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2.해날. 눈

조회 수 833 추천 수 0 2017.01.28 00:30:35


영하 15도, 대해리의 이른 아침은 그랬다.

눈 내렸고, 세상은 얼음왕국이었고,

그 위로 다시 눈이 쌓였다.

닭 세 마리가 얼어 죽었다. 어제는 살아있던 닭이다.

짱짱한 젊은 닭 세 마리는 내리는 눈을 보았다.

아이가 이 산골짝서 같이 살고 있었을 적,

그러니까 10학년 때 기숙사가 있는 제도학기로 가기 전,

눈 내린 여러 날이면 물꼬 동쪽 산기슭으로 가 곡식을 뿌려놓고는 했다.

날짐승들을 돌보는 너른 마음이었다기보다

어릴 적 외할머니랑 살며 보았던 풍경을 어미가 했고, 그가 또 따라한.

그 할머니의 딸인 내 어머니는 마당 수돗가에서 대야에 쓴 물을

흙마당에 먼지 일지 말라 뿌리곤 하셨는데,

뜨거운 물을 썼을 땐 그리하지 않았다.

흙에 사는 것들을 해치지 않으려던 살핌이셨다.

일종의 생태감성지수가 높으셨다 할.

그렇다고 일관성 있게 또는 더 넓은 영역으로 펼쳐보면 또 그리 도드라지지도 않으셨지만.

어쨌든 기실 이 산마을에 오래 살았는데도 내겐 퍽 부족한 감성이며

아이 역시 그리 높지 않아 보이더라.

태어난 결이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기를 수조차 없을 일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마음을 내고 외할머니들을 좇았다.

어느 겨울 아이는 얼어 죽은 비둘기를 안고 와서 혹 숨이 붙었을까 방안으로 들였다.

결국 언 땅을 파고 묻어준 것으로 끝난 이야기.

어쩌면 아이는 그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다는 것에

생의 어떤 비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세 마리, 물꼬에서 오래 살아 가끔 이름으로도 불리는, 꼭기 1, 2, 3호를

우리 집 진돗개 장순이의 긴 나이(2003년생)처럼 닭 치고 할머니의 할머니는 될 그들을,

언 땅을 파고 묻은 전말을 들었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병아리 깠다고 소리치며 달려오던 아이의 소리가 귀에 웅웅댔다.


강원도 영월 내리계곡 쪽 곰봉 아래 들어가기로 한 닷새였는데,

지난 흙날부터 나서려던 걸음인 걸 눈에 이틀을 갇혔더랬다.

칠룡골과 회암골도 들어

소리도 하고 나무도 하고 수행도 하고 산꾼들 밥바라지도 할 여정이었는데.

다시 나서기로 한 오늘, 계속 묶어둔 걸음을 풀지 않았다. 않아버렸다.

물날까지 이왕 전화 닿지 않는다고 알려놓은 결에

따순 방에서 푹 묻히기로 하였다.

손전화는 꺼져있는 채 던져두고.

오래 죽음처럼 자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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