 했다.


어제부터 달골 ‘아침뜨樂’ 마른 풀을 잡고 있다,

손으로도 예취기로도.

계절의 자국이 그런 것이더냐, 무서우리만치 짙은 풀이었다.

그래도 굴삭기 한 번 지나면 또 다 엎어버릴,

농약 한번 치면 다 사라져버릴.

그걸 사람 손으로 하자니 험난한 시간들인.

승산 없는 싸움도 재밌거나 의미 있으면 또 하는.

제발 관성은 아니기로.


밤에 이웃에 건너갔다.

도움을 입었던 일이 여럿 있어 인사 한번 넣자 하고 여러 계절이 가버렸다.

아주머니가 케잌을 좋아하시는데 그거 한번 챙겨 사오기가 쉽잖더라.

아이가 제도학교를 가기 전엔 반죽기 노릇을 곧잘 해주어

언제는 호두파이를 만들어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얼마 전 늦은 시간 인근 도시를 다녀오며 그예 하나 사서 댁 현관에 놓아드렸다,

말씀은 나중에 드리리라 하고.

여러 날 또 흘러버렸네.

오늘 가서야 말씀드리니 무릎을 치시는데,

누군지 몰라 대전까지 전화를 넣고,

세상이 험하니 혹 누가 극약이라도 넣었을라나, 나 그리 원한 살 일 없었는데,

그러고 먹지도 못한 채 냉장고에 넣고 있으셨단다.

“케잌을 나 아니면 누가 사왔겠어?”

짐작을 통 못하셨다고.

아, 그렇기도 하겠구나, 세상 험하니,

내 생각대로 해석이 있는 게 결코 아닌.

“나 와서 같이 먹을 때까지 기다린 거구나!”

답례로 마당의 사과를 따주셨네. 고마운 또 한밤.

언제나 가는 것보다 오는 게 많은 삶이라.


겨울 계자를 공지했다,

예년이라면 11월 중순, 늦을 땐 하순에 가서야 하는.

도무지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드는 올 겨울이었다.

순전히 노인네의 엄살 같은 것인데,

2017학년도의 안식년을 앞두고 자꾸 늘어지려는 마음을 경계함일지도.

사람을 보내는 일도 사랑을 잃는 일도 결코 익숙할 수 없는 사람살이라

늙은이라면 사람도 사랑도 보내고 잃는 일 허다한 것이건만...


오늘 밤은 김남주의 ‘돌멩이 하나’로 그리운 마음 하나 갈음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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