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5.물날. 맑음

조회 수 824 추천 수 0 2017.01.29 00:26:40


기온 차 때문이지 않을까 싶더라. 머리가 아팠다.

아주 추운 날씨에 노출되었을 때 오는 두통 같은.

영하 10도로 들어서는 것이 두렵더니

면소재지에서 계곡으로 길이 시작되자 설렜다,

집으로 오는 모든 길이 그러할 테지만.

산골 이 삶이 나를 가슴 뛰게 한다!

물꼬에서 잘 나가려 하지 않을 때 미끼 하나는 따순 아파트이다.

따뜻한 남쪽나라 그런.

추위가 공포에 가까운 사람이니.

아침마다 바람 치는 문을 밀고 나서야 하는 시베리아 벌목꾼의 각오를 날마다 요구하는 곳,

대해리의 겨울이다.

서울에서 있었던 한 여성지와 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열흘을 도시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닷새는 영월에 있는 산으로 들어가려던 일정이었으나

학교아저씨가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다 얼었다며 말렸더랬다.

아래가 너른 치마와 구두로 산을 오를 수는 없었으니 짐을 챙기러 와야 했던.

주인장이 파리로 떠나고 비운 아파트에 푹 묻혀

겨울인 줄 모르고 계자 끝낸 고단을 풀었더라.


들어오기 전 전화 한 통을 마지막으로 하고 왔다.

밖의 것은 밖에 두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산마을로 돌아오는 길이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같았는지도 모른다.)

어째 사는 일은 늘 서툴러, 하기야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그가 하는 행위가 어이 변할까,

갈등이 일 때가 있다.

좋아하는 친구한테 잘하고 싶은데 뭔가 자꾸 어긋나는 서툰 사내아이 같은...

아주 다른 상대여서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없잖지만

우리는 흔히 비슷한 사람에게 더 기운다. 코드가 맞다고들 표현하는.

관계에서 교집합이 중요해지는 것도 그런 것일 터.

취향 결 가치관 ...

그 정점이 사랑 아니던가.

그런데 어쩌면 사랑의 비극은 교집합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되는지도.

아니면 같음을 위해 다름을 감추거나.

우린 교집합이 크다고 느낄 때 여집합까지도 그러할 거라는 환상을 품는다.

젊은 친구들이 손을 붙잡고 인사를 왔을 때 각각 물어본다, 상대의 어디가 좋냐고.

그런데 그들이 헤어질 때도 바로 좋다던 그 이유로 헤어지는 걸 본다.

실상 사랑이 깨지는 까닭은 취향이 달라서가 아니라

사실은 서로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것.

그러니까 교집합 때문이 아니라 여집합에 대한 태도 때문일.

왜 이렇게 안하고 그렇게 하느냐 하는 그간의 상대에 대한 내 툴퉅거림은

상대로서는 그가 살아온 세월을 부정해야 하는 고통일 수 있었겠구나,

어떤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폭력이었겠구나,

나랑 만나느라 그대여 애썼다, 그런 마음으로 한 전화였다.

그저 평범한 한 안부 전화에 다름 아니었지만 내 안은 그러했다.

사랑은, 또 관계는, 결국 타자를 내가 얼마나 안을 수 있느냐의 문제.

그래도 네게 깃들고 싶어, 그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더라.


들어와서도 전화 한 통화로 여기 삶이 시작되었다, 기다리던 전화들과 함께.

식솔들은 서울에 두고 산골에서 홀로 살아가는 산사나이였다.

물꼬에 손 좀 보태라고 한 어르신이 소개해주었던가 보다.

눈에 묶이지 않았더라면 이번 영월에서 보내기로 했던 산 생활에 동행했을.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이곳의 하루하루가 어떨지 그리고 있었다.

“전기는 들어가지요?”

그것만 해도 빌딩을 올릴 수 있겠다했다.

마을에서 시오리 산길을 자재들을 지게로 져 집 세 채를 지었던 그이니.

“전기 되고 목수 되고 미장이 되고 용접 되고....

고칠 거나 뜯을 거나 지을 거나...”

다 챙겨놓으란다.

일이 누군들 부담이지 않으며 자신의 삶이 없는 이가 어딨겠는가.

그래도 선뜻 그리 마음 내는 일이 주는 고마움이라.

새해가 경쾌할세.

밖에 두고 온 마음 하나가 그래도 꼬리 길어 이곳까지 왔더니만

마음 밝아졌다.

사랑이 안 된다고 삶에 노여우며 우정이 안 된다고 삶을 걷어차랴.

달골에 건축허가를 내놓고도 이태를 못하고 있는 일과,

서가 하나 내주지, 벗을 위해 주고 싶었던 공간과,

당장 학교 본관 바닥이 꺼지는 흙집과,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아이가 물꼬 일은 아무리 해도 표도 안 나는데 공부는 하면 표가 나서 재밌다던,

물꼬의 이 낡은 살림을 어딘가 손보며 무엇이든 또 벌어질 새해라.


산골에서 제도학교 3년 수학으로 서울대와 의대에 합격한 아이에게

지난 한 달 내내 여러 방송매체에서 인터뷰 섭외가 있어왔다.

처음 활자매체 하나와 했던 인터뷰를 제외하고

아이는 나머지 것들을 거절했다!

무슨 만점을 받은 것도 수석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별 이야깃거리라고 있을 것 없는 시골 읍내에서 벌어진 작은 재미였다.

우연히 주목을 받는 일이 생긴.

그런데 주목을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혹 생이 확 바뀌는 대단한 계기가 된다한들 그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자기 아닌 사람이 되는 무슨 대단한 방법이 어디 있더냐.

사실 웃긴 이야기이다,

고졸이지만 성공했다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나

학교 밖에서 오래 보냈지만 명문대 합격이나 둘 다 다르지 않다.

문제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들갑이었다.

중요한 건 잘 나가는 감독, 명문대생 그 이름자에 기댈 것 없이

그 삶이 그에게 무엇이고 어떠하냐, 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의 자신의 방식으로 사느냐, 자기 결정권을 지녔느냐 그런 것들이 아닐지.

코미디의 절정은 대안교육으로 안 되니 제도로 갔더라는 비아냥이었다.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얼마 전 나온 한 책의 도발적인 제목은 그러했다.

제도를 가서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제도로 갈 것이고,

안 가도 되는 일이라면 안 가면 될.

그는 원했고, 그걸 위해 열심히 했고, 얻었고, 그리고 다음 걸음을 간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저 좋아한 일.

다 다 저 살대로 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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