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3.달날. 다시 눈 내리고

조회 수 795 추천 수 0 2017.01.28 00:39:26


학교 아저씨는, 눈 말고 아무 일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산마을의 하루

혼자 너른 마당에다 라비린토스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홀로 마을을 지키며 살았던 아이가 눈이 오면 그리 놀았던 것처럼.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의 한 부분이 ‘미궁;labyrinth’,

거기 끊기지 않고 걷는 길을 만들기도 두 차례,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알려드렸댔더니

그걸 눈 두텁게 쌓인 운동장에다 그리셨다고.

세밑에는 불을 지키고 물을 지키는 일, 얼마쯤의 글과 많지도 않을 통화 정도,

눈이 온다면 쓸어줄 것이고,

가끔 뒤란 보일러실을 들여다 볼.

밥을 먹을 때마다 장을 나가지 않고도 밥상이 차려지는 것에 찬탄할 것이고,

집 밥이 최고라며 먹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고

달여낸 차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울 것이고

그리고 가끔 멀리서 온 벗을 맞을 것이다.

볕 좋은 날 양철지붕을 타고 녹은 눈이 처마로 떨어지는 소리를,

어깨에 내리는 따순 볕을,

방 안에서조차 시려워 등이 아플지라도 아랫목의 따스함을,

손이 아릴 만큼 차가운 날씨에 장작을 나르며 배는 열기를,

잰 걸음으로 학교 마당을 가로지르며 걷는 살아있음을,

다 다 사랑하고 노래할 것이다.

겨울이어 힘들지만 겨울이어 고맙다.

또한 그대 있어 고맙다.

그간의 내 모든 툴툴거림을 잊어주실 수 있다면,

어리석어서, 서툴러서, 약해서, 그리고 오직 사랑해서 그러했을.


네팔 여정이 잡혔다.

2014년 11월에도 그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어디라도 11월은 그런 시간일 것이다.

네팔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때는 전세계에서 온 이들로 붐볐다.

사람의 일들이 그러하듯 사람들이 그리는 관계망에서 아팠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대놓고 나 너 밉다라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놀랐고,

미움을 발산하는 방식에도 낯뜨거웠고,

같은 이유로 곁에 쓰러진 환자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직업인도 있었고,

오고가는 다한테 친절하면서 정작 동행한 이를 투명 도깨비로 만드는 이와

다 같이 쓰는 공간에서 늦도록 노래 제껴 부르는 이와

제3국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그래서 스스로 비천해진 한국인들도 보았다.

사람의 일이었다.

그렇다. 사람이 그러하다.

오랜 인연들이 동행하는 무리 사이에 우연히 끼여 함께 걷기도 했다.

그 무리에서 내가 혹 할퀴어진 부분이 있다면,

혹시라도 내가 할퀸 부분이 있다면,

그건 다만 오랜 내 식의 여행과 무리들이 해온 여행 방식의 차이,

그건 또 그간 살아온 날들의 이질에서 온 것일 테다.

내가 더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더 애썼을 수도 있잖았을까.

한국 사회 무리집단이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았고,

미움이 미움이 낳는 걸 보기도 했다, 선이 선을 부르고 사랑이 사랑을 낳듯.

우리는 어른들이었고, 분명한 건 내 모든 행동은 내가 결정 당사자였다는 것. 

그때의 나는 딱 그 만큼의 나, 그때의 너 역시 딱 그 만큼의 너.

내게 직접 가해지는 것이 아닐지라도 상처입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산과 사랑하는 벗으로 기쁨이었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 충분히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이러나저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안아주고 돌봐주셨던 한 분께, 당신을 기댔던 시간에 

돌아보니 아픈 나만 보여서 한 번도 고맙다 전하지 못하였더라. 고맙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간다, 2월 중순.

얼마 전부터 간간이 좋은 조건의 항공편을 찾고 있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좌석과 호텔이 아니라면

거친 여행길을 택하는 쪽. 가난한 까닭이다.

오늘 그해 갔던 걸음과 비슷한 조건인데 꼭 절반값을 찾았다!

보통 내 여행은 국가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의 회의에 곁다리로 가거나

공모사업은 아니지만 일종의 프로젝트로 꾸려지는 일에 여행경비를 받아 가거나,

내 삶을 지지하며 지원하려는 이가 있거나,

다녀와 보고서를 쓰는 조건으로 가거나,

여행경비 일부를 지원받으며 그곳의 일을 해주거나.

어르신 한 분 네팔의 한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고 계신다.

이번에는 그 학교를 방문한다는 명분이고,

개인 일정이 대부분이다.

수험생이 되면서 아이가 했던 딱 하나의 주문이

어머니 한국에만 계셔주셔요, 였다. 그걸 못하랴.

꼼짝 않았던 한해를 건너 아들이 보태주는 여행비도 받아 떠나는 호사라.

3월 하순께는 대해리에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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