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계자 미리모임이 있는 저녁.

샘들은 낮 버스를 타고들 미리 와서 계자를 할 공간을 치워냈다.

살림살이들을 계자 구조로 짜는.


봄날 같은. 그것은 기온의 의미만이 아니었다.

‘행복했다’. 평안한 마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심전심들.

그래서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물꼬나 되니까 이 숫자가(스물) 수제비를 다 먹는 거야!"

칼제비를 먹기로 한 낮 밥상을 차리는 동안

샘들은 가방부터 풀어놓고 학교 뒤란으로 내려갔다.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끌어올렸다.

발은 질퍽거리는 진창에 빠지고, 눈에 미끄러지고...

부려져 쌓인 나무, 사람 손이 무서운!


물꼬 공간은 열악하다.

겨울은 더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단련이 나를 당당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보내는 순간도 자신의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를.

아이들 맞을 청소를 한다.

해도 해도 표 나지 않는, 하지만 안 하면 표 나는 낡은 살림에 윤을 내는.

모든 사물에는 이면이 있다,

청소의 핵심은 후미진 곳, 구석진 곳을 밝히는 것.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성스럽게 사는 훈련이기도 한.

글집과 자료집을 전하러 온 금룡샘도

전등을 갈아 끼우고 망가진 커튼 봉을 바꾸고 겨울 막을 달아주시고.


열심히 하면 서로 힘이 난다.

샘들은 나를 위해서도 곁의 너를 위해서도 열심히 움직인다.

우리가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하기,

그래서 아이들도 덩달아 그러하도록.

그런데, 물꼬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사람도 많고 다들 일도 잘하는데,

일이 퍽 많더라고.

왜? 보는 눈이 커져서!

이곳에서 나이를 먹어온 동안 우리 그리 성장하고 있었더라.

(아이로 계자를 오고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샘이 되는 시간들!)


내일은 세월호 1000일, 사람들은 여전히 광장으로 갔고 촛불을 들고 있다.

우리 거기 아닌 이 산골에 있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 현장이라.

우리 삶을 견지해내는 것이 또한 저항일.

광장의 연대를 일상의 연대로!

우리는 그 장에 있다.


‘미리모임’.

혼자 살아도 한 살림.

애가 하나라고 계자가 아닌가.

결코 효율의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여느 곳의 행사라면 적은 규모라고 취소되기 쉬운.

하지만 재정구조가 좀 다른 물꼬여서 가능한. 이윤 목적이 아닌.

우린 임금이 없다, 모두 자원봉사.

그래서 유지가 가능한.

아이 열둘에 어른들 스물(새끼일꾼 포함).

하여 모두가 아이가 되기로 하였으니,

작은 애들 열둘, 중간 애들 일곱, 큰애들 열셋, 그렇게 서른둘이 할 163 계자.

아이들 수송을 위해 품앗이 십년이 넘어 된 희중샘이 들어오고,

뒤란 장작불을 밤새 때기 위해, 초등 3년이었던 때부터 와서 서른 가까이 된 기표샘과

밥바라지에 붙으러 물꼬 6년차 정환샘이 오고,

일곱 살부터 오던 아이가 자라 스무 살에 이르고,

지난여름 교원대 샘들 여섯은 그 구성원대로 모두 다시 이 겨울 속으로 왔다.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새끼일꾼이 둘이나 날아오고

계절마다 온 이가 있는가 하면

수년 지나 다시 찾아든 이도 있고.

교사도 있고 임용을 준비하는 이도 있고 사범대생들도 있고,

그렇다고 꼭 사대와 교대 관련이들만 있는 것도 아닌.


저녁을 먹은 뒤, ‘다행하게도’ 저녁밥상을 물린 뒤, 수돗물이 멈췄다!

산골 삶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계자에선 겨울에 십 수 년 전, 여름에 수년 전 그런 일 있었다.

샘들이 학교 동쪽 도랑에서 물을 길어와 그때를 보냈던.

마을에 수도를 다시 정비하고는 그런 일 없다가

최근 도로 공사를 하며 건드린 관 때문인지 서너 차례 그런 일 있었는데,

물탱크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는 게 탱크를 채우고 넘치며 물이 공급되는 방식이라

겨울에 취약하고도 하던데,

아, 계자 앞둔 밤 이렇다니.

그런데,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

우리는 물을 긷고 불을 때고, 산골 삶을 유쾌하게 즐길 수도 있으리.


받아놓은 물로 밤참 먹은 걸 치우기는 하였는데,

씻는 것까지는 무리이다.

고래방 뒤란 우물물을 긷자고도 하다가

그러느니 그냥 개울로 가서 씻고 오자 하더라,

그 젊음들이 눈부셨다.

아침 밥상을 차릴 물은 있고,

아이들이 적은 때여 다행하고, 샘들이 많은 때여 또한 다행하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날이 밝으면 수월할 것이고,

대책을 강구하리.

우리에겐 큰 물통 많으니까.

물꼬의 삶은 정말 날마다 기적이라.

우리의 선함을 믿고, 선한 끝은 있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기억하나니.

고마운 삶이여!


밤, 깔깔대고 웃었던 일이.

마지막으로 씻고 교무실 들어섰는데,

기표샘과 희중샘이 난로 곁에 자리를 깔고 머리를 맞대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니, 뭐래?"

금룡샘이 80년대 대학생활을 전했더라나.

“옛날에는 여학생이고 남학생이고 구별 없이 과방에서 같이 일하다 자고 그랬다며?”

하하, 그래서 저들도 오늘은 교무실서 잘 거라나.

계자를 할 때면 교무실이 그대로 교장실이기도 한.

서로 이물 없는 세월,

희중샘만 해도 20대를 여기서 다 보낸 십년 넘어 된 시간,

기표샘은 초등 3년생이 자라 스물여덟에 이른.

계절마다 부지런히 물꼬에서 같이 보내는 이들,

아들에 다름 아닐, 이것들이 일이 안 풀린다 싶으면 가슴이 저리는 그런.

그래서 또 진한 여운이 이는 밤이었더라.

그런데 그대들은 모르지? 새벽이면 추울 것이다.

연탄난로로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모둠방처럼 난방이 되는 곳이 아니라

아래서 올라오는 찬기에 요를 잘 깔아야 할 것.


아, 내일이면 아이들이 온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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