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영하 11도.

서리로 온 세상이 하얗더라.

학교아저씨는 부지런히 곳곳의 연탄불을 살피고

뒤란 보일러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당신 없으면 하지 못할 물꼬 살림이라.


겨울다운 기온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광화문에 모였다.

주말이 아니어도 집회는 계속되었다.

‘누구나 좋은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은가.

좋은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만들지.

좋은 사람들이 되도록 같이 애쓰자.

그리고 광화문에서 어깨 겯고 같이 촛불을 드는 동지이자.’


산골에서 어미 일을 도우며 살던 아이가

제도학교 3년 공부로 무사히 명문대에 진입한 기사들이 났고,

여러 어르신들이 반가워라 고마워라 인사를 넣어오셨다.

공부는 애가 했는데 인사는 에미가 받는. 바라지 한 것도 없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동안 늦도록 잘 수 있었던 아이가

새벽같이 일어나는 게 안쓰러워

집에 올라치면 깨워달라고 하는 시간에 깨워보질 못한.

“그렇게까지 해야 돼?”

“제가 한다잖아요!”

공부하는 걸 힘들어라도 할라치면 뭐 그러면서까지 하느냐 말리거나,

툭하면 학교 빼먹고 어디 가자고 꼬드기거나,

공부하는 게 무슨 대단한 유세냐 구박하고,

학교 못 다니겠다 하면 얼른 ‘그러니까 그만두라’ 하고...

그런 속에도 굳건히 학교를 다니고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얻어냈다.

역설적이게도 공부 고만해라 말린 게 공부를 더 하게 했던.

그런 말들 하지 않던가, 게임이 교과목이라면 아이들이 아니 할 거라는,

게임을 시험 본다하면 아이들이 싫어할 거라는.

다 자기 일이 되면 움직이는 게 사람이라.

자기 일이니 자기가 급해서 해야 했던.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하는 그것이 자기 일일 때 자발적으로 움직이나니.


읍내에 영화관이 생긴 지 꽤 되었으나 걸음이 쉽지 않다가

오늘 나간 길에 극장에 들었다.

그 시간 아이가 수시원서를 넣은 한 대학의 합격발표가 있었는데,

과외를 하다가 연락을 받고 영화관에 찾아와 cctv로 확인하고 소식을 전하더라.

아이가 가고자 하는 뇌생명과학자의 길을 훨씬 좋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었다.

“학벌 필요 없어요!”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많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대학에 포기서류를 보내더라.

그래서 더 멋있게 보인 대학입학기였으니.

자신의 길을 가라, 누가 뭐라든!

<자본론> 서문에서 맑스가 인용했던, 지옥의 문 앞에서 외쳤던 플로베르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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