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를 잡 입는 사람들이 편치 않다.

대하는 데 지나치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이 강한 것도 일종의 그런 부류 아닐지.

그런 사람이구나 싶으면 슬쩍 뒷걸음을 친다.

그런데 혹 그것이 내가 가진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이 스멀스멀.

눈 내려 푹 묻힌 며칠의 시간은 마치 상처 입은 이처럼 자신을 부려놓고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잘 쉬었다.

사느라고 누구라도 욕보듯 자신에게도 애썼다고 어루만져줄 시간이 필요할 테다.


우리가 아파하는 일의 대개는 관계에서 생성한다.

그대를 모르니까 그대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한 젊은 친구를 위로했더랬다.

그런데, 그 문장 좋다.

당신이 모르니까 날 좋아하지 않는 거라구,

날 이해한다면 날 안 좋아할 리가 없지.

그러면 관계에서 덜 아플 수 있겠네.

이 세상사람 모두가 날 보고 있어도 단 한 사람, 날 보면 좋겠는 그가 날 보지 않는 일,

그래서 해지는 저녁이면 먼 산을 바라보며 닿지 않는 그를 안타까워하는 외사랑처럼,

비유가 너무 신파인가,

오늘 그와 나의 비껴감은 이해 못하는, 혹은 안 하는 그의 죄로 두기로.

그래서 오늘은 그저 누구도 안 아프기로.

내 쉼이 두루 쉼이기를 바란 하루였노니.


... 그 여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산수유나무꽃에 비밀을 말했다던 미당처럼

예이츠의 ‘불벤 산 기슭에서’를 읊조리며 불벤 산에 한 인연을 묻어두고 온 그때.

어디 보냈던 끼적거린 글 한 편을 찾았다.

기록물 같은 거 챙기지도 못하고 잘 간수하지도 못하는데,

보내버린 엽서나 편지였다면 남지도 않았을 텐데.

하루 여정이 담긴 그날의 기록이 조금은 애틋했고,

지난 몇 해 내 마음자리가 건너온 길을 더듬게도 했다.

일종의 연서 같은 여행기. 좋은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은 때였다.

그때 나는 거기 있었고, 지금 나는 여기 있다.

그런데 그곳이 이 순간 여기 닿는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지된 시간 사이를 흘러가는 건지도.

앞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밖을 보면 정작 나는 멈춰있는데 사물들이 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세한도 오른쪽 귀퉁이에 있다는 추사가 찍은 전각의 글자처럼

한때는 서로 영원히 잊지 말자, 장무상망(長毋相忘)을 들먹여도 우리 영영 헤어지고 만다.

서로 마주하면서 마음이 그러하다면 더욱 잔인할 일일 테다. 사람의 일이 그러하다.

오늘 나는 그와, 그때 그를 생각하며 걸었던 그곳을 같이 걸으려 한다.

그가 어디 사람만이겠는가. 내가 떠나온 집, 거리, 나무, ...

우리는 그렇게 가끔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내일로 나아가기도 할지라.

이제는 그만 거두어야할 때 과거를 펼쳐 볕을 쪼이기도.



2014. 7.19.흙날. 하늘이 자주 길을 잃는 날씨


아직 골웨이.

더블린에서 두어 시간 만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네 시간 가까이 걸린 길.

평소엔 세 시간이며 된다 하였으니 빗길이라 더뎠던 모양이다.


한국을 떠나면 나는 한국이란 나라를 몰랐던,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이가 된다.

마치 오래전부터 현지에 살아온 사람처럼.

에스토니아에선 에스토니아인으로

뉴질랜드에선 뉴질랜드인으로

핀란드에선 핀란드인으로.

아니 더 세밀한 표현은 그 나라에 오래 전 온 이민자 같은.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방랑족 쯤 되리라고 여긴.

그런데, 내게 아일랜드는 ‘그’와 동행한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있고,

그가 있는 한국이 나와 함께 아일랜드를 여행 중.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여튼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의(사람 사이의) 일이란 짐작하고 이해하고 그럴 일이 아니었더라.


“완전 피서 왔네.”

그렇게 되었다.

폭염주의보가 연일 발효 중이란다, 한국.

여기는 기분 좋은 늦봄 같은 날씨.

하지만 하늘은 아주 골고루 그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자주 길을 잃는다.

길은 그런 것이니까.

걷기라는 주제는 불가피하게 다른 주제로 이어지고,

걷기는 항상 길을 잃는 주제라는 누구의 말처럼.

영원히 집을 찾지 못하여도 상관없으리.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고 나쁜 적은 없다.

더블린에서도 골웨이에서도 그러하다.

탈린에서도 웁살라에서도 시드니에서도 웰링톤에서도 헬싱키에서도 그랬더랬다.

그런데 사는 곳에서 자주 잃는 길은 불쾌감을 동반한다.

내게 서울의 버스가 특히 그렇다.

서울에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어도

버스를 제대로 타 본 적이 거의 없고 제대로 내려 본 적 또한 그리 많지 않다.

길을 잃어 나쁜 곳은 지구상에서 서울 밖에 없는 듯.


골웨이, 게일어로 손님들의 도시.

가장 아일랜드다운 도시라 했고 서쪽의 베네치아이자 아이리쉬 음악의 고향이라 했다.

비공식 문화수도쯤?

여행자들의 도시,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들.

그러나 버스커의 도시임을 쉬 알겠는 샵거리는

펍도, 거리의 악사들도

이국에서 듣는 풍물거리가 주는 약간의 감흥 그 이상은 아니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거리, 시드니의 하버브릿지, 헬싱키의 에스프라나디 거리, 베를린 광장,

그곳들에서 받았던 감동에는 턱없다. 태어난 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서? 그런지도.

하지만, 그래도 좋다.

지금, 여기, 있으니까!


어제는 모어 절벽을 다녀왔다.

차를 빌릴 것도 아니니 현지 투어버스를 타자, 진즉에 그리 생각했다.

몇 종류가 있더라.

모어 절벽이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 어디로 도는 것이든 상관없다.

비용도 약속이나 한 듯이 같으니까.

가까운 정보센터에서 티켓을 샀다.


처음 들린 곳은 1940년대 발견된 Aillwee 동굴.

첫 탐사대가 돌무더기에 막혔던 길을

76년 재 탐사 때는 그것을 치워내고 깊숙이 폭포까지 뚫었다지.

천년 동굴이 이 지역에 꽤 있는데 대중개방은 세 개, 그 가운데 하나란다.

동굴은 지면을 봐서 굉장히 높고,

동굴을 돌아 나오는 턴 지점이 딱 산봉우리랑 수직 지점이라는.

아일랜드에서 곰이 멸종한지 아주 오래인데,

곰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고,

예전에 바다였음을 보여주는 벽의 조개 화석들.

졸면서 제대로 듣기는 했는지.

한참 오랜 기간 동안 흐른 물길이 동굴을 만들었다지.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시간, 시간...

시간은 힘이 세다.


Lisdoonvarna를 지난다.

짝짓기축제가 있다던가.

직접 모여서 짝을 구하고, 못 찾으며 다음에 또 온다는 버스기사의 우스개.


드디어 Cliff of Moher.

(막 출발한 버스로 두 여자가 늦게 달려왔더랬다.)

“아까 동굴에서도 두 사람 두고 오는 거 봤죠?

시간 안에 오세요.

저는 빈차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버스 기사의 엄포를 등 뒤로 절벽을 향한다.

절벽은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

아래에서 위로 볼 때 더 자주 쓰이지.

위에서 아래로 보자면 낭떠러지가 더 어울린다.

깎아지르거나 깎아 세운, 끝이라는 의미로 보자면 같은 말일 것이나.

어감은 그런 것.

어디에서 보는가에 따라 같은 낱말도 다른 단어가 되기도.


흐리며 시작한 날이었는데,

골웨이 들어오는 날도 그랬다,

장대비이더니 버스에서 내리자 말개졌고,

오늘 또한 그러했다.

산골 살면 하늘 고마운 줄 안다, 자주 하는 말이었더니,

아일랜드의 여러 날이 그러하다.

클리프 모어는 아일랜드를 가야하는 열다섯 군데 이유이기도 하다던가.

가이드를 겸하고 있는 버스기사는

절벽 울타리 넘어가서 사진 같은 거 찍지 말라고,

그러다 떨어진다고,

그럴 때 오른쪽을 보면 골웨이베이를 아주 잘 볼 수 있다고,

그게 생애에서 마지막 보는 골웨이일 거라고,

제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서 더러 새처럼 난다고도 하지.

의도했던 아니 했건.

하여 그 어디쯤에선 “대화가 필요하냐?” 묻는 종교계의 간판도 있더라.

황량하고 척박한 풍경이 장관이라는 버른(Burren) 국립공원 귀퉁이.

사람을 빠뜨려 죽일 물도 없고, 목을 매 교수형에 처할 나무도 없고, 묻을 흙도 없는 곳,

17세기 아일랜드를 징벌하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부하장군 러드로우(Ludlow)가 그리 말했단다.

moher는 아일랜드어로 황폐, 폐허란 뜻이라고.

나의 그가 들먹인 곳도 여기였다.

웨스트라이프(West life)의 마이 러브(My love)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곳.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그리고 <프로포즈 데이>도 여기서 찍었다지.

누구는 죽기 전에 꼭 가야할 곳이라고도.

죽기 전에 꼭 보아야할 곳?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식탁쯤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딱히 그리 가고 싶은 곳이 없다.

그렇게 말하면 워낙 어릴 적부터 많은 곳을 다녀서 그렇다고 하는데,

책으로도 족하고, 그것 아니어도 늘 있는 곳이 미지인 걸.

물꼬 삶이 나날이 새로운 세상인데 어디가 굳이 가고 싶은 곳이겠는가.


Doolin에도 잠시 정차.

클리프 모어 둘러보는 크루즈를 여기서들 탄다고 한다.

아이리쉬 전통음악의 허브라고도 하더라.

가장 유명한 펍 O'Connor's에서 기웃.

그 가장, 혹은 유명이란 말이 편치 않다.

그런 곳에서 가장과 유명을 체득한 경험도 별 없고.

생을 채우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더라,

나는 그 자잘한 결이 좋다.

그 결처럼 묻혀 살기를 바란다.


돌아오며 중세식 연회를 여는 Dunguaire 성도 들리다, 잠깐.

바람이 많았다.

연회에 입장할 거냐 문지기가 물었다.

다만 마당에서 성벽 안 쪽으로 핀 보라색 꽃 하나를 따서 책갈피에 넣었다.

그 보랏빛으로 이 성은 기억되리. 그리고 엽서가.


“어머니는 체력이 참 좋아.”

돌아와 모두 널부러진 동안

밥상을 차리고 책을 읽는데 아이가 그런다.

아닐 거다.

아마도 그것은 몸과 마음이 유달리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 아닐지.

그를 연연하는 시간이, 혹은 그에게로 가는 날이 나를 밀고 있는지도.

나의 그는 책읽어주는 남자이다.

<the reader>에서 가장 크게 울었던 대목은

마이클이 고향집 그의 방에서였던가, 한나를 위해 책을 녹음할 때였다.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호머와 체홉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한나는 문맹이었다.


물꼬에 오는 이들의 고민이 어디 교육문제이기만 할까.

삶 전반에 걸쳐 온갖 문제를 다 안고들 온다.

연애로 고민하는 청춘들에겐 그러지.

서로를 고무시킨다, 상생시킨다고 생각하면 계속,

서로 갉아먹는다 생각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만 두렴.

우리는 서로를 고양시키고 있는가.

나는 내 답을 아는데,

그의 답은 무엇일까.


아차차, 클라다의 링을 못 샀네.

오늘은 종일 쉬고 빨래하고

저녁답에 잠시 운하를 끼고 걷고 바닷가도 걸었는데,

오면서 산다는 걸...

골웨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왕과 문화를 가진 작은 어촌이었단다, 클라다가.

그런데 골웨이에 흡수돼 그 문화는 다 사라지고 클라다의 링만 남았다지,

고기잡이 떠난 남자를 기다리며 여자가 만들었다는.

반지에 새겨진 하트는 사랑을, 양쪽으로 뻗은 손은 우정, 꼭대기 왕관은 충성을 말한다고.

하트가 바깥을 향하면 싱글,

안쪽으로 향하면 결혼했음이란다.

선물로 사고 싶었으나 그리 날아가 버렸다는.

그의 운명이리.


아이랑 같이 다니며 오랜만에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는.

늘 같이 다니다 아이가 제도학교 들어가고서는

도대체 얼굴 보기가 힘든 한 학기.

“어머니, 한 연구에 따르면요,

한 언어에서 파란색과 초록색을 구별하기 전까지는

갈색, 자주, 분홍, 주황과 회색을 구별하는 낱말이 나타나지 않는대요.”

“그래?”

“많은 언어에는 파란색과 초록색을 구별하는 낱말이 없고,

둘을 하나로 일컫는 낱말만 존재한대요.”

전통적인 웨일스어에서 파란색은 초록색이나 회색빛을 말하기도 했다고.

그런데, 현대 웨일스어에서는 파란색과 초록과 회색이 따로 있다네.

“우리말만 해두요...”

'푸르다'는 파란색, 초록색이나 그 둘이 섞인 빛을 나타내는데,

예를 들어 '푸른 하늘'은 하늘의 파란 빛, '푸른 숲'은 나무의 초록 빛,

그렇게 섞여있기도 하지만 한편 파란색과 초록색을 각각 따로 쓰기도 한다고.

“그러나, 교통 신호등에서 초록색과 파랑색은 같이 쓰이죠.”

“그러니까 초록색과 파란색의 분화로 그 언어의 발전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아이랑 걸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그리 동행한다니까.


내일은 이른 아침 슬라이고를 향한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가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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