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월도와 대이작도와 시인과 가객과 산골아낙과 ‘소낙비’,

사흘을 그리 이르겠다.

자식을 묻고도 밥을 먹는 게 사람이라

이 촛불시국에도 삶은 계속되나니

김장 끝내고 말미를 얻어

섬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동행하여 섬에 들어가다.

가객 현승엽샘도 함께했다.

두 분은 해마다 6월이면 물꼬에서 시 잔치 ‘詩원하게 젖다’를 열고 계시는.

사흘, 고맙게도 날은 푹하고 맑았고, 시간은 찬란했다.


이른 아침 배여 전날부터 송도에서 묵고,

자월도 이작도에서는 장골에서 묵었다.

‘장골’은 어떤 의미를 지녔기 이 섬에도 저 섬에도 있었던가.

앞 섬 그곳에는 지인의 별장이 있었고,

뒤의 장골에서의 밤은 그 섬에서 가장 오래된 민박집.

선생님을 좇는 이들이 모이면 즐겨 외치는,

선생님의 시에 등장하는 한 구절 “바다가 보이면?” “됐어!”.

섬마을을 걸어 다니며 우리는 “바다가 보이면?” “펜션!”하며 놀았더랬네.

어르신을 모시고 가는 어려움이라니, 그게 다 무언가.

미수(米壽; 여든여덟)이신 선생님의 감각은 여전히 미수(美鬚; 아름다운 수염)여서

우리는 줄곧 유쾌했다.


자주색 달이 뜬다는 자월도는 그믐이었더라.

비워두었던 집을 들어서며 청소부터 하고 부엌 살림살이며 냉장고를 조사(?)하고

밖에 있는 땔감을 들이고.

점심에는 집안에서 미역국을, 저녁에는 주인장이 잡은 농어를 맡겨둔 식당에 가 먹었다.

점심 밥상을 밀고 같이 장골해변을 걸었고,

주인장이 열쇠를 꽂은 채 부두에 둔 차를 타고,

섬에서는 그러더라, 누가 남의 차를 가져갈 수 있겠느냐 말이다, 뛰어야 바다인 걸,

섬을 한 바퀴 돌았네;

섬 서북쪽 끝 먹통도가 보이는 공동묘지에 올라 죽은 자들의 이름들을 불러도 주고

하니포 언덕에 올라 목섬으로 구름다리도 건너고.

저녁 밥상을 물리고 돌아와서는 각자 저 하고픈 걸 하며 쉬다가

다시 모여 벽난로를 피우고 노래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러다 또 저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거나 잠시 눈을 붙이다가,

그러다 또 방에 모여 도란거리고.

마치 무슨 오랜 동년배들의 여행이기라도 한 양,

나이 드니 이런 게 또 좋더라, 뭘 해도 걸리지가 않는,

이 같은 여행의 호사라니, 아, 두 분 고마워라.


이튿날 섬 시인은 또 다른 섬을 가보자고.

자월도에서 보내려던 이틀이었는데.

아무래도 좋은 모두였다.

꽃 따다 아침상에 놓고 양초도 켜고 김치국밥을 먹은 뒤 셋이 공간을 나눠 청소를 하고

대이작도로 건너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작은 풀안과 한국 최고령 암석길이라는 해안산책로를 걷고 돌아오니

섬을 지키는 스물네 살 청년이 전어회를 냈다.

유치원 나이 때부터 형 따라 초등 청강생이었던 그는

6학년이던 땐 사내 아이라고는 1학년에 겨우 하나,

고무줄 숨바꼭질만 하는 여자 아이들 속에서, 그래서 일찍부터 그물질이 놀이였더란다.


우린 또 걸었다;

큰 풀안-돌섬머리에서 밀물로 해안길이 막혀 산을 헤집기도-남성산이라는 송이산 기슭-

목장불해변-섬마을 선생 촬영지 계남분교

(풀안; 하루 두 번 고래 등 같은 모래 언덕이 바다 한가운데서 뜨고 지는 모래섬,

풀등 혹은 풀치라고도 부르는, 뭍도 아닌 바다도 아닌 시한부 모래섬)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도

때로 한결 같이 약속한 듯 말이 없기도 했고,

때로 숱한 이야기를 쏟기도.

우리는 같이 있었고, 또한 따로도 있었던 것. 평화와 자유가 곁에 있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양병집 1집에 실렸던

밥 딜런 번안곡 ‘소낙비’를 듣고 또 듣고 따라 부르기도.

(두 분은 쇠날에 있을 인사동 시낭송에서 부르고자셨다.)


밤, 나란히 벽을 기대고 앉아 노래하고 글 쓰고 책 읽고,

그러다 야삼경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네.

1929년생이시니 어마어마한 격랑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내신 세월,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셨다!

공민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과 같이 지었던 천막교실 여섯 동의 전설을

언젠가 이야기로 쓰리라.

시인 또한 그저 되는 게 아니더라.

시인으로 다듬어 오신 시간들은 장엄하였네.

“이제 주무셔요.”

하지만 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도 또 계속되었던.

한 존재의 길고 묵직한 생애를 듣는 시간, 그 벅참을 무어라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사흗날 아침, 승봉도로 넘어가자 하다 훗날을 기약키로.

두고 온 삶들이 또 있응께.

나만 해도 물날 밤 읍내에서 인문학모임이 하나 있고

나무날엔 청주에서 아침부터 청소년자원활동지원자 회의가 있는.

못 가면 또 어떠리 싶더니 결국 가란 말이 되었네.

마침 구름도 오고 있더라. 그러면 섬에는 바람이 일지. 발이 묶일 수도 있으리.


우린 배가 올 오후까지 또 걸었다.

장골고개 너머 부아산(송이산과 짝을 이루는 여성산이라는) 구름다리길 지나 봉수대로 갔다

돌아오며 삼신할미약수터와 해양생태관도 돌다.

동창생마냥 얼마나들 히히덕거렸던지.

봉화대 지나 전망대로 가는 거친 돌산길에서 선생님을 걱정한 승엽샘이 이제 돌아갈까 하니

선생님, “그래, 자네는 여기서 쉬어.”,

앞장서 더듬더듬 바위를 타셨네.


저마다 매달고온 서러움들을 우리는 바다에 모다 흩뿌렸더랬다.

선생님이 겪으신 얼마 전의 상심을 어떻게든 위로하고자 한 여행이었으나

저마다 짊어졌던 앓이들이 있었을 거라.

그리고 노인네들이 의기투합도 하였다, 철마다 같이 섬에 가자.

이토록 아름다운 여정이라면 때때마다 달려가고말고.

글을 써내려오며 배시시 자꾸 나오는 웃음이라니,

이리 되짚으며 또 좋다. 그립고 또 그립고, 다시 고맙다.


‘소낙비’를 우리 여행식으로 불러볼까.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우린 썰물 드는 바다로 나갔다오

바닷길 모래 위를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밤바다에 서있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드리운 그물에서 번뜩이는 비늘을 보았네

고기 잡는 아비와 굴을 캐는 어미를 보았네

모래가 바다 한가운데 쌓인 풀안을 보았네


무엇을 들었니,

섬을 지킨 나무 소식 전하는 바람의 말을 들었네

바다가 돌에게 던지는 투정을 들었네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발소리를 들었네


누구를 만났니,

3대가 하는 민박집 스물 넷 아름다운 청년을 만났네.

객들에게 잠자리를 찾아주던 젊은 경찰을 만났네.

광어를 맨손으로 잡아 올리던 어부를 만났네.


어디로 가느냐,

우리는 다시 자신의 삶터로 가노니.

그곳에서 다시 밥을 짓고 노래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리,

그리고 다시 만나리.


(* 사흘 뒤 선생님은 내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주셨다.

‘삶을 아는 사람과 동행하기 어려운 일인데,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만나 보람이었어요.’

마음 좋은 여행이셨다 읽었고,

내 삶의 애씀을 헤아려주시는 애정과 찬사로 읽었다.

눈 시리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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