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 통영 가서 살아야겠더라,

선배가 말했다, 거기라고 바람 없었을 것인가만.

산골짝은 눈 퍼부었으나 통영은 하늘 말갰고 기온은 영상,

산양 수산과학관 내에 있는 발해 1300호 기념탑 앞에서

'발해 1300호' 19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작년 추모제는 물꼬에서였다.

발해 건국 1300년을 맞아

그 시대의 항로를 증명해보이려고 발해 적 뗏목을 만들어 바다로 간 사람들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고(하지만 그 시대의 길은 마침내 복원해낸),

우리는 그들의 모험과 용기와 역사관과 저항을 좇아 해마다 모이고 있다.

강원도 영월 내리계곡 쪽 곰봉 아래 들어가기로 한 일정이 있었으나

눈에 발이 묶였다.

통영에 동행하지도 못하고

눈 쏟아지는 거리에서 다녀온 이로부터 소식만 들으며 술추렴만 하였더라.

잊히지 않아 고맙고,

잊지 않고 모여준 이들이 감사했다.


새 학년도에 교육서 하나와 그간의 물꼬 계자를 좀 엮어보려 한다 하자 선배가 말했다.

“왜 네가 그런 걸 써야 해?”

아직도 무슨 사명감 같은 걸로 사느냐,

혹은 종이나 허비하는 그런 글을 너까지 덩달아 써야 하느냐는 나무람인 줄 알았다.

“거 있잖아, 얼마 전에도 그 왜... .

 그런 애들도 쓰는데 더 똑똑한 네가...”

취기가 묻은 말씀이었을 것이나 오랜 신뢰와 지지에 찡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듯 허리를 곧추세웠다.

나는 그 젊은 날을 지나 아주 먼 곳에 와 있는데

아직도 당신은 내 스물을 아름답게 말해준다.

나 다시 시 쓰고 소설 쓸 수 있을 것 같애, 하겠어, 두 주먹 불끈 쥐는 것까지 아니어도

뭔가 할 수 있겠다고 고무되는,

미어지는 고마움이라.

문학서를 낸다면 오롯이 당신 덕일 테다.

오늘 고무(鼓舞)라는 낱말을 찬찬히 뜯어보나니,

북을 치며 춤을 춘다는 말 아니던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4594 2017. 3.18~19.흙~해날. 맑음 옥영경 2017-04-19 790
4593 2017. 3.16~17.나무~쇠날. 맑음 / 기억 옥영경 2017-04-19 865
4592 2017. 3.15.물날. 맑음 / 줄선 날들 줄 맞추기 옥영경 2017-04-19 788
4591 2017. 3.14.불날. 맑음 / 숲속 학교의 성자 옥영경 2017-04-19 818
4590 2017. 3.13.달날. 맑음 / "첫걸음 禮" 옥영경 2017-04-19 796
4589 무사귀환, 그리고 옥영경 2017-04-06 1752
4588 2월 22일부터 3월 12일까지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7-02-23 1151
4587 2017. 2.21.불날. 맑음 옥영경 2017-02-23 944
4586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229
4585 2017. 2.19.해날. 저녁답 비 옥영경 2017-02-23 1007
4584 2017. 2.16~18.나무~흙날. 밤비 내린 뒤 거친 바람 / 영월 내리 안골 옥영경 2017-02-23 839
4583 2017. 2.13~15.달~물날. 흐림, 맑음, 가끔 흐림 / 청량산과 병산서원 옥영경 2017-02-22 969
4582 2017. 2.12.해날. 맑음 옥영경 2017-02-21 761
4581 2017. 2.11 흙날. 눈싸라기 몇 날린 낮, 그리고 보름달 / 정월대보름제 옥영경 2017-02-21 880
4580 2017. 2.10.쇠날 / 부디 읽어주시라, <거짓말이다> 옥영경 2017-02-20 864
4579 2017. 2. 9.나무날. 눈발 얼마쯤 옥영경 2017-02-20 848
4578 2017. 2. 8.물날. 흐림 옥영경 2017-02-20 886
4577 2017. 2. 7.불날. 맑음 / 오랜 농담 하나 옥영경 2017-02-20 825
4576 2017. 2. 6.달날. 맑음 옥영경 2017-02-16 804
4575 2017. 2. 5.해날. 눈비 옥영경 2017-02-16 90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