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흙날. 맑음

조회 수 728 추천 수 0 2016.12.21 13:21:48


연탄 들였고, 김장했고, 뒤주 채웠고, 바람막이 비닐들을 쳤고,

이제 겨우내 땔감이라.

뒤란 너머 댓마로 가는 언덕 아래로 쓰러진 나무들이 더러 있다.

식구들이 나무를 끌어올리고,

잘라 화목보일러실로 옮겨 쌓고.


겨울이라고 저들도 허할까 개밥도 풍성하게 삶는다.

절반은 사료에 의지하는데,

한동안은 배추며 허드렛 채소들과 고기 부스러기들로 끓여 멕이려 한다.

그들도 든든한 이 산골 식구들이라.


풀을 쑤다.

몇 곳에 일어난 벽지를 붙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붙일 곳들 여밀라지.

뭔가 작업을 하려할 때마다 굳이 멀리 나가서 무언가 사오지 않고도

이 산골에서 어찌어찌 되는 일이, 이리 작은 일이라도, 고마운.

달골에 올라 햇발동 1층 뜬 벽지를 붙이고,

아래로 내려와서는 고추장집 떠 있는 벽지들을 또한 붙였다.

내일은 된장집 곰팡이 쓴 자국 위에 아이들이 작업한 한국화들을 붙이려지.

하면 그리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닌데

마음 내고 하기가 또 쉽지 않은 것이 일상의 일들이더라.

뭐 좀 게으르기도 하고,

뭐 1부터 100까지 다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이곳 삶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묵은 콩을 불린다.

벌레 갉아 가루가 떨어지고 있기도.

된장이 넉넉해 작년엔 메주를 쑤지 않았더랬다.

청국장을 띄워 볼라지.

논두렁으로 살림 보태주시는 한 어르신이

친정 어머니 돌아가시고는 못 먹어봤다 아쉬워도 하고,

혼자 사는 이웃 산골 벗이 그리워도 하기,

우리도 먹은 지 한참이라.

남도에서 집안 어르신이 와서 겨울 살림을 도왔던 몇 해엔 잘 얻어먹었으나

직접 하진 않았더랬다.

청국장을 먹을 줄 알게 된 것만도 나이 서른 지나서였으니.

된장이고 간장이고 고추장이고 김장이고

그 과정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 역시 마음 한 번 내기가 쉽잖았던 거라.

청국장만 해도 사흘이면 되는 걸,

띄운 방의 냄새를 빼는 데는 오랜 시간일 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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