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요 앞에 다녀올게, 그게 반백년 되었다는

전쟁통에 피난 가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어른들의 한을 듣고는 했다.

금세 돌아갈 줄 알았다.

점점 멀어지고, 그렇게 떠나거나 떠나오거나.

삶의 많은 지점들이, 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겠구나.

떠난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섣달이었으면 좋겠다,

헤어졌던 이들에게 안부라도 닿는 연말이면 좋겠다.


9학년까지 산골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다 제도학교 3년에 대학 간 아이의 기사 하나.

그런데, 아이는 심드렁했는데, 내가 부추겼다, 불순한 의도로.

실시간으로 저 사는 꼴 자랑질하는 데는 관심 없음. 왜? 나날이 이 산골에서 살아내는 일이 바쁘니까,

잘나는 건 그런 걸로 잘나 지는 게 아니니까.

준비하고 있는 책 <너는 네 삶을 살아, 나는 내 삶을 살게>(가제) 홍보면 좋을? 응.

저는 대학 가서 쓸 생활비 버느라 읍내에서 방까지 하나 구해 과외 한다 바쁘기도 하고,

청년실업시대에 대학입학이 그리 대단한 이야기거리도 아니고,

전국 수석을 한 것도 수능 만점을 받은 것도 아닌,

그저 제도학교 3년 만에 나름 거둔 성과라는 것으로 그 애씀을 축하한 정도.

기사에는 더러 오류들도.

우이도 여행은 우연히 시인 이생진 선생님을 만났던 게 아니라

같이 간 여행이었더라.

<브레인스토리>는 김대식이 아니라 수전 그린필드 책임.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적 없고 국문학, 유아교육, 초등특수교육을 공부했음.

아, 신학과 교육학을 기웃거리기도 했음.

아이 어릴 때 엄마랑 둘이서 한 몇 해의 여행은 돈 많은 부자의 여행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공동체와 자유학교들을 돌며 그곳에서 일하면서 물꼬를 가늠해본 여행이었다.

고생 좀 했다. 아니 많이 했다. 늘 그렇듯 돈으로 한 여행이 아니어.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거름도 져 나르고

아이들도 돌보고 학생들도 가르치고 머리도 깎아주고 재봉질도 하고 자동차도 고치고...

산골에서 학교 세웠다고 그럴 듯한 살림? 흐흐흐.

(그것도 같이 뜨겁게 살았던 동료들과 쌈짓돈을 나눠준 후원자들인 '논두렁'이 있어서 가능했던!

 지금도 때때마다 모여 게릴라처럼 움직이는 물꼬의 샘들-품앗이일꾼, 새끼일꾼-이 있어서 가능한!

 물꼬는 나부터 모두가 자원봉사로 꾸려지는 학교. 기적이다!)

1991년 폐교된 이 학교는 1968년 상량식을 한 건물이고,

물꼬가 쓰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가을부터.

깃들어 꼭 20년을 살았다, 살아냈다.(아, 2001년까지는 서울이랑 여기, 두 곳에서 물꼬를 꾸렸네.)

산마을의 오래고 낡은 살림에서의 겨울은

'시베리아 벌판 벌목꾼들이 아침마다 밀고 나가야 하는 문 앞에 서는 일'에 다름 아닐.

70년대 지어진 작고 허름한 사택에서

앉은뱅이 상에 앉아 글이라도 써노라면 손이 시려 장갑 끝을 잘라 껴야 하고,

아무리 치우고 윤을 내도 표도 안 나는 살림에

학교만 해도 바람구멍 숭숭해 허투루 새는 연료비만도 어마어마.

게다 아직도 쓰는 재래식 화장실이라.

그러면서 왜 하냐고? 그러게... 분명한 건 누가 돈 준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아이가 말했다, 이제 물꼬 일 그만하시면 안 되냐고, 너무 고생스럽다고.

그런데 곧 아이는 덧붙였다.

"하기야 어머니 말씀이 힘이 있는 건 물꼬 일을 하시기 때문이죠!"


기사의 포커스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미친 영향으로만 그려졌더라. 이해함.

그런데, 어쩌면 아이는 ‘일’이 가장 큰 공부였을 것.

오죽했으면 아이가  ‘우리 엄마는 아들 일 시킬라고 애 학교 안 보낸 모양’이라고까지 했으니.

7학년 때 또래 아이들이 너는 엄마 잘 만나 시험도 안 보고 속 편하겠다 하니

자기는 사는 일로 고달프다고, 보일러가 터질까, 수도가 얼까, 지붕이 샐까,...

그랬던 아이다.

그 많은 일을 해내며 자란 힘이 공부로까지 이어지더라는.

그야말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공부만 하면 되었을 것이니.

하지만 기숙사 있으면서도 어쩌다 주말에 한밤에 와서 어미 밀린 일을 돕다가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이른 새벽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던.

"물꼬 일은 아무리 해도 해도 표도 안 나는데, 공부는 하면 표가 나니까..."

애가 장한 게 있다면 저 삶 저가 잘 챙겨 산 것.

시험을 보자면 그것이 요구하는 객관적 공부량이란 게 있다.

3년 만에 하느라 죽어라 공부했다.

모진 에미 만나 에미 산다고 정신없어(그 잘난 물꼬 일 한다고)

그 아이 삶에 뭐 하나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는데,

오죽했으면 버스 타고  읍내 나가 제 손으로 문제집을 사 들고 와서 풀던 열한 살 때도 있었고,

어미 턱 아래서 올려다보며 "어머니, 제 교육에도 신경 좀 써주세요." 하던 적도 있었을까.

"내가 뭘 가르치겠니? 나나 열심히 살게, 나부터 잘 살게(잘 사려 애쓸게)."

오히려 손을 안 대서 무사히 컸을지도 모를.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울대 포기 서류를 보내고 다른 곳을 갔지만) 공부한 게 아니라

자기가 할 공부를 하기 좋은 여건이 서울대에 있었던 것.

제도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공부하느냐, 그 공부를 위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고민한 결론.

'시 쓰는 뇌생명과학자', 그의 꿈이다.

"각자 잘 사는 게 서로 돕는 거란 거 알지?

너는 네 삶을 살아, 나는 내 삶을 살게."

우리 그리 살았다.

세월호를 타지 않아 우리 살아 있고,

우리는 그 몫을 어떻게든 할 것이다.

아이는 수능이 끝나자 아비랑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한 밤, ㅎ일보 기사의 댓글 하나를 아이가 찍어서 보내왔다,

혹시 엄마가 나중에라도 보고 상처 받을까 걱정하며.

내가 좀 사람이 그렇다. 겁 많고 상처도 잘 받고.

헌데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상처 내는 이도 있지만 또 격려하는 분들도 있을 테지.

저가 좀 언잖았던 어느 댓글에는

‘모의고사 상위 0.6%거든요, 충북 9등이거든요. 수시 아니라 정시로도 충분히 서울대 가거든요’ 그런 댓글도 단 모양.

그런데, 보내온 문제의 그 댓글은 우리가 아주 모르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아이도 그래서 보내온 것일 테고.

오래전 대안학교들이 갈등을 겪을 때 물꼬도 예외가 아니었다. 벌써 십 수 년 전.

그 인연 하나 아닌가 짐작되는. 아닐 수도. 아니었으면.

그의 글은 파리했다. 불행한 일이다.

앞날 창창한 아이의 삶에 굳이 그렇게 돌을 던질 거야.

자식 키우면서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싶기도. 참 못났다!

나는 온전한가를 살피노니.

내가 바로 서야 세상도 바로 선다.

하여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평화가 되라지 않던가.

남을 원망하고 비난할 시간에 자신의 삶을 더 살피기로.

아해들아, 자신을 더 가꾸기로. 타인을 향한 화살로 생을 허비하지 않기로.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때로부터 아주 오래 가슴에 돌 하나 얹혀있던 걸 비로소 빼낼 수 있었다.

대면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부끄러운 시간을,

마치 죽지 못해 산다는 그 표현과 결코 다르지 않을 시간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날을 오래 견뎠더랬다.

누가 잘못했건 갈등은 모두 아팠던 일이고,

역설적이게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시간 지나며 성찰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은,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지 않았을까. ‘그것이 또한 한계’였고.)

그런데, 이제 더는 안 아파해도 되겠더라.

가끔은 헤어지길 잘한 관계도 있다, 골백 번 생각해도.

때로 더 모진 꼴 아니 보고 그가 떠난 걸, 혹은 내가 떠나온 걸 축하하라.

오늘 우리에게 환희가 있다면 그래서일 것이니.

그게 아니어도 더 지독한 늪이 아닌 것을 축하하라.

이제 와서 비겁하게 당신 때문에 나 못 살았다 우리 그리 핑계대지 말자.

내 삶은 내가 사는 것!


덧붙여.

나? 대안교육활동가? 아니. 그거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이 아는 체하며 갖다 붙인.

나? 딱히 범주가 없으니 교육활동가 정도?

대안교육? 그거 관심 없음(그것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 다만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교육을 허(許)하라 주장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4556 163 계자 닫는 날, 2017. 1.13.쇠날. 맑음 / 내일은 해가 뜬다, 사노라면 옥영경 2017-01-22 921
4555 163 계자 닷샛날, 2017. 1.12.나무날. 눈 / 산, 그 커다란 이름 옥영경 2017-01-22 965
4554 163 계자 나흗날, 2017. 1.11.물날. 맑음 / 네가 그러하니 나도 그러하다 옥영경 2017-01-13 982
4553 163 계자 사흗날, 2017. 1.10.불날. 맑음 / 파도 파도 나오는 옥영경 2017-01-12 948
4552 163 계자 이튿날, 2017. 1. 9.달날. 진눈깨비 잠시 흩뿌리다 갠 하늘 / 좋다 옥영경 2017-01-11 1071
4551 163 계자 여는 날, 2017. 1. 8.해날. 맑음 / 얼싸안고 한판 대동의 춤을 옥영경 2017-01-10 1087
4550 2017. 1. 7.흙날. 맑음 / 163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7-01-09 790
4549 2017. 1. 6.쇠날. 맑음 옥영경 2017-01-09 724
4548 2017. 1. 5.나무날. 흐리다 빗방울 두엇 옥영경 2017-01-09 731
4547 2017. 1. 4.물날. 흐리게 열더니 맑아지는 옥영경 2017-01-09 774
4546 2017. 1. 3.불날. 맑음, 봄날 같은 옥영경 2017-01-09 747
4545 2017. 1. 2.달날. 흐림, 기온은 고만고만 옥영경 2017-01-09 799
4544 2017. 1. 1.해날. 맑음 옥영경 2017-01-09 816
4543 2016.12.31.흙날. 흐림 옥영경 2017-01-08 753
4542 2016.12.30.쇠날. 맑음, 영하 9도로 연 아침 옥영경 2017-01-08 757
4541 2016.12.29.나무날. 눈 살포시 다녀간 아침 뒤 햇살 쏟아지는 / 산골에서 사는 일 옥영경 2017-01-06 834
4540 2016.12.28.물날. 눈인가 싶은 몇 방울의 옥영경 2017-01-06 707
4539 2016.12.27.불날. 눈으로 변해가는 비 옥영경 2017-01-06 733
» 2016.12.26.달날. 비 / 기사들 읽고, 변(辨·辯) 옥영경 2017-01-02 866
4537 2016 겨울 청소년 계자(2016.12.24~25) 갈무리글 옥영경 2017-01-02 81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