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그대 보시라.


씩씩하리.

먼 곳에서도 물꼬 일들을 헤아려 주어 고맙네.


처질 때가 있다.

5분 전에 과다의욕이었다가 불과 5분 뒤 그만 처지기도 하는 게 사람 마음이더라.

하지만 한 번만 ‘싹!’ 하고 일어설 수 있다면

그래서 우선 어떻게든 옴작거린 그것으로 또 어찌어찌 움직여지는 게 사람의 일이라.

사람은 그래서 또 놀라운 존재이다.

곡기가 없어 다 쓰러져가던 어미들도

그렇게 어떻게든 일어나 움직이며 삶을 건너왔으리.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어딘가에서 읽었던 이런 문장 아니어도 사람살이를 생각하면 너나없이 들 생각.

그러나 우리가 그런 과학적 관점만 있다면 얼마나 쓸쓸할 것이냐.


얼마쯤 무기력했다.

조금 앓기도 한 등 통증 때문이기도 했으리.

오늘도 늘어지는 걸 ‘싹!’하고 일어났다.

그나마 날마다 거르지 않는 수행(그것마저 않는다면 삶이 너무 허망할 것이라)의 덕이 클 거라.

겨울이면 깃들어 지내는 된장집 천장 모서리 생각나시는지.

어제 풀어 쒀서 여기저기 일어난 벽지들을 붙였고,

오늘은 류옥하다 선수와 거기 한지를 덧발랐다.

아이들이 그려놓은 한국화를 찢어 붙인.

어찌어찌 일어나 움직이면 또 그 결과로 다음 일이 밀어진다.

환해진 방으로 기분도 나아진.

그러면 또한 몸이 나아지고.


뒤란 아궁이 가마솥에 불도 지폈고나.

씻고 닦고 기름 바르고 다시 씻어내고.

콩을 삶았다.

묵은 것이긴 하나 물꼬에서 거둔 것이다.

그런데, 물을 자박하게 넣고 된장 한 종지 얹어 끓였는데,

그러면 끓어 넘치지 않는다더구나,

그걸 믿고 뚜껑 열 일 없이 불을 지피다,

눋는 내에 화들짝 놀랐네.

불땀이 셌던 거다.

바닥이 좀 탔더라. 다행히 콩은 잘 삶아졌고.

온 식구들이 붙어 탄 깨알 같은 흔적들 떼어 내느라 콩이 다 식어버렸네.

띄워지려나... 기다려보지, 뭐.

소쿠리에 콩 켜켜이 짚을 넣고 고추장집에 이불 덮어 놓았다.

청국장을 띄우는 중.


밤에는 학교 마당에 불도 놓았다.

최대한 쓰레기를 낳지 않으려는 삶이나 사는 일이 또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

타는 걸 한참 지키고 섰었네, 한 점도 일지 않는 바람이 고마웠네.

기숙사로 나가 있던 아이가 들어와 흙집 앞 고장난 센서등을 갈아주고,

달골 지하수 펌프도 동파하지 말라 타이머를 달아 백열등을 켜주었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산골 삶이다.

어떻게든 나아가는 우리 삶일지라.

어디서고 밥은 묵고 다닐 것.

먼 곳에 홀로 지내는데 혹여 무기력이라도 오거든

이 겨울 아침마다 우리들이 했던 주문처럼

어떻게든 ‘싹!’ 한번만 일어서면, 그래서 움직이면,

그 힘으로 다음 걸음을 걸을 수 있음을 기억할 것.

서로 잘 사는 것이 서로를 돕는 것이라는 물꼬의 최대 진리,

정성스럽게 또 하루를 살아내기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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