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6.해날, 흐리다 볕 잠깐

조회 수 750 추천 수 0 2016.11.21 15:31:54


해건지기.

혹 바빠 밀리기라도 하면 밤에라도 하는 기도라.

고3 학부모라고 하지만 별 할 것도 하는 것도 없다.

아이가 기숙사에서 나와 다녀가는 주말이라해도

한밤의 간식, 이른 아침의 간단한 아침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주는 도시락을 부탁했던 바.

새벽에 두 끼의 도시락과 간식 한 끼, 그리고 아침밥상을 차렸네.

흔했을 과거 어머니의 모습이라.

그걸 어이 다 하셨던 걸까.

내 고등학교 3학년에는 은사님 한 분이 두 끼의 도시락을 날마다 싸주신 여러 날이 있었더라.

아무리 살아도 어른들 발치도 안 되는 이 삶이라.


차에 등을 켜놓은 채 긴 시간을 가마솥방에서 보낸 아침,

움직이려니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아뿔싸.

이웃에 있는 차를 부탁하려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른다.

지금 쓰고 있는 차는 그 보다 작은 크기의 승용차로는 배터리 점프가 잘 안 되는.

정신을 엇따 두느라 그리 느슨한 일들이 많은 요즘이다.

시간을 기대고 흘러가보나니.


읍내에 아이를 실어다주고 돌아오며 잠시 들린 가게에서

어른 한 분이 입성 하나 챙겨주셨다.

“옥선생이 입으면 딱이야!”

굳이 잠시 가게를 잠시 비우고 댁까지 가서 가져오셨네.

예뻐서 샀으나 살이 쪄서 입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셨다는 치마였다.

그런 마음들이 이즈음의 내 날들을 어루만져준다.

어쨌든 견디라는 사람살이라.


가족상담이 막 끝난 저녁 무렵, 전화가 하나 들어왔다.

공사 하나를 하며 맺은 연인데 마침 이 골짝에 또 들어올 일 생겼다고

이러저러 넣은 인사였다.

그러며 오간 얘기 가운데 일부,

- 거기는 형편이 좀 나은가요, 어디...

- 어떻게 알아요?

- 다 지나봐서 알죠.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없는 사람들이 없는 이를 살펴주는.

사는 일이 그런 가보다.



모퉁이를 돌다



언제는 저렇게

오래된 나무속에

그 푸른빛이 들었다가

오늘 이렇게

당신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언제는 이 몸뚱이에도

긴 그림자가 들어 있어서

여기서, 여기서

그림자 지워지도록

앉아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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