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6.해날, 흐리다 볕 잠깐

조회 수 764 추천 수 0 2016.11.21 15:31:54


해건지기.

혹 바빠 밀리기라도 하면 밤에라도 하는 기도라.

고3 학부모라고 하지만 별 할 것도 하는 것도 없다.

아이가 기숙사에서 나와 다녀가는 주말이라해도

한밤의 간식, 이른 아침의 간단한 아침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주는 도시락을 부탁했던 바.

새벽에 두 끼의 도시락과 간식 한 끼, 그리고 아침밥상을 차렸네.

흔했을 과거 어머니의 모습이라.

그걸 어이 다 하셨던 걸까.

내 고등학교 3학년에는 은사님 한 분이 두 끼의 도시락을 날마다 싸주신 여러 날이 있었더라.

아무리 살아도 어른들 발치도 안 되는 이 삶이라.


차에 등을 켜놓은 채 긴 시간을 가마솥방에서 보낸 아침,

움직이려니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아뿔싸.

이웃에 있는 차를 부탁하려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른다.

지금 쓰고 있는 차는 그 보다 작은 크기의 승용차로는 배터리 점프가 잘 안 되는.

정신을 엇따 두느라 그리 느슨한 일들이 많은 요즘이다.

시간을 기대고 흘러가보나니.


읍내에 아이를 실어다주고 돌아오며 잠시 들린 가게에서

어른 한 분이 입성 하나 챙겨주셨다.

“옥선생이 입으면 딱이야!”

굳이 잠시 가게를 잠시 비우고 댁까지 가서 가져오셨네.

예뻐서 샀으나 살이 쪄서 입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셨다는 치마였다.

그런 마음들이 이즈음의 내 날들을 어루만져준다.

어쨌든 견디라는 사람살이라.


가족상담이 막 끝난 저녁 무렵, 전화가 하나 들어왔다.

공사 하나를 하며 맺은 연인데 마침 이 골짝에 또 들어올 일 생겼다고

이러저러 넣은 인사였다.

그러며 오간 얘기 가운데 일부,

- 거기는 형편이 좀 나은가요, 어디...

- 어떻게 알아요?

- 다 지나봐서 알죠.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없는 사람들이 없는 이를 살펴주는.

사는 일이 그런 가보다.



모퉁이를 돌다



언제는 저렇게

오래된 나무속에

그 푸른빛이 들었다가

오늘 이렇게

당신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언제는 이 몸뚱이에도

긴 그림자가 들어 있어서

여기서, 여기서

그림자 지워지도록

앉아있을 줄이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54 2024. 4.22.달날. 갬 옥영경 2024-05-28 24
6653 4월 빈들 이튿날, 2024. 4.27.흙날. 맑음 옥영경 2024-05-28 26
6652 2024. 4.21.해날. 삽살비 옥영경 2024-05-28 27
6651 2024. 4.23.불날. 저녁비를 향해 가는 하늘 옥영경 2024-05-28 27
6650 2024. 4.25.나무날. 맑은 옥영경 2024-05-28 27
6649 4월 빈들 여는 날, 2024. 4.26.쇠날. 날 좋은 옥영경 2024-05-28 27
6648 4월 빈들 닫는 날, 2024. 4.28.해날. 해 맑은, 그리고 흐린 밤 옥영경 2024-05-28 27
6647 2024. 4.24.물날. 비 옥영경 2024-05-28 33
6646 2024. 4.16.불날. 갬 / 다큐 <바람의 세월> 옥영경 2024-05-24 40
6645 2024. 4.15.달날. 비 옥영경 2024-05-24 41
6644 2024. 4.30.불날. 비 옥영경 2024-05-28 41
6643 4월 빈들(4.26~28) 갈무리글 옥영경 2024-05-28 42
6642 2024. 4.29.달날. 비 옥영경 2024-05-28 45
6641 2024. 4.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5-24 48
6640 2024. 4.17.물날. 맑음 옥영경 2024-05-24 49
6639 2024. 4.20.흙날. 비 옥영경 2024-05-24 54
6638 2024. 5. 1.물날. 비 든 밤 옥영경 2024-05-28 57
6637 2024. 4.19.쇠날. 살짝 습기가 느껴지는 맑은 날 옥영경 2024-05-24 74
6636 2022.12.22.나무날. 눈 옥영경 2023-01-06 288
6635 2022.12.14.물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29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