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내려가는 기온,
내린 눈은 금세 얼어붙었다.
대학을 가기 전 학기 중의 생활비를 벌어놓는다고 읍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이는
저녁 버스를 타고 나갔다.
들고 갈 짐도 많아 차로 데려다주려 하였으나
길 미끄러워지면 위험하다고 말렸다.
도로공사로 길이 넓어졌으나 여전히 눈길이 쉽잖은 산골에 우리 산다.
청소하고 밥해먹고
연탄을 갈고 재를 깨고 눈을 쓸고 짐승들 멕이고
책 한 줄 읽고 음악 하나 듣고 영화 하나 보고...
단순한 생활흐름이 좋고 고마웠다.
해우소와 부엌이 안에 있는 따순 집 있고,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하고픈 게 있어도 돈 걱정이 없었을 그인데
최순실 그가 바랐던 건 무엇이었을까...
밤에는 오랜 통화가 있었다.
벌써 달포 전에 잡아두었던 상담이다.
아직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아이의 엄마,
별로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그였다.
하지만 아이는 스포츠과외까지 이미 하고 있는 게 많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가르치고
너무 많이 요구하고
너무 많이 기대한다.
부모의 가치관은 아이 교육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다.
그래서 부모 삶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 어른들이 생각한대로 그리 살 것!
뭐 늘 하고 사는 말이지만...
긴 겨울이다.
포괄적 뉴스 하나만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새해라는 아무런 느낌 없이 해가 바뀌었고,
설도 그렇다.
명절민심이라는 것이 이 시대에 있나 싶지만
설 지나 이제 또 어찌 흘러갈 것인가...
언론을 끊은 지 오래였다. 18대 대선 결과가 그 절정이었을 것이다.
요새는 가끔씩 라디오뉴스를 듣거나 인터넷기사를 훑고는 한다.
촛불집회를 놓고 보였던 두 노장의 행보도 읽었다.
황석영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고,
이문열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4.19를 풍자했다.
황석영은 광화문에서 같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친 뒤 그 참가기에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우리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지금 이 거리의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했다.
이문열은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여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느냐’ 물었다.
걸어온 길을 보면 걸어갈 길을 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을 결정한다.
그래서 오늘의 걸음의 중요하다.
제대로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마르틴 니묄러(1892~1984)의 ‘First they came;처음 그들이 왔을 때’를 읽는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