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인터넷 수신기를 고쳤고,

잘 준비해왔는데도 수능을 열흘 앞두고 흔들리는 12학년들을 응원했다.

‘지금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딴 짓을 하게 된’다고들 했다.

부담 때문이리라.

한 뛰어난 화가 이야기를 전했다.

너무나 안 그려져서 조각상을 끌어안고 울었더라는.

그렇게 숱하게 그리고 또 그렸던 이도 그랬더라는.

그 뛰어난 이가 지금도 풍경을 그리며

대상이 되는 바위와 나무를 향해 정성스럽게 절을 하노라고 했다.

“오늘 안 되면 잠시 쉬어가자, 대신 내일은 오늘 몫 만큼 하자.”

욕본다, 우리 새끼들!

잘 될 게다, 혹여 그 애씀이 그날 다 발휘되지 못하는 불행이 와도

생은 또 길기도 하여 어딘가에 그 흔적 분명히 남을 게다.


먼 이국에서 글월이 닿았다.

그의 글월이 또 하루를 살아라 했다.

내 글들도 그대들에게 하루를 또 살고 싶게 할 수 있었음.

옥샘, 하고 부르는데, 울컥했다.

그가 불러주는 옥샘은 선생님이고 이모이고 고모이고 할머니이고 그리고 어머니이다.

물꼬에선 요새가 한참 올라오지 않아 바쁠까 혹 심란한가 걱정해주었다.

품앗이 샘들이 보내준 10월 빈들모임 사진들을 보며

‘대해리 공기가 여기까지 훅 불어와’ ‘마음이 편해지고 뜨끈해’지더라고.


그가 말했다.

저번 달 생일을 보내며 그 아침 가장 처음 한 게 일찍 일어나서 한 청소였다고.

그냥 처음엔 별생각없이 새로운 마음으로 잘 정돈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야지 했는데

청소를 하면서 엄청 꼼꼼히, 그리고 힘들게 하면서 물꼬 생각을 했더란다.

우리가 얼마나 청소를 해대냐, 낡아서도 해대고 수행으로서도 하고 정성으로서도 하고

예의로서도 하고 공부로서도 하는, 끊임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외며.

‘그냥 '나를 위해서' 열심히 청소를 했어요. 그리고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어차피 아는 사람들 오고 그 사람들 와서 또 같이 청소할건데 왜 또 준비를 깔끔히 하지?’그랬는데, 그날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청소를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였구나’.

‘나'를 정돈하기 위해서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청소뿐만 아니라 다른 행동 하나하나도

사실 다른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정갈할 필요가 있는 거지’ 하는.

다음에 물꼬 와서 하는 청소는 힘들지 않을 것 같단다.


그가 말했다.

잘 지내고 있단다.

‘시설 같은건 불편해도 기본적인 상식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통용되는 느낌’ 같은 게 있다고.

‘한국은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물꼬는 비행기표 당겨서라도’ 오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정신없다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지금의 경험들이 경이롭다고, 꿈만 같다고.

인복 많아(그게 다 제 하기 나름이었을 테지) 게서도 좋은 사람들 만나

‘내가 이걸 이 생에 어떻게 다 갚나 싶’다고.

문득문득 물꼬를 생각한다지.

‘대해리의 가을하늘, 복도에 도는 차가운 공기, 올려다보는 별들, 코끝에 찬 냄새,

밥 짓는 냄새, 가마솥방 음악, 나누는 이야기...’

다시 한번 물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낀다고.

거기서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물꼬에서 잘 다져 왔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지금의 제 모습까지 물꼬에서 잘 빗어짐에 감사해요.

만약에 아주 만약에 옥샘께서 ‘그동안 무얼했나’ 허무해지실 때가 있다면

저는 저를 들이밀 거예요.

제가 비록 완벽하거나 잘나진 않았지만

여태까지 제 우주가, 제 세계가 잘 뻗어나간 까닭은,

제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가 있고 그에 감사하는 까닭은 옥샘 덕분이니까요.’


사랑한다, 고맙다, 잘 지내주어, 생각해주어, 잘 나아갈 것이어,

그리고 오늘 또 내 하루를 밀고 가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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