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3.불날. 맑음, 봄날 같은

조회 수 745 추천 수 0 2017.01.09 03:49:16


봄날, 그것은 단지 기온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말에는 동토를 벗어난 안도감도 들었고,

기쁨에 다름 아닌 감정도 섞였고,

양지의 다사로움으로 기분좋은 간질거림이 담겼고...

봄날 같은 오늘이었다.


달골에 올랐다.

겨울 한가운데는 비워두는 공간.

풀도 베고 작업차량도 드나드느라 명상정원 '아침뜨락' 들머리의 현수막과 룽따가

내려져 한 쪽 감나무에 감겨 있었다.

올겨울 계자에서도 하루쯤 올라 거닐까 하는.

하여 계자 사전 답사 된 셈이었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기존의 것들을 풀어 다시 걸어두고,

새해 왔으니 새 룽따를 걸고도 싶었네.

티벳에서 다녀간 이가 챙겨준 것을 가지고 올라갔더랬다.

룽따, 바람의 말(horse), 법문이 그리 멀리멀리 퍼지라는 기원이라지.

아이들의 소망도 그리 하늘까지 닿기를.


날이 푹해서 가능했을 게다.

올겨울은 움직임이 좀 재지더라.

어제부터 계자 준비를 하나씩 하고 있고,

샘들이 오기 전 이 안에서 먼저 하고 있어얄 것들을 챙기다.

1단계는 샘들 들어오기 전 안에서 첫 움직임,

다음은 준비위 샘들 들어와 이어 움직이고,

그 다음 모든 샘들 들어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미리모임을 하면

비로소 다음날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교무행정일은 준비위 샘들이 들어와서야 하는 일.

행정일이 서툴러서도 그렇고, 게으름 탓이기도 하고.

그런데,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날씨가 말이다, 어찌나 순순한지,

추위가 심각한 장애일 만큼 병적인 나는 동면이 필요할 정도인데

이렇게 푹한 날씨라면!

처음으로 계자에서 쓰일 글집을 좀 손보기도(편집).

근데 산골밤의 온기 적은 교무실은 역시 춥고 손 시렵더만.

움츠려서 시간은 길고 더디더라.

역시 샘들 들어와 해얄 모양일세.

낼 이번 계자 교무행정 맡은 휘령샘이 먼저 들어오나니.


늦은 생일선물이 닿았다.

청력이 덜 훼손될 좋은 헤드셋이라는.

야물게 제 살림을 챙겨도 쓸 곳이 있으면 또 그리 큰돈을 풀기도 하는 아이라.

언젠가 어른도 쉽지 않을 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학교 살림에 보태라 꺼내준 적도 있는 아이였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그 아이,

"혹시 물꼬에서 돈 필요하시면 다른 사람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제게 먼저 말씀하세요."

그참... 대단히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며 산 것도 아닌데...

내참, 그런 소리를 아이에게 다 듣고 산 물꼬 살림이더라.

저 눈에도 오래고 낡은 공간을 건사해 나가는 가난이 보였을 것이니.

그렇다고 우리가 누구에게 돈을 빌려달라 산 것도 아닌데.

여튼 아이들이란 그리 맹랑할 때들이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동안 제법 원고료를 모았던 그라.

어느새 스무 살에 이르렀고,

이제 홀로 살아내야 하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 과외를 하느라 여념 없네.

상주하는 인력이 적어 이 살림이 돌아갈까 싶더니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또 사람이라.

어려웠던 시절 아이를 기대고 살았고,

이제 그 아이 세상으로 간다!

우리 어른들은 또 그렇게 나이를 먹고.

사는 일이 잠깐.

그래서 아이들과 더 많이 눈을 마주하고, 더 많이 손뼉치고,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아이들이 계자를 오지 않을 때의 이유들이 당연히 있다,

더 편리하거나 더 매력적인, 혹은 더 필요한 곳에 가거나.

경제적인 이유야 참가비를 형편대로 낼 수 있기에 오려 들면 못 올 것도 아닌.

물꼬를 좋아하는, 그래서 일곱 살 때부터 아주 클 때까지 온 한 아이는

올 겨울도 아버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엄마는 당신 뜻대로 보내고 싶어

그러면 내가 돌벌어 보낸다며 따로 파트타임 일을 구하기까지 하며 아이를 보냈더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까닭으로도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였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이다.

그런데도, 왜?

보편이 아니란 게 싫다는?(정치 지향적이라는?)

보편적이다 않다? 아니. 물꼬야말로 보편적이다!

사람의 마음가짐, 사람의 노릇, 염치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아버지는 무슨 사이비종교마냥 물꼬에 대한 아이들의 열광이 불편해서

다시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한 적도 있다.

여기서 키운 아이도 멀쩡하고, 대학도 무사히 갔는데.

화목을 깨면서까지 올 거야 무에 있겠는가.

필수코스도 아니고.

아이 마음 잘 풀어주시라 했다.

자정도 한참 넘어서 아이는 애절하게 문자를 보내왔다,

샘, 보고 싶어요...

나도 네가 보고 싶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하는 생각이 들다가,

뭐 각자 저 생각대로 살아가는 게 또 사람살이라.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가

뭐 또 우리 곁을 지나가는 바람일 지라 한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으나 굳셀 것이므로!


학교를 다니지 않던 아이가 제도학교 3년 만에 무사히 명문대 진입을 한 기사가 났고

댓글들이 달렸다.

무슨 댓글이란 걸 읽어본 적도 없다가, 그럴 짬도 어려운 산마을 너른 살림이라,

그게 또 이곳 애 이야기라고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게 되었더라.

재밌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다른 의견으로 다투기도 하고

심지어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그 가운데 눈에 띈 글 하나, 탱이라는 이.

‘좋아하는 분야에 공부하게 되어 축하합니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고맙더라. 그렇다,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게 된 아이에게

그런 축하쯤 해줄 수도 있잖겠는가.

우리가 자주 외국에 다닌다 하면

여행경비를 받아 움직이는 줄 알 리 없으니

속 모르는 이들이 팔자 좋다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비난까지야.

그게 좋다 싶으면 자신도 그리 하면 될 것이고

내가 못 한다 하여 그걸 하고 있는 이를 욕할 일이야 아니지.

물꼬를 세웠다고 표현돼 있으니 그것 역시 돈푼깨나 있는 이라 말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 또한 욕할 게 뭐 있나.

사실과도 다르지만, 설혹 사실이라 해도 비난 받을 일은 아닌.

정말 언더도그마라.

누군지 짐작가지는 않지만 아이 어미의 어린 날을 기억하며 쓴 글도 있었더라.

(하하, 왕년에 영민했던 시절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니.)

실시간으로 이리들 반응하며 사는구나,

페북이고 카스고 트위터고 밴드고 답체 아니 하니 이런 거 통 모르다

요새 돌아가는 세상을 좀 들여다 본?

우리는(우리 세대? 노년?) 옛날 사람이라

우표 붙여 편지 보내고 이제나저제나 고개 빼며 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게 더 익은 사람들이라

이리 즉자적인 반응들은 숨 가쁘다.

나는 낡아서 옛날이 편하고 좋다.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어디 만큼 왔나 시간 시간 다 아는 것보다

설레며 기다리다 정작 만났을 때 이곳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일을 나누는

그런 느린 흐름이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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