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6.나무날. 맑음

조회 수 812 추천 수 0 2017.01.29 00:31:11


낼모레 설, 연휴 이동이 시작되었다.

차례를 지낼 테고 일상적으로 자주 하는 일이 아니니

이거냐 저거냐 헷갈려하며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좌포우혜니 두서미동이니 이런저런 진설법을 거론하리라.

그것에 목숨 거는 산에서 도 닦는 선배 하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유구한 역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전통이란 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그것이 고작 몇 십 년 안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관혼상제 전문 한 박사의 최근 연구논문에 의하면

진설법이란 게 비교적 근래 정착된 거라고.

도랑을 건너면 다른 진설법이라지.

쉬 구할 수 있는 것, 그 지방 안에서 나는 것,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것,

그런 것들이면 될 테다.

조리된 음식을 사서 상에 올려도 되느냐는 물음에 그가 말했다.

“조선시대 종부들이라고 다 직접 음식을 했을까요? 하인들이 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해서 상에 올리는 것도 정성입니다.”

아하!


궁중음식이라고 대단히 폼 잡는 요리도 그렇더라.

궁중음식이래야 그것을 먹은 사람이라고 왕, 중전과 비들, 대비, 세자들, 열댓 될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게 1971년.

최고의 요리서라면 알려진 허균(1569~1618)의 <도문대작(度門大嚼)>.

그보다 70년 앞선 <수운잡방>.

가장 오래된 한글요리서라면 종가음식의 일종이었던 경북 영양의 ‘음식디미방’.

그런데, 의궤며 승정원일기며 기록에 강했던 조선이었다지만

궁중의 일상식에 대한 문헌은 거의 없다. 겨우 연회식 정도.

그것도 요리법은 아니다.

정조 때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도

식단이 있을 뿐이지 요리법은 없다.

한말보다 약 1세기 앞선 18세기 후반인데도 수라상을 비롯한 음식의 내용이

구한말과는 아주 다르다고.

궁중음식이라 알려진 그것이 사실은 별반 전통이지도 정통하지도 않을 수 있겠는.

우리 사는 일이 온갖 신화들의 탑 위에서 바람 따라 기울어지는 깃발이기 쉽더라,

대단한 신화가 아니더라도.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피라미드는 수영장과 늘 푸른 잔디밭이 딸린 교외의 작은 집일 수도 있고, 전망이 끝내주는 고급 맨션 꼭대기 층일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옮겨 놓았던 문장들을 곱씹었다.

6, 70년대는 국가적, 민족주의적 신화를 쌓으며 살았던 시대였으리.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헐어내고 성황당 위로 들어섰던 건물들은

조악한 신화의 상징이었으리.


스물넷 스물여덟 처자 둘이 와서 하오의 네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설 연휴쯤 온다던 인사이고 상담이었다.

지난 5월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비정규직 스무 살 청년은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을 유품으로 남겼다.

같은 달 강남역에서는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스물셋 청년이 살해를 당했다.

9월엔 스물여덟 성우 지망생이 불난 5층짜리 빌라에서 사람들을 깨웠지만

자신은 질식해죽었다.

2016년 한국 사회에 있었던 20대의 한 모습은 그러했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고 희망도 없는 나라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그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그리고 작금의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뉴스를 이야기했다.

2017년,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친구는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의 연구계획서와 자소서를 같이 살피기로 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길을 모색하는 친구는

일단 일하면서 떠날 외국여행을 안내했다.

내가 세 살 아이를 데리고 떠났던 오세아니아였다.

새해는 새로운 걸 꿈꿔보라고 있는 분기점일 것,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때!


할까 말까 하다 못 하는 일은 얼마나 많더냐.

살까말까 할 때는 사지 말 것이나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던데.

설을 쇠러 가는 한 벗에게 두어 가지 쥐어 보내려했다.

어머니를 보내고 홀로 남은 그가 자주 안쓰럽고, 평안하길 바라건만

좋은 걸 표현할 줄 모르는 서툰 사내아이마냥 외려 툴툴이 스머프가 되고는 했다.

바쁜 걸음에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 번거로울까 싶기도 하고,

괜히 들려준 제수거리를 과한 친절이라 여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속에 시간만 흘렀고 결국 가지 못했다.

가느냐 물었고, 간다 듣기만.

고향으로 가는 모든 걸음은 해질녘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같은 것일 터.

포괄적 뉴스 하나만 지배하는 긴 겨울, 모다 부디 마음 부려놓고 순순해지시라. 

 

명절에 함께하기 좋은 책이며 영화들이 쏟아졌다.

요네하리 마리의 오래 전 번역서를 재출간한 소식도.

한나 아렌트와 프리모 레비와 레베카 솔닛과 예이츠와 제임스 조이스와,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라던 문장과,

아일랜드와 안나푸르나와 서해의 섬과,

그런 것들을 나누었던 벗과 마리의 책도 자주 들먹이던 때가 있었다.

사람 하나가 남긴 자취는 길목에서 만나는 무수한 돌멩이거나 나무이거나 바람이거나.

떠난 이들이 두고 간 것들이 불쑥불쑥 벽처럼 앞에 껴들 때

사람들은 그 애잔함을 어찌 지나는가.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시작을 떠올렸다.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의 시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의 일부였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밤새 지붕을 흔들어대는 대해리 바람에 그가 다녀간다...


The old for her, the new that made Me think on Ireland dearly

오래된 사랑은 그녀를 위해, 새로운 사랑은 내가 열렬히 생각하는 아일랜드를 위해

While soft the wind blew down the glade And shook the golden barley

그동안 부드러운 바람이 골짜기 아래로 불었고 금빛 보리밭을 흔들었네

Twas hard the mournful words to frame To break the ties that bound us

우리를 묶었던 끈을 끊기 위하여 서러운 단어들을 구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네

Ah, but harder still to bear the shame Of foreign chains around us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를 둘러싼 영국 족쇄의 창피함을 참는 것

And so I said, "The mountain glen I"ll seek at morning early

그래서 나는 이야기했네, "아침 일찍 산골짜기를 찾아갈 것이고

And join the brave united men" While soft wind shook the barley

용감한 시민군에 합류할 거라고" 그동안 부드러운 바람이 보리밭을 흔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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