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서,

금룡샘 장순샘 기락샘 류옥하다, 그리고 학교 안 식구들.

산골살림에 가장 큰일이라 할.

땔감을 쌓고 연탄을 들이고 김장까지 하면 산골 모진 겨울이 그래도 좀 든든해지는.

“손 모자라면 불러!”

앞마을 두엇 어르신 그러셨지만 부르지 않아도 되었던.

그래도 고마운, 그래서 고마운.


수행을 하고 차를 달여 내며 아침을 열고

일의 끝도 그렇지만 일의 시작도 청소라,

나무날 청소를 했고, 아침에 못다 한 것들 마저 하고

배추를 절이기 시작하다,

미리 가른 배추를 옛 목공실에서 바깥 수돗가로 옮겨.

이번에는 켜켜이 소금 간을 하고 뒤집는 과정 대신

염도계로 소금물 맞춰 한 번에 하기로.

속간이 덜 배일 수 있고, 소금도 더 많이 들지만 조금 편한 방법을 쓰기로.


올해는 배추가 굵다.

해마다 유기농장 광평 조정환 샘 댁에서 같이 길러준 배추였는데

올해는 장순샘네서 왔다. 밭에서 다 뽑아온 배추가운데 110포기만 하기로.

100포기 기본양념 규모:

새우젓 3kg, 액젓 10kg, 고춧가루 15근, 마늘 8kg, 무 50개, 생강 좀, 매실효소.

황태대가리를 비롯한 다시국물을 위한 재료들, 속을 위한 갓과 쪽파 좀.

갓 버무린 김치와 먹을 수육과 굴

여기에다 더하거나 빼거나.


무를 씻고 마늘꼭지를 따고 무를 써는(작년부터는 갈아서 쓴다) 동안

황태대가리며 다시마며 있는 채소 다 넣고 국물을 내고,

멸치 젓국도 달이다.

두어 해 묵힌 생멸치 젓갈을 끓여내는.

상찬샘이 몇 해 전부터 보내준 것을 묵혀 올해부터 그리 쓰는.

일이 그렇게 하나 늘었더랬네.

아이 외할머니 오셔서 했던 어느 해의 김장 때는

뒤란에 장작불 지펴 커다란 가마솥에 했던 일을

부엌 안 가스불 위에서 하느라

역시나 솥단지가 작았던 게야, 넘쳐서 일이 많았네.

처음 하는 일이니 더욱 서툴렀을 밖에.

바구니에 천을 깔고 하룻밤을 내리다.


장을 보러나가다, 등이 아파 물리치료를 다녀올 일도 있고.

병원을 들어간 사이 금룡샘이 방앗간에서 마늘과 생강과 무를 갈았다.

젓갈가게에선 아들 멕이라 손두부에 띄운 청국장과 무짠지를 챙겨주시다.

도대체 물꼬에서 가면 장사가 안 되겠는, 새우젓을 배로 갈아주셨네.

“액젓은?”

“올해는 생멸치젓을 달였어요.”

“이제 별 걸 다하시네.”

돌아와 금룡샘이 수육을 끓일 동안 사람들이 쪽파와 갓을 다듬을 때

곁에서 배추전도 내다, 이맘 때 식구들이 즐겨먹는.

장순샘, 수육에 무도 넣을 것 없고 소금과 양파만 넣으라고.

거기 금룡샘은 통후추, 월계수잎과 구지뽕 가루를 넣더라.

늦도록 내일 버무릴 김장을 위한 개막전 곡주가 있었다나 어쨌다나.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금룡샘 장순샘이 배추를 씻으면

학교아저씨는 기울인 평상에 그것을 놓아 물을 뺐다.

그런데, 배추 겉잎이 너무 짰네. 이런!

결국 다시 한 차례 더 씻다.

올해는 켜켜이 넣은 소금이 아니니 밑둥 쪽은 아무래도 간이 덜 배였더라.

그래도 어째도 되는 김치라. 그래서 김치는 또 쉬운 일일 수 있는.

“옥샘은 나오시지 말고 안에서만 일봐요.”

남자들 일손 덕에 바람 들어갈 일 없이 부엌 안에서 김장 바라지 일로만 돌았다,

덕분에 튀김도 하고.

배추가 물이 빠지는 동안 김장을 버무리기도 전에 다시 수육을 내고

만들어놓은 김장속을 덜어내 굴과 함께 내고 곡주도 곁들인.

기락샘과 류옥하다도 들어와 밥상에 앉다.


절인 배추를 다 건져내고 난롯가로 모이자 날리기 시작하는 눈발이더니

점심을 먹고 속을 넣어 버무리려할 때 춤추는 눈이었다.

마을에서 맨 마지막에 하는 김장이기도 해서이지만

올해도 김장하는 날 내리는 눈이라.

늘 고마운 하늘, 절묘한 날씨.

“꼭 눈 오더라.”

그러게.

“눈 올 때 하면 김치가 맛있다데.”

혹 처연할 수도 있는 날씨를 사람들은 그리 위로하데,

시집 갈 때 비오면 잘 산다하듯.


쪽파김치도 좀 담고, 총각김치도.

장순샘네도 나누고.

빵을 구워내 한숨 쉬고,

난로 위에 구운 고구마도 내며 또 쉬고,

가래떡을 먹을 새 없이 일이 끝났네.

손이 많아 속 한 번 안 넣어보고 끝낸 김장일세.


제법 쌓인 위로도 그치지 않은 눈,

떠날 사람은 더 미끄럽기 전 서둘러 마을을 나가다.

웬만한 건 얼기 전 뒷설거지를 하고 아랫목으로 오다.

남은 정리는 내일 천천히.

김장 끝내고 달골 오르기 쉽잖겠다고 부랴부랴 치워둔 사택이더니

눈이 와서도 사택에서 묵게 된.

이 결로 내리 아랫살림(윗살림이라면 달골이다마다)이 시작되겄다.


산골 밤, 눈 내렸고, 김장독은 찼다.

겨울에 올 물꼬 식구들이 퍽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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