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샘이 서울 출장, 학교에 나랑 장순이랑 사과랑 만화랑 있음’

학교아저씨의 소사일지 한 문장은 그러했다.

홀로 있을 때도 그 식구들이 함께하는구나,

산마을의 호젓함과 고즈넉함과 무사함과 평안을 읽었고,

우리 산마을 삶이 그리 쓸쓸하진 않다 새삼스런 평화가 둘러싸더라.


아이가 고3이 되거나 고3을 지났거나 올해 수능을 본 엄마 다섯의 이야기,

달날 한 여성지와 인터뷰를 했다.

대단한 신념 혹은 확신으로 아이를 학교 보내지 않았을 거란 기자의 기대는

헐렁헐렁하게 그저 쉬운 길을 택했을 뿐이고

뭘 가르치냐, 나나 좀 바로 살아볼까 애썼을 뿐이라는 말에

적잖은 실망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닐 수도.

답이 어딨을까, 저마다 살 일이고, 저마다 그렇게 엄마가 되었을 테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가끔 엄마들로부터 저도 옥선생님처럼 그렇게 아이 키우고 싶은데, 하는 말을 들어요.

그렇게(이 산마을의 삶과 교육)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과

그렇게(도시의 삶과 교육) 하고 싶다고 생각지 않으니 그렇게 안하는 것 정도의 차이?”

그래서 내가 사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쉬웠다.


남아있던 계자 후속 글쓰기를 마저 했고,

쉬기. 오직 자신을 널어두겠다 아주 작정하고 아침 수행도 멈췄다.

책 좀 볼까...

책 그거 참 안 읽는다. 의도한 바도 없잖다.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쯤이기도 하고.

산골에서 9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살다 제도학교를 간 아이가

1년을 보낸 뒤 한 방송매체에 담긴 적이 있다.

밥을 먹듯 책을 읽는 거지 뭘 하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고 작가에게 뜻을 전했다.

하지만 만들어진 영상은 결국 책 읽혔더니 학교 안 다녔는데도 가서 1등 하더라였다.

하기야 그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테고,

궁극적으로 책읽기를 권하는 방송이었으니 사람들을 혹하게 할 필요 때문이기도 했을 터.

북유럽에 머물 때 pub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놀랐던 것은

블랙칼라에게서도 느꼈던 일종의 교양이었다.

권장도서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책 읽기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살던 내게

그들의 책읽기는 밥먹기에 다름 아니었고,

그 사회를 향한 동경 비슷한 감정까지 생기더라.


언젠가 소설가 김훈이 그랬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릴 거까지야,

뭐 그가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 하니까,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있다고,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있으나 마나라고,

책 속에 있다는 길을 이 세상의 길로 끌어낼 수 있느냐, 내가 바뀔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책을 읽는 것과 그 사람이 별개인 경우가 적지 않더라. 글 쓰는 것 또한.

한국의 대문호로 일컬어지던 이도 거대한 문사(文史)는 이뤄도 삶은 고개가 저어지고,

대학원 재학 중에 낸 평론에 전율을 느끼게 하던 이도

교수로 자리 잡고 한 짓이 권력자 딸의 대리답안지 작성을 하고 있었더라.

안 읽는다 안 읽는다 해도 책 많이 보는 이들도 적잖더라.

그런데, 나 이런 책 보는데, 나 책 좀 읽는데, 심지어 그걸 자랑이라도 하면

외려 그의 삶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더만.

두려웠다, 나도 그러한가.

책 많이 읽는다는 이들을 지나치게 경외하는 듯하면 그것도 그닥 좋아보이지 않고.

한국의 허영, 특히 지적허영과 만나는 책읽기를 숱하게 봤다.

제발 그리 되지 않기를, 누구랄 것 없이 나.


허리가 아플 정도로 누워 뒹굴며 영화만 본 게으른 일주일에 대한 일없는 말.

그래도 아무렴 읽는 게 낫겄지...

존 버거의 책 하나를 몇 줄 읽었다. 멀리서 왔다.

생각나서 챙겨주었다로 여기니, 그게 더 뜨겁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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