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시를 지난다.

문제를 알게 된 시점으로부터 6시간째.


사택 된장집 수도가 멈췄다.

사람이 지내고 있고, 계속 쓰고도 있는데 왜?

그것도 씻고 있는 중에 멈췄다.

씻는 중에 찬물에 쏟아지는 일은 있다, 아주 가끔.

그땐 가스통을 교체해야 하는 때.

그런데, 아주 물이 안 나온다.

얼었다면 수도꼭지에만 더운 물 부어주면 되었고,

조금 더 얼었을 땐

욕실 안에다 휴대용버너 갖다 놓고 주전자 물 끓여 수증기로 해결한 적 있다.

이건 수도꼭지까지 이른 물이 다 빠져나오고 관이 빈.

집으로 들어오는 수돗물이 밖에서 얼었다는 소리.

아, 어딘가?

뒤란 보일러실로 먼저 좇아나간다.

물이 없으면 보일러의 보충수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고,

그러면 방 난방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이 한겨울에!

연탄보일러임.


엄살쟁이!

이런 일이 생기면, 이 낡은 살림은 퍽 자주도 그러한데, 마음이 먼저 힘들고,

이건 누가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할 순 있나, 얼마나 걸리나,

그리고 얼 만큼 큰 경제적 손실을 부를 것인가,

더구나 그 문제가 겨울이라면 엄살은 더 심해진다.

추위를 절대적으로 두려워하니. 겨울잠이 필요한 사람에 가까운.

이건 또 문제가 뭐냔 말이다.

이 밤에 적절한 조치가 되지 않아 더 큰 문제로 가지 않도록 해얄 터인데,

그 조치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런데, 이별처럼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도

시간은 혹은 빈도는 힘이 세다!

그만 지레 머리가 먼저 얼어버리는 현상도 좀 낫다, 이 산골에 오래 사니.

공동체를 해체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중심에서 감당해야 하기만도 여러 해,

곁에서 같이 살림을 돌봐주던, 제도학교를 가지 않았던 아이까지 기숙사로 간지 세 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좇아와 손을 돕던 아이인데,

그 아이조차 없을 땐, 이처럼 긴급한 상황일 땐 별 수가 없는 거다,

어디로 봐도 내 일인.

(정 안 되면 자고 있는 아이를 전화로 깨우기까지 한 일도 있는.)

우선 두렵기가 덜하지. 겁은 좀([조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도.

겨울 앞에 잠시 긴장을 놓은 순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어쩔 것인가 하나하나 따져가 본다.

이리 할 수 있음도 단단해짐이라 해석한다. 단련돼 온 세월이리라 여긴다.


자,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건물로 들어오는 쪽 물이 보일러실인데,

영하라고 하나, 구멍숭숭한 보일러실이이라도 연탄 온기가 있는데, 왜?

일단 들어오는 수돗물이 언 것은 확실하네.

어디서부터 손을 댈 것인가 두리번거리는데,

이게 뭐람!

세상에! 엊그제 거센 바람에 보일러실 문짝이 떨어졌는데,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학교아저씨가,

무슨 여러 단계 거쳐야 하는 보고체계도 아닌데,

하기야 사람 손이 늘 모자라니 놓치기 쉬운,

그만 말할 지점을 놓치고 이 밤이 돼버렸던 거다.

북쪽으로 난 보일러실, 문도 북쪽이니 한 데인데,

하루 이틀이야 무슨 일이 있을까 하고 종종거리며 다니시다 그만 스르륵 가버린 시간,

하, 오늘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는 날이란 말이지,

낮에도 계속 영하권인.


우선 낡은 이불을 끌고 와 문틀에 드리우고 위쪽으로 피스로 고정했다.

보일러 보충수도 바닥이네. 그것부터 채우고.

야외용 버너와 물주전자를 들고 와 물이 들어오는 쪽 벽면에서 끓이기 시작한다.

얼긴 했으나 터지는 상황까지 안 갔으니 운 좋은.

우리 올해 그렇다,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지금 이 시기 이런 상황 벌어짐을 다행으로.

아이들이 들어와 있을 때, 혹은 들어오기 직전이면 얼마나 소란일 것이냐.

전기난로도 하나 챙겨와 문제의 벽 쪽을 향해 켜두기도.

전기와 불이니 지켜보아야 하는.

엉덩이 시려오면 방으로 들어와 녹혀 가며 지켜보기.

우리 기표샘, 계자의 긴긴 겨울밤을

그렇게 본관 보일러에서 아궁이 불을 이리 땠을 것이다...


산골에서 사는 일이 그렇다.

해일이 일어 바닷물 넘어오는 바닷가 집에서

왜 다들 떠나지 않고 사는가, 왜 해마다 같은 일을 겪는가,

그래도 살아가는 그들의 삶터 마냥

이 삶이 또한 그렇다.

그래도 좀 나아가는.


하오엔 올해 안으로 해야 할 마지막 서류 관련 일들을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손님 다녀가다. 관내 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

사람 귀한 산골에서 공감을 가진 선배가 있다는 건 얼마나 복일 것인가.

보고 배울 많은 어른이시라.

자유학기제도 있고,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이 올 것인가, 이곳에서 갈 것인가, 서로 가늠해본.

마침 인근 초등학교 지원수업도 내년학년도에 잡혀있다.

같이 엮어 바깥수업을 갈 수 있을.

2017학년도를 안식년이라고 하고 기존 일정들을 잠시 놓은 사이

또 그렇게 새 일정들이 벌써부터 채워지고 있다.


수시에 합격했던 아이는 명문대를 포기하고 제 길을 가기로 한다.

학교 이름에 기대지 않는다는.

먼저 발표가 났던 학교에 합격 포기 서류를 냈다.

8명 모집에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이 180명이나 지원.

다행히 무사히 진입했다.

그것도 장학금까지 받고.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 혹은 순수과학을 공부하는 일이 그렇다더라.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중요할!

정녕 사람살이에 기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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