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 6.불날. 맑음

조회 수 800 추천 수 0 2016.12.21 12:53:35


밥상이 왔다. 사진이다. 내게만 보낸 것도 아니다.

‘밥상을 수천 번은 차렸지만 북위 33° ~ 43° 동경 124°~132° 즈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밥과 김치와 된장은 역시 시그니처 메뉴인 듯합니다.’

그건 내 밥상이 되었다.

어디서 왔건 누가 보냈건 내 앞에 지금 그 밥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사랑도 그렇지 않겠는가.

그가 이 생을 같이 숨 쉬고 있어 고맙다, 내 사람이 아니어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느뇨.

떠난 사랑에 대해 행복을 기원할 수 없다면 그건 그저 나를 사랑한 것일 뿐.

이별로 아픈 그대 이제 좀 동굴을 빠져나오시게.


밖에서는 큰 해우소에서 사택 된장집 연탄 창고로 연탄 70장을 옮기고,

가마솥방에서는 유자차를 담갔다.

해마다 고흥 선영샘네 밭에서 몇 상자 나오지도 않는 것 가운데 한 상자가 오고 있다.

해오던 일이라고 손에 익었다.

잘 닦고, 물기 빼고, 툭 갈라 씨를 빼고, 채썰기.

설탕은 좀 덜 넣기로.

아, 설탕... 선배 하나가 콜롬비아에서 직접 사와 많이도 부려준 것을

한참을 잘 먹고 있네.


수돗물이 멈췄다.

이런! 이건 또 무슨 공사가 되려는가.

워낙 오래고 낡은 살림이라 문제가 생기면 큰 공사로 이어지기 일쑤.

해서 덜컥 마음부터 떨어지기 쉬운.

물을 잠그고 찬찬히 살핀다.

다른 쪽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싱크대 이 꼭지가 문제.

물을 잠그고 찬찬히 헤쳐 가며 살펴본다.

수도꼭지까지는 물이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꼭지가 문제, 부품을 해체한다.

앞머리에 이물질이 껴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랐고나.

이 겨울에 또 사람을 불러야 하나 싶다가 고마웠을세.

 

외국의 한 공동체에 방문하려는 품앗이샘이 있어

공동체와 연결해주고 있다.

만 세 돌을 넘긴 아이 손을 붙잡고 일곱 개 나라의 공동체를 세 해 돌아다닌 적 있었네.

뉴질랜드며 호주며 다녀왔던 공동체들에는 우리 샘들이 가서 머물기도 했다.

이번에 두드리고 있는 공동체는 나 역시 가보지 않은.

기회 되면 그들 루아족의 땅에도 한 번 가보리.

당장 겨울계자 끝에 가볼지도.


내일이면 수능을 친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는다.

(세월호를 타지 않았던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 빚을 짊어지고 가는 세월이라.)

이미 학교들로 보내진 자료라 벌써 열람해본 아이들이 있기도.

수시 결과가 곧 있고, 정시도 이어질 테고.

생이 길기도 하지만 이 나라에서 대학 진학이 평생의 삶을 좌우하기도 쉬운 지라

결과의 떨림이 적지 않을.

살아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을 채우는지 모른다,

그나마 이런 말이 위로가 될까...

건승하시라, 다들.


좋아하는 곡 하나를 사랑하는 벗이 보내왔다.

지구 반대편에 살아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어도

같은 날을 의미 있게 공유하기도 하는 것이 또 사람의 일이라.

그 가수는 나와 공유하는 날 있어 내게 아주 특별하게 기억되는.

그것까지 벗이 몰랐겠지만

선물도 해석이라.

일전에 이곳 겨울을 살펴 목도리며 팔토시며 들여다 주고 간 것도 고맙더니

이 겨울이 더욱 푹할세.

사람이 무엇으로 살던가,

이런 것들이 또 사람을 살리나니.

우리 아이들 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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