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7.나무날. 맑음

조회 수 743 추천 수 0 2016.12.05 10:35:05


고3 아이들이 수능을 마치고 나왔다.

그런 날이 올 줄이야, 교문 앞에서 시험을 치고 나오는 아이를 맞는.

어려웠다 했다.

어려웠다면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는가.

특히 상위권 아이들한테는 유리할 테지, 변별력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공부를 제법해서 정말 만점 시험지를 휘날릴지도 모른다 기대되던 한 녀석 왈,

내가 변별 당해버렸네!

못 본 시험이 외려 생을 또 다른 찬란한 길로 인도할 줄, 내일 일을 우리 어찌 알겠느뇨.

살아볼 일이다.


이른 새벽 해건지기를 하고,

5시에 도시락을 쌌다.

교문에서 도시락을 건네주는데,

눈시울이 다 붉어지더라.

얼마나들 애들을 썼을꼬.


수능 끝낸 아이들과 학부모 한 분 들어와 밥상에 앉았다.

밖에서 대접을 한다는데, 집밥 먹자하고 물꼬로 오십사 했다.

아이들이 채점을 해보는 사이 밥을 지었고,

어둔 산마을의 저녁을 함께 보냈다.

잘했건 못했건 끝났다! 욕봤다, 다들.

오늘만큼은 엄청난 발견을 하고 남극에서 돌아온 탐험가마냥

따신 아랫목으로 들어가 몸도 가슴들도 녹이시라.


'아침뜨樂'에 한 절의 처사님 한 분 오셔서

아고라와 미궁에 놓을 잔디를 얘기하고,

못을 어찌할까 조언도 받다.

작은 굴삭기와 트럭 두어 대 흙을 들이라네.

그 흙을 논두렁 진흙 다지듯 하라네.

그래 볼까...


오늘은 절집 인연이 촘촘했네.

요 아래 두어 해전 절집 하나 생기다.

비구니라 서로 드나들기가 편했던.

법당이며 요사채가 컨테이너,

곧 부처님 자리를 잡는다는데

어디로 놓으면 좋을까 말을 보태라셨다.

너른 품을 보면 좋으리, 저 산을 보면 좋겠다 했고

큰 스님 한 분도 그러셨다며 거기 잡아야지 하시데.


꼭 10년 만에 스님 한 분 만나다.

"얼굴은 뽀사시 하얘 가지고 고사리 손으로 불 좀 피우라 하니 가서 뚝딱 하는데..."

아이의 아홉 살을 생생하게 기억하셨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애가 다 그 거친 살림을 살두만..."

그 사이 아이가 자랐고, 학교를 갔고 오늘 수능을 봤네.

"학교를 갔나 안 그래도 궁금했어..."

그 사이 당신은 집을 몇 채나 지어냈다.

나는?

그저 물꼬에서 아이들을 그리고 어른들을 만났네.

그 사이 몇 차례 나라 밖에 있었고,

그 사이 특수교육을 공부했고,

그리고 요 몇 해는 사람 하나 부지런히 좇아도 다녔더라, 이제는 먼 바다를 건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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