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여차’, 산오름.

민주지산 가나요, 뒷산 가나요?

아니, 앞산.


아침수행 대신 가마솥방으로 모인 샘들이 김밥을 싼다.

‘김밥을 만들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여기 와서 먹었던 김밥과 똑같아서 살짝 놀랐다. 산에 올라가서 먹었던 그 김밥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웠다.’(재용 형님의 하루재기 가운데서)

그렇게 아이 때 몰랐던 걸 새끼일꾼이 되면 알게 되고,

품앗이일꾼이 되면 또 보이는 게 있고,

그제야 물꼬가 돌아가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왜 물꼬가 존재해야겠는지, 나도 뭔가 해야지,

깊이 물꼬에 대한 애정들이 쌓인다지.


아이들이 일어나 이불을 개는 동안 한 켠에서 샘들 대신 아침수행.

티벳 대배 백배도 잊지 않았다. 뭐 대표기도쯤.

“뭐해요?”

“기도!”

“왜요?”

“눈 오라고.”

겨울산으로 아이들과 들어가는 긴장을 무사귀환에 대한 간구로 여는 아침,

정말 눈이 날렸다, 기별도 없던 눈이었는데.

‘준바하는데 춤추듯 눈이 오기 시작했다. 축하해주듯 예쁘게.’(휘령샘)

학교를 나설 무렵 구경만 잠시 시켜준 눈은 다시 떠나고 없었다.

이런 절묘한 날씨라니. 늘 고마운 하늘이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물꼬의 프로그램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는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연샘)

정적인 활동과 동적인 활동의 조화, 안과 밖 공간의 균형,

둘러친 자연, 아무도 임금이 없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건사하려고 모인 헌신하는 사람들,

오랜 세월로(그간 ‘백예순두 차례’의 계자가 있었다) 쌓인 시간,

그런 것들이 만들어낸 기운이 이 계자에도 계속되고 있을지라.


산오름 안내모임.

골 깊고 깃든 이야기도 그만큼 많은 이 깊은 산골,

오늘은 ‘솟구산’을 가리라.

‘옥쌤 앞에 모여 오늘 갈 산의 이름, 전설, 등산할 때 필요한 안내를 들었다.’(윤호 형님)

‘산오름 오르기 전 옥샘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사뭇 진지하고, 나도 전체를 보면서(공부든 뭐든) 움직여야겠다는 그냥 그런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휘령샘)

엄마랑 산골서 살던 검붉이 장이 서는 마을로 가서 공부를 하고 급제하다.

하지만 시기하는 이들로 결국 감옥에 갇히고,

나라가 위기가 처했을 때(완전 이순신전일세) 풀려나 싸웠으나

전쟁이 끝나자 나라는 또 그를 버린다.

엄마는 그저 기도하는 것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산에서 가장 높게 솟구친 산, 솟구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다 그만 그 자리에 얼어버렸네.

간청하여 검붉이가 어미를 만나러 가는데,

그 산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거라.

하지만 검붉이는 찾아냈다.

엄마는 곧게 걸었던 사람, 눈 위에 난 발자국들 가운데 흐트려지지 않은 길을 따라

결국 솟구산을 찾아내고 다시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어쩌면 지금도 살고 있을지 모를.

그 산을 향해 모험을 떠나노니.

‘화이팅 하자는 채성이와 재잘거리는 7살들, 말은 가기 싫다고 했지만 발걸음이 가벼운 아이들과 함께 출발’(휘령샘)


민우샘이 보낸 핫팩을 하나씩 흔들어 주머니에 넣고

인영샘이 보낸 주전부리거리,

재용 형님네서 온 귤,

인교샘네가 보낸 버너와 코펠,

미자샘이 보낸 약품들 챙겨

알타리 1호기 정환샘이 해준 밥으로 싼 김밥,

성재 형님네가 보내준 김가루 묻힌 김밥도,

거기 휘령샘이 사온 핫초코와 커피까지 넣고 우리 나선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아이들을 함께 건사해주고 있는가.


어제 아침 해건지기는 영하 9도의 날씨에 마당의 소도만 한 바퀴 돌다 들어왔더랬다.

여느 계자라면 달골을 다녀왔을 나흘째 아침이었을.

마침 산오름 나서는 길,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에서 먼저 노닐다.

무엇을 꿈꾸는가, 왜 꿈꾸는가를 나눈.

아침뜨樂의 한 공간 ‘아고라’에선 현택샘이며 꼬와이스 그룹의 공연도 있었다.


산으로 들어간다,

고개 너머 너머 어디쯤 있을 솟구산 길을 따라 검붉이가 어머니를 찾아 갔던 것처럼.

마른 풀들을 헤치고 계곡도 건너고 가시덤불 지나

죽은 자의 집 마당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사탕도 입에 넣고

가로막힌 커다란 산 하나 넘어 다시 능선에서 다리를 풀었다.

“너무 길어요.”

툴툴대던 현준이, 뒤처지면 초콜릿을 못 먹는다고 하자 뛰어가듯 하고,

인서가 다람쥐에 다름 없고,

서윤이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군밤타령을 내내 불렀다.

성빈이가 동생들 손을 잡아주며 맏형 노릇을 하고,

인영이는 몸으로 하는 활동은 뭐나 잘하듯 산도 그랬네. 여름보다 잘 타더라.

여원이는 가끔 야간산행도 했다더니 역시 능숙했다.

‘7살 아이들이 잘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씩씩하게 자기 모습대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5,6학년들은 앞을 진두지휘했다.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도 멋졌다. 5학년 여자 아이들도 무서워하면서도 자기들 발걸음을 차례대로 옮기는 모습이 좋았다. 산타기를 어려워하는 서윤 채성 현준이들과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대견했다. 쉽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휘령샘)

‘경사가 급하고 가팔라서 어린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고 자꾸 쉬자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산을 너무 잘 타서 놀랐다.’(태희 형님)

‘... 길을 만들면서 가서 힘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잘 가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올라갈 수 있었다.’(예지샘)

뒤에서 성재 형님과 윤호 형님이 행렬을 받쳐주었다.

희중샘이며 기표샘이며 힘 좋고 묵직한 남자샘들이 하는 역할을

성재랑 윤호, ‘저것들’(이 할미가 말하기에)이 자라서 해내고 있었다! 벅찼다.


벼랑 같은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버티던 몸을

아이들은 어느 순간 아예 엉덩이를 붙이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낙엽 미끄럼틀이었으니.

현준이와 채성이가 누구보다 신났네.

먼저 내려와 있던 건호며들이 올려다보며 외친다.

“아래 밤송이들 있어요!”

다행히 두텁게 여몄던 바지들이었더라.


도랑을 건너 길 앞으로 산이 또 가로막는다.

난들 이 산길을 어이 다 아나.

더구나 길도 없는, 요새는 사람들도 들 일 없는, 그저 짐승들만 다니는 산을.

그런데 지난가을 버섯을 따러 들었다 헤맨 덕을 지금에야 봤으니.

물꼬 삶은 늘 그리 앞이 뒤를 잘 끌어주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데.

“점심 언제 먹어요?”

“저기 봐!”

거기 소나무 하나 하늘로 한껏 뻗쳐

다른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쯤이 솟구산 아닐까 짐작케 하는 풍광 펼쳐지고 있었으니.

기적처럼!


뒷사람이 보였다 안 보였다 구비진 길 몇 돌아가

바로 그 나무가 손 뻗으면 닿음직한 곳에 자리를 폈다.

‘정상에 도착해서 높이 솟은 소나무 한 그루를 봤는데 넋을 놓고 볼 정도로 경이로웠다. ‘역시 물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태희 형님)

버너와 코펠을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하고,

다른 쪽에선 김밥을 펼치고,

간밤에 샘들이 종이상자를 잘라 만든 방석들에 철퍼덕 앉기도.

현진 형님이 귀여운 깡패라 표현하는 현준이 힘에 부쳤던지 짜증도 일었더니

핫초코에 다 녹였더라.

코코아며 커피며들을 마시고 주전부리거리들로 단맛을 챙기고 있을 적

하늘이 흐려지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씩 굵어지고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려가란 말이지.

서둘러 소나무 아래로 마저 올라가 모두 사진 안으로 들어갔었네.


다시 구부러진 길을 돌아내려와 뻥 뚫린 벌 같은, 하지만 바닥은 바위로 구불텅거리는,

산자락을 내려오는데,

다람쥐처럼 정말 잘 올라갔던 인서, 택시 타자고 투덜댔다나.

그래도 멈추지 않고 걷는 아이들이라.

‘처음에는 사실 너무 어려운 길이라 걱정도 되고 많이 힘들었는데, 내려갈 때, 썰매 타면서 내려오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그냥 다 재밌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힘든데도 잘 내려와서 굉장히 놀랐다.’(민혜샘)

산비탈 밭둑을 지나고 마을길로 내려서는 계곡에 닿았네,

그런데, 예닐곱 발자국이면 건널 다리로 얕게 넘쳐 흐르는 물 아래가 미끌거렸다.

한결이며 건호며 샘들이 돌을 들어 다리 옆으로 징검다리를 놓아도 보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쉬운 징검다리라도 밟고 몸을 의지할 수 있도록 다리 한가운데 버텨 잡아주기도 하고

물 아래 미끄러워 가만가만 어린 아이들을 업고 건너며

아주 아주 먼 길을 다녀온 끝이 주는 뭉클함이 올랐더라.


학교가 있는 대해리와 이 골짝의 마지막 마을인 석현리 가운데쯤에서

길과 합류한 우리들은 학교를 향해 걸어가며 곳곳에서 덩어리마다 노래를 부렀다.

어느 순간 강강술래 선창을 하면 아이들이 뒷소리를 받고

모두 한 덩어리로 목을 모았더랬네.

마치 무슨 <서편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홀랜드 오피스>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아이들과 선생들이 어우러져 찬란한 풍경 하나 만들었으니.

찡했다.

사람이 정녕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이라는 것에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노니.

사람이 이리 살아야지. 사람 같이 사는 것 같은.

‘정말 좋았던 것은 산에서 내려오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던 것이다. 언제 이렇게 길에서 다 같이 노래 부르며 신나게 걸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예경샘)

‘큰 도로에서 멀리서부터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였습니다. 물꼬라는 곳이기에 가능했지 않을까요. 노래(음악)은 사람한테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리, 등산, 노래 이 평범한 것들이 물꼬에서는 유달리 특별해집니다. 정말 하나하나 복에 겹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수연 형님)

‘산에서 노래를 계속하며 내려가는 것의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윤호 형님)

드디어 저 앞, 물꼬가 보인다. 졸음이 오는 현준이를 업고 들어서다.


눈 굵어져 제법 쌓이는 저녁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힘이 남았다.

서윤이는 씻으며도 군밤타령을 여섯 번을 불렀더라고.

신나게 이 노래를 그리 같이 부를 태희샘을 오래 못 봐서 섭섭할 거라지.

채성이가 마당에서 잡기놀이를 하고, 인영이도 달려 나가고,

다시 들어온 인영이 서윤이와 인서와 바나나킥을 하고,

인영이는 오늘 처음 하는 놀이에 끼어든 인서를 배려해, “이제 인영이가 먼저 뛰어봐!” 했다.

‘서윤이가 옥쌤의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따라한다. 너무 귀엽다.’(민혜샘)

책방에서는 책을 읽는 한켠에서

건호가 역할극을 만들며 놀고 있다. 마사지샵 미용실 가수 역할...

채성이는 감옥놀이도 하고 놀고.

부엌에서 휘령샘과 수연형님이 밤에 장작불에 넣어 구울 고구마를 자르는데,

성빈이도 돕고.


‘한데모임’.

쏟아지는 노래였으니.

노래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계자였다.

다시 <메아리>를 엮어준 금룡샘이 고마웠나니.

왜 우리는 산으로 갔는가 물었다.

우리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고, 그걸 몸으로 확인했던 시간!

‘내가 생각하는 산타는 이유는 힘든 일을 해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과 서로 챙겨주며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예경샘)


‘강강술래’.

마지막 밤의 대동놀이는 강강술래로 늘 모아진다.

‘다 같이 신나게 강강술래하는 모습이 너무 정겨웠습니다. 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신명나고 우렁찼습니다. 다 같이 한판 놀 수 있는 공간이 물꼬 말고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꼬만 오면 옛 것이 좋아집니다.’(수연 형님)


‘촛불잔치’.

‘다른 아이들 말도 인상 깊었지만 채성이의 말을 듣고 살짝 울컥했고 마음이 찡했다. 내가 물꼬를 와서 이렇게 행복하고 물꼬보다 나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 계자였다. 정말 특별했다.’(태희샘)

‘안올 것만 같았던 나무날이 너무 빨리 찾아와서 아쉽다.

촛불잔치때 좀 울컥했다. 내일 울 것 같다.

물꼬에 2번째 계자인데 저번 계자도 그렇지만 이번계자는 내가 앞으로도 올 계자 중 손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계자가 된 것 같다.

여름에도 물꼬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비행기표가 여름에는 너무 비싸요.(* 다은 형님은 제주도 산다, 재용 형님도.)’(다은 형님)

‘촛불잔치 때 163계자를 마무리 한다고 생각하니까 울컥했습니다. 여원이가 “물꼬는 원래 특별한데 이번에는 더 특별했어요.”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물꼬는 물꼬인에게 있어서 특별한 공간입니다. 여운이 깊게 남네요.’(수연 형님)

‘촛불잔치는 처음이었다. 장작놀이와는 달리 엄숙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촛불은 확실히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정환샘)

물꼬 5년차에도 새로 만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물꼬의 내용은 화수분이라.

‘언제라도 모일일이라든지 일손이 필요하다든지하면 1순위로 불러주십시오, 달려갈게요. 아, 그리고 물꼬 다시 오면서 사람이 그저 행복해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물꼬에서 정말 많은 것 배워가고 감사히 생각합니다.’(재용 형님)


‘밤마실’.

정말 절묘한 물꼬의 시간이라. 이번 계자인들 그러하지 않았을까.

밤마실은 못 하고 지나나 싶더니 아, 달이 대낮같은 거라.

아, 보름! 그랬다.

가자! 갔다.

한쪽으로는 휘영청 달이, 저 편으로는 별이 쏟아졌다.

‘물꼬의 마스코트인 별을 보았다.’(소연샘)

별보고, 소리 듣고, 그리고 그간 친하지 못했던 이와 돌아오는 밤.

이런 밤, 무엇을 사랑하지 않으랴.

이 빛나는 밤을 함께한 이들이라면 어찌 서로를 아끼지 않으랴.

나가지 않았던 인영이에게 무슨 말 끝에 서윤이가 물었더랬네.

“언니 피구했어?”

“내가 안한 게 모두에게 다행이야. 내가 피구를 좀 잘하거든.”

맞다, 인영이 정말 피구 좀 한다.


‘인디언놀이’.

구운 감자 혹은 고구마로.

‘이렇게 물꼬 인디언 놀이는 처음입니다. 덕분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정환샘)

산, 그 커다란 이름에 우리를 얹고 와서도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거기 걸어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배움인!)

아이들은 자정이 가깝도록 그리 뛰어다녔네.


샘들 하루재기 하러 가마솥방으로 가기 전 교무실 들어서니

민우샘의 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지금이 2017년 1월인데 제가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계자가 2015년 1월이라니,

벌써 만으로 2년이 넘었네요.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에요.

제 두 번의 계자 모두 함께했던 휘향샘과 휘령샘, 기표샘, 희중샘, 태희.. 반가운 이름들을 보니 또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사실 교원대에서 저 혼자 계자를 참여했었던 15년 1월 159계자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 너무너무 피곤하다가도 새벽에 하늘에 보이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우주에 떠있는 듯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데,

그 겨울 모닥불 앞에서 모두 함께 했던 달맞이가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물꼬에서 지낼 때처럼, 근심이고 걱정이고 다 제쳐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는 생각으로 지내니 이곳만큼 편한 곳도 없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잘 지내는 것이 서로를 돕는 것이라.

그립다, 그대!


간밤, 그러니까 새벽 작은 사고가 있었더랬다.

“기표야, 이제 잘란다. 욕보소.”

“있다가 인사 안하고 올라가요. 주무세요.”

새벽 서너 시 교무실과 뒤란 아궁이 앞을 지키는 이들의 인사가 그러한데,

5시가 다 돼 밤의 마지막 장작을 집어넣고 인사하고 방금 헤어진 기표샘,

막 잠에 드는 교무실 문을 열고 왔다, 약 좀 바르련다며.

으응, 하고 다시 잠으로 가는데,

옥샘, 좀 봐줘야겠어요 한다.

아, 마지막 새벽 불을 넣고 추운 날씨에 얼른 사택으로 가면서

그만 계단에서 넘어졌다는데, 으윽, 깊이 패였더라.

넓진 않으나 깊은 상처. 병원으로 가야할 상처였다.

응급조치를 하고 따순 밤에서 눈을 좀 붙인 뒤 기표샘은

우리가 산으로 간 시간, 꿰매고 왔다.

뼈까지 간 상처는 아니었던. 고마울. 휴우...

우리 아이들 액을 거기서 땜했는가 싶더라.

‘오늘 마지막 날 밤인데 야식을 꼭!(* 그것도 ‘꼭’에다 빨간 동그라미를 친) 먹고 싶습니다.’

멀쩡해진 기표샘의 하루재기에는 그리 씌어있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데.

이 밤도 일을 다 마친 샘들의 밤참이 빠지지 않은 밤이었노니.

이 못 먹고 사는 사람들아,

스물 가까운 샘들의 밤참도 일이네, 툴툴하며도 그 입들 멕이는 게 또 즐거운 계자라.


‘옥샘 사랑해요! 계자 없애지 말아주세요!’(현택샘)

안식년 뒤 물꼬의 흐름이 또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에

샘들은 밤마다 꼭 그리 한 마디씩 덧붙이고 있다.

다만 이르노니, 우리 늘 이곳에서 그리 말하듯, 내일 일은 내일 걸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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