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의 아침,

얼마나 불을 지폈던지,

밤새 복도에 난로도 켜두어 훈훈했다, 이 구멍숭숭한 건물이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대배는 아침의 시작이었다.’(윤호 형님의 하루 갈무리글 가운데서)

그렇다!

‘오늘 아침 해건지기 시간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도중부터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에 더 집중해서 기도하니 정말 놀랍게도 힘든 게 훨씬 줄었었다(예경쌤 말대로). 정말로 마음가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경민샘)

샘들은 고래방에서 돌아와 아이들과 다시 해를 건졌다.

전통수련 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하고 있는 태수며들이

샘들은 기특하고 귀엽고 재밌고.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밥상머리공연이 있었다.

물꼬의 소박함 혹은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밥상머리무대라.

정은이가 캐러비언 해적 주제곡을  피아노로 쳤고,

여원이는 정지용의 ‘얼굴’을 낭송했다.


얼골 하나야/ 손가락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우리 품격을 높여주었더라.


‘다음에 밥바라지 하게 되면, 양배추 채칼을 꼭 챙겨오고 싶다. 아, 그밖에 좀 더 유용한 것들도 챙겨올까 싶다.(밥바라지 알타리 1호기 정환샘)

고맙다. 사람들은 그렇게 물꼬를 채운다. 그렇게 물꼬가 살아왔다.

사람살이가 이런 거다. 이런 게 사람 같이 사는 거다.

살피고 아껴주고 행동하고 그 마음을 서로 알아주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그런 걸 본다. 보고 배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샘이 되고 논두렁이 되어 물꼬를 꾸려간다.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 하는!

‘밥이 매일매일 맛있어서 밥시간에 무엇이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소연샘)

어느 때보다 밥이 맛난. 그것이 어디 밥하는 기술만으로 그러하겠는가.


손풀기 마지막 시간.

오늘은 보다 복잡한 램프를 가져다 놓았는데도 그걸 그려냈고, 재밌다 했다.

집중력에 놀라고 그림 실력에 놀라고 그것이 심화되는 것에 놀라고.

물꼬에서는 뭔가를 참 쉽게 배우는 것 같다고들.

아주 긴 시간을 사물과 그림 사이에서 명상했던.


‘우리가락’; 판소리와 풍물.

졸음이 몰리는데, 안 해도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다른 재미난 것도 많은데,

슬슬 게으름이 몰려들고,

계자를 할 땐 두세 시간을 채 못 자고 움직여 딱 이 맘 때 잠잠이가 아는 체를 하는데,

그 마음 밀고 끄응!

안다, 하면 좋다는 걸, 하면 벅차오를 거란 걸, 영차!

했다.

아, 그 신명이라니!

판소리 한 판 먼저, 춘향가 한 대목을 배웠네.

그리고 풍물가락. 공연까지 한순간에.

무언가를 얼마나 쉬 배울 수 있는가를 이곳에 오면 본다!

‘... 어느새 가락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장구, 북, 꽹과리를 연주하는 것을 보니 나도 흥겨워지는 기분이었다. 현준이락 장구 치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휘향샘)

‘현준이랑 서윤이랑 자기만한 장구를 가지고 팔이 아픈데도 끝까지 치는 걸 보고(덩기덕 이런 거 말하면서) 되게 귀여웠다.’(민혜샘)

‘정말 오랜만에 한 우리가락이었습니다. 묵힌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물놀이를 빨리 배워서 신명나게 두드릴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락하고 안식년(물꼬는 2017학년도 안식년. 하지만, 계자는 쉬지만 또 다른 교육일정들이 또 그 안식년을 채울 계획)이라 조금은 다행인 것 같습니다.’(수연 형님)

‘오랜만에 장구를 쳐보았는데 아이들과 어울려 함께하니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큰 목소리로, 큰소리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물꼬니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품앗이일꾼으로라도 올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예지샘)

‘주방에서 들리는 우리가락 소리가 참 좋았다. 짧은 시간 배우는 것일텐데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정환샘)

‘항상 좋아하고 기대했던 우리가락 시간은 웅장하고 정말 공연하는 느낌이 났다. 어린 아이들부터 큰 아이들, 샘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태희 형님)

‘다음에는 풍물패 데려와서 한 번 놀아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현진 형님은 초등 때 물꼬에서 풍물을 만났고, 고등학교 3년 내내 풍물패 활동을 했더란다.

‘옥샘 판소리 정말 잘 들었습니다.’(다은 형님)

휘령샘 말처럼 TV에서 판소리가 나온다면 다른 흥미 있는 채널로 돌리는데,

이곳에서는 눈앞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듣고 배우니

그것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는.

그래서 교사가 중요한.

교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는가가 아이들이 주는 영향이 클 것, 당연하겠지만.

‘우리가락은 이번에 처음으로 해봤는데 아이들이 조금은 어렵게 느낄 수 있을만한 오랜 노래 가락들을 굉장히 즐거워하며 부르고 치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옥쌤의 판소리 실력, 사물놀이 실력도 엿볼 수 있어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경민샘)

‘우리가락 때 옥쌤이 너무 행복해보이셨다.’(윤호 형님)

어쩌면 이곳에서 우리 어른들이 행복해서 아이들 또한 행복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일!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잘 사는 게 중요하다.

하여 물꼬는 아이들의 학교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학교.

어른들이 잘 살아야 그런 어른들을 보며 어른이 된다는 건 저런 거구나 희망적일.


‘보글보글 2’.

“보글보글 한 번 더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의 바람대로 꾸욱 꾹 집어넣은 시간.

‘고구마부침개’.

채성이는 당근을 자르고, 현준이는 고구마를 씻고, 태수는 반죽을 하고,

그러기로 잘 하다가 그만 사단이 났다.

채성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현준이가 제 앞으로 도마며를 뺏어갔고고,

채성이는 화가 났다.

문제는 그 한 번이 아니라 벌써 여러 차례 채성이와 태수가 쌓인 바가 있었던.

현준이가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는 거다.

먹는 것도 욕심이 많단다.(에너지가 달리는 게 아닐까 싶은)

그런데, 현준이도 할 말이 있었다.

현준이가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많이 추워해서

딴엔 저들이 그를 생각해서 이불도 여러 장 덮어주었는데,

현준이 편에서는 너무 또 많이 덮어 되려 짜증이 났다.

칼과 도마를 제 앞으로 가져온 것도 채성이가 다 한 줄 알고 가져왔다는 것.

그런데 그런 것들이 서로 잘 소통하지 못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말해야 한다.


건호 결 성빈이가 들어간 핏자방에는

시끄러울 것 같았고, 역시 시끄러웠다는.

일곱 살부터 매 계절마다 만나는 건호이고, 듬성듬성이지만 줄곧 보는 성빈이고,

결이도 벌써 세 차례 물꼬를 왔다.

저들끼리는 물꼬 동기.

성빈이가 정말 맏형이더란다.

뭐 하나 부탁하면 샘들 말 척척 알아듣고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고

자료를 가지러 갈 때도 샘이 들고 있던 걸 대신 들어서 가져간다고도 하고

재료손질부터 만드는 거까지 적극적으로 자기가 하겠다고.

‘이제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 치고는

칼질도 잘하고 요리하는 품도 많이 해본 것 같았다.’(예경샘)

‘건호는 장난이 심하지만 누구보다 잘못에 대한 인정이 빠르고

사람의 기분을 풀어줄 주 안다고, 애교가 많아서 정말 귀엽다.’(수연 형님)

그래서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더라도 미워할 수 없는 건호라니.


파스타.

도은이랑 여원이가 서윤이를 귀여워하고 잘 챙겨주고,

서윤이랑 그런 언니들 배려하고 존중하고.

언니들은 양파와 마늘 써는 걸 서윤이더러 하게 하고,

서윤이는 다른 방에 마실간 언니들이 올 때까지 젓가락도 놔주고 기다리고.

그런 거지, 사람 관계란 게. 서로 애쓰는 것, 애고 어른이고.


은서 인영 정은이는 맛탕을 만들었다.

인영이의 칼질 잘 하는 거야 익히들 알았는데 오늘보니 더욱 대단하더라고.

속도도 빠르고 손놀림도 좋더란다.

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구마 다듬는 것을 도와주고,

얼마나 환해진 인영이인지.

정은이는 늘 뒤에서 걸어오는 아이.

관망하고 그런 다음 차츰 들어오는.

그리고 사랑쟁이 은서였으니.


보글보글방에서 부산할 적 밖에서는 기표샘과 태희 형님, 윤호 형님, 수연 형님이

장작을 쪼개고 날랐다.

‘오늘 일해 봤는데 매우 추웠다. 때문에 삼촌과 기표쌤에게 또 고마웠다.

들어와서 해주신 간식이 매우 맛있어서 옥쌤께 고마웠다.’(윤호 형님)

어묵떡국을 끓여주었다.


연극놀이. 분장놀이기도 했던.

여태 한 모든 활동의 집약체. 연극이란 게 그래서 종합예술이라 할 테고.

그래서 또 시간상으로 뒤로 배치되는 것일 테고.

손풀기처럼 이곳에선 어려운 게 없다?

1시간 20여 분만에 뚝딱 내놓은 공연물.

머리 맞대고, 조율하고, 상황 안에서 대사를 만들어내고, 분장하고,

재치 있고 재밌는 대사들로 요절복통.

고래방 무대에선 조명이 켜지고 음향이 울리고,

알타리 1호기 정환샘이 구백아흔아홉 관객의 대표였더라.

태수의 분장이 압권이었다고들.

올라간 눈과 큰 점, 두꺼운 입술, 빨간 볼이 팥쥐 엄마의 역할을 잘 드러냈는데,

처음엔 자꾸 이상하다더니 하루재기 시간 분장이 가장 재밌었다 했다.

막이 내려진 뒤 처음으로 동생 건호가 자랑스러웠다는 윤호 형님.


대동놀이.

고래방으로 건너가면서 인서가 그랬다,

“오늘은 정말 신기해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도 않고 눈물도 안나요.”.

늘 아이 멀리 보낸 부모들만 애탄다니까, 저들은 잘도 살고 있는데.

어제부터 밤 울음을 그친 인서였다.

현준이는 밤에 몹시 피곤해한다.

모둠샘이 대동놀이 안 가게 할까도 생각했다는데,

뭐하는데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친구들은 있어요, 그리고는 대동놀이를 하러 좇아갔다.

같은 것도 누구랑 하느냐,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더뇨.

아, 이 밤이 지나가는 아쉬움.

‘... 정말 친한 친구들과 떠드는 것 같았다. 4일간 엄청 가까워지고 친해진 것 같아서 기뻤다. 서로 학창시절 이야기랑, 페북스타이야기 등등 정말 친구들과 하는 일상 대화를 하니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소연샘)

그렇다니까, 이번 계자는 작은 아이들, 중간 아이들, 큰 아이들, 아이들만 있는 계자, 하하.


새끼일꾼들의 임시한데모임.

12학년들이 주도해서 계자를 돌아보며 남은 시간을 준비하는 자리쯤 되었다는.

기특하고 고마웠다. 저것들이 대개 물꼬 계자 초등부터 자라 스물이 되었다.

일곱 살부터 본 이도.

나는 그 아이들의 성장을 알고 있다! 보았다! 느껍고, 영광인.

여원이도 새끼일꾼이 될 거라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가 되고 논두렁이 되고.

여원이는 이미 새끼일꾼이라 할 만한.

이번만 해도 동생들을 살뜰하게 건사하고 있었다.

오늘도 아이 하나 화장실 실례를 했는데,

옷 갈아입는데 가려주고, 여기 넣어둘게 하며 젖은 옷 가방에 정리해주고,

누가 볼까 걱정하는 아이에게, “언니가 오지 말라고 할게.” 지켜주고.

그 아이 자라난 여러 해를 보았다. 예쁘게, 곱게 잘 자란다. 고맙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자신만의 시간.

크로노스가 타자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나의 시간쯤.

우리들의 빛나는 카이로스라.

‘매일매일이 너무 빠르다.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새기자!’

현진 형님은 하루 정리글에 그리 쓰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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