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인근초등학교에서 내년학년도 지원수업에 대한 협의가 있었다.

올 가을학기에 시범수업이 있었고,

서로 흡족했다.

내년학년도에는 그곳 아이들이 달마다 두 차례 명상수업과 물꼬 나들이를 하기로.

물꼬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그 편에서 찾아낸 것일 테다.

명상수업에는 춤과 그림과 차와 향들이 동행하게 될 것이다.

명상,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겠다.

사람의 마음은 살얼음과 같아서 깨지기 쉽고,

인간이란 너무나 연약하여 득도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유지되기가 어려울 지니.

위대한 고승들조차 날마다 수행하는 것도 그 까닭일 터.

좋은 공부를 찾아내준 그네가 고마웠네.


산마을에서 어미 일을 도우며 9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아이는

고등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제도학교를 가 3년을 보냈다. 곧 졸업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시간 아이는 두어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썼고,

블로그 활동도 했다.

그런데, 국립대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아이는

블로그에서 다분히 좌파 혹은 저항적인 내용의 글들을 비밀글로 전환해놓았다.

입시 합격발표가 나서야 아이는 정치적 의견을 담았던 글을 공개로 바꾸었다고.

자기검열을 했던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고놈 참 맹랑하네 싶다가

어째서 아이가 열댓 살 때 쓴 글조차 스스로 검열을 거치게 하는가 소스라쳤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아‘왔다’.

‘살고 있다’고 쓰지 않는 건 ‘의지’를 말하고자 함.

“그런 나라에 안 살 것이다!”

떠나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살아서 ,남아서, 그런 것과 싸우겠다는.

수능을 끝낸 뒤로 우리는 세월호로 앞뒤가 갈라지는 이 땅의 현대사에서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짚어보고 있다!


산골에서 일하다 제도학교에서 3년 만에 무사히 명문대에 진입한 아이의 이야기로

엊그제부터 언론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건 하고 싶지 않다. 안 한다, 연락 마시라!

그저 머잖아 책을 내려고 하는 아이 키운 이야기에 대한 홍보쯤으로 한 인터뷰였던.

그런데, 한 기자와 오고간 기사 ‘이후’ 메일이 퍽 기분 좋았다.

성실하게 산 젊은이가 애정을 가지고 쓴 기사의 후속담.

매체의 특성상 미처 다 담지 못한 안타까움이며를 전해왔던.


‘... 어쩌면 저는 하다군의 이야기(저와 닮은 듯 같지 않은)를 통해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저도 이번에 하다군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날에, 햇살이 반겨주는 좋은 날에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제가 저의 글을 쓸 수 있는 날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선생님께서 쓰시는 책이 완성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또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분이시구나...

부모님이 그리 길러주셨을 테다. 경의를 보냈다.


‘...아이 키우면서도 별반 한 게 없고,

그저 이 산골 삶을 건사하느라, 산골에서 살아내느라 바빴습니다.

(그 잘난 물꼬 일 하느라. 제 나이 스물 둘에 물꼬를 시작해 서른 해 가까이 이르렀군요.

물꼬는 저부터 모든 이들이 자원봉사자입니다.

모자라는 살림을 제가 밖에서 강의하고 글 써서 보태는)

아이에게 이 거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워 미안함이 또한 크기도 합니다.

학교만 해도 고교 3년 다니는 동안 정말 기도 말고 한 게 없는.

(영동고에서 아이를 키워낸 거지요. 영동고가 대학 보내줬어요.)

애써서 산 그 시간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갔다면 고마울.

그 친구 역시 정말 열심히 살아냈지요.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서로 돕지 못해도 아쉬운 소리만 안 해도,

자신의 삶을 각자 잘 사는 것만 해도 서로를 돕는 것일 터.

좋은 기자로 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좋은 세상에 살고 싶지요.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기자님도 저도 우리 하나하나 좋은 사람이 되기로!’


산마을로 돌아오자 눈이 맞았다,

읍내에서는 비였는데.

갈라콘서트가 있었고, 음악과 춤에 젖었다가 돌아왔다.

이제 기숙사를 나온 아이도 만나고 왔다.

아이는 과외 때문에 어제부터 읍내에 얻은 꼬마방에서 지낸다.

3월 입학 때까지 한 학기 생활비를 벌어둔다고.

고교를 다니며도 별 보태준 것도 없는데

고마울 일이다.

“나는 내 삶을 살게, 너는 네 삶을 살아!”

늘 그랬듯 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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