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 8.나무날. 맑음

조회 수 703 추천 수 0 2016.12.21 13:08:38


구석이란 구석은 낙엽들이 모여 있다.

바람이 몰아 부친 흔적이다.

이곳저곳 긁어내 태운다.

아이들 바깥해우소에 비닐도 쳤다.

겨울이면 여기저기 비닐로 에워싸는 낡은 건물들이다.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걸음 마냥

아이들과 보낼 산마을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산골짝이야 어린애 우는 소리 들어본지 오래고 60노인이 담배심부름 한다지만

면소재지는 그나마 젊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인근만 해도 그렇다.

그런데 뜻밖의 초상 소식을 둘이나 듣다.

더러 이 나이 언저리 사람들과 교류가 있고는 하는데,

이 집 저 집 허드렛일도 잘하던 착해 빠졌던 한 친구,

돈이 생기면 술집부터 가던 그는

결국 트럭을 몰고가다 커브길에서 계곡으로 곤두박질쳤다.

차 밀린 할부대금이며 장례비용도 모자랄까 곁에서 친구들 걱정이더니

그래도 생전에 선하게 살았던 그를 기억하고 사람들이 모여 주었다 한다.

그런데 발인을 하고 돌아온 날

또 다른 이가 김천 지나 황간으로 향하던 고속도로에서

역시 저 혼자 사고가 났더란다.

이 무슨 액이냐, 다들 허탈해했다.

“잘 정리하고 살아야지...”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있건만 서류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법적 상속을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이만저만 복잡하지 않다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제 생활을 좀 정리하고 살아가라 가르치고 떠났다는.

젊은 목숨이 어디라고 그렇지 않을까만

귀하기 더한 시골 마을,

애석하기 더욱 깊다.

사람 사는 게 참...


물꼬의 겨울 일정들을 앞두고 멀리서들 소식 잦다.

수능을 끝내고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들도 연락이 이어진다.

‘고3 보내면서 힘들기도 하고, 물꼬도 그립고 해서

수능만 끝나면 얼른 계자 신청해야겠다 하면서도

막상 끝나니 좀 쉬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 참… ㅠ

하지만 알고 있어요.

물꼬에서 애들과 만나고 다른 일꾼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얼마나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지요.

...

옥쌤! 너무 할 이야기도 많고요~

갈 날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옥쌤! 건강히 계세요~’

현진아, 오야, 기다린다.

내 게으름은 그리움에까지 그러하지 않았던가 반성도 하는.


물꼬의 교무행정도 밖에서 손을 보태 늘 돌아간다.

오늘은 교환학생으로 영국을 가 있는 연규샘의 소식.

‘화재보험 만기됐다고 메일 왔는데 옥샘도 받으셨는지 확인 차 잠깐 들러 글 올려요!

지금 저는 학기말이라 이리저리 정신이 없는데 학기가 끝나면 또 길게 소식 전할게요.

따듯한 겨울 나시길! 사랑합니다.’

‘나 역시 잠깐!

잘 지내리라.

잘 지낸다.

많은 일이 있고, 또한 별일 아니기도 하다.

이안이가 연규샘 없다고 안 온다고 했다나.

화재보험 만기 연락 받았다.’


바깥수업을 하고 들어오니 자정에 가깝다.

어둔 산마을은 숨을 멈추고 있는 듯한 밤이었다.

길을 넓히느라 헤집어졌던 마을길도 흙 채워지고, 다져지고 있다.

한 세기가 넘어가는 듯한 풍경이다.

적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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