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밝았다.

사는 날 동안 우리는 날마다 새날일지라.

말간 하늘이 고마웠다.

학교 일로가 아니라 사적인 글월 하나로 오전을 다 보내다.

때로 그렇게 공과 사가 별 구분 없이 쓰이고는 하는 이곳이다.

대개 사적인 것이 거의 없는, 혹은 사가 공적인 것에 같이 업혀갈 때가 많은 이곳 삶이다.

한편 오늘은 또 이 생의 끝날일지도 모른다.

누가 내일을 알랴.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여

이 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걷기를 소망했던 벗에게 보냈던 글월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싸울 일이 없겠구나 싶다,

오늘이 그와 마지막으로 같이 하는 날일진대

어찌 다투느라 써버릴 수가 있겠는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벗이여!

그대가 사랑을 끝냈을 때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지라.


달골에서 일했다.

명상정원 ‘아침뜨樂’에서 마른 풀을 또 잡았다.

꼭대기 ‘아가미못’과 ‘미궁’과 ‘달못’으로 내려왔던 일은

‘아고라’와 ‘꽃그늘길’과 ‘온우주’로 이어졌고

오늘은 아래 주차장 쪽과 그 둘레로 예취기 날이 지났다.

한편에선 햇발동과 창고동 뒤란 축조블럭 사이에 난 풀들을 잡았다.

사는 일이 이리 뿌리내리는 일이라,

한 존재의 뿌리는 깊기도 하여 쉬 뽑히지 않았다.

힘을 주고 뽑다 그만 뒤로 아래로 떨어질 뻔도 하고,

손도 찧기고 긁히고...

언제 이리들 덮었던가,

내가 알든 모르든 세상의 모든 것들에 그리 시간이 얹혔다.

자꾸 머리를 덮치기 전지가위로 먼저 잘라주며 마른풀을 뽑았다.

어느새 수로에도 자리 잡아 큰 키를 세운 도깨비바늘,

온 몸에 붙어 그걸 떼 내는 게 일 한 덩이.

일 못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그렇다 궁시렁거렸네.


저녁 치유수업.

지난 학기 색깔을 잘 썼던 효과가 컸다.

치료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 닿아있을 때 수업은, 당연하겠지만, 더 활기를 띈다.

마침 수채화를 그리고 싶어 하던 참에 아이랑 물과 수채물감을 잘 활용했다.

나도 좋았고, 그도 좋았다.

이번에도 간간이 그리 쓰고 있다.

물과 물감이 마음으로 잘 번진다.

그런데 치유수업에서 어떤 재료를 쓰든 고스란히 마음을 대체하게 되더라.

'내'가, 결국 자신이 쓰는 재료이므로.

내가 그것을 쓰므로.

그러니 내가 쓰는 모든 사물에 내가 있을 밖에.

일찍이 연암이 강을 건너며 그러지 않았던가,

내 마음이 그 물소리에 있더라는.

허니 물(物)을 통해 나를 볼 수도 또한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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