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31.불날. 맑음

조회 수 777 추천 수 0 2017.02.14 10:30:32


부엌 곳간에 내놓은 냄비의 다싯물조차 얼어있는 영하 12도로 시작한 아침

눈 덮인 소도를 여러 바퀴 돌다가

아프지 마시라, 앓지 마시라, 여러 얼굴들을 향해 소망이 찼네.


뻣뻣하던 어깨가 풀어지듯 퍽퍽하던 마음도 또한 햇살에 누그러지기 딱일 볕 좋은 낮.

혼자 낮것을 차려먹고 따순 볕으로 의욕이 일자

빨래방 널린 빨래들을 걷고,

짐승들 밥 멕이기 전 본관의 현관 앞 테이블이며 먼지들을 닦자 하다,

쌓인 연탄재들부터 부숴야지,

그 전에 며칠 묵은 방부터 털어내자,

그 앞서 사택에서 나온 쓰레기들부터 좀 태우고,

그러다 잠시 된장집 방에 먼저 앉아 글월 하나 보내고 움직이려는데,

아차차, 똥줄(손전화 배터리 연결선을 그리 부른다)을 가마솥방에 두고 왔네, 인터넷을 하려면,

다시 내려가며 아래로 가야할 물건들도 같이 끌고 가서 부려놓고,

되올라 와 잠시 손을 녹혔다.

이곳의 동선들이 그러하다.

메일 하나 보내고 쓰레기를 태우고 짐승들 멕이고 며칠 묵은 청소를 하고 쌓인 연탄재들을 깨고.

저녁버스로 설을 쇤 학교 아저씨도 돌아오셨다.


할아버지가 죽었다. 손자는 당신을 몹시 따랐다. 당신이 왜 죽었나 비밀을 찾아 나선다.

거기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이 함께 있다.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을 가진 ‘미스 페레그린’에 있고,

그녀의 보호아래 무한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특별한 능력의 아이들(peculiar)이 있고,

그리고 그들을 사냥하는 적 ‘할로게스트’가 있다.

팀 버튼의 <미스 페러그린과 이상한 집 아이들>(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 2016).

계자 끝낸 뒤 쉬면서 보라 아이가 담아준 영화였는데,

절반 밖에 복사가 되어있지 않아 아쉽더니

설 쇠러 들어왔다 챙겨주었다.

스티븐 킹과 몬티 파이튼을 보고 자란 랜섬 릭스 원작에 제인 골드먼 각본에

팀 버튼이 입힌 상상력! 말해 무엇하랴, 호불호가 갈린다지만.

그의 상상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역시 아웃사이더들(그로데스크한 분장의)에 대한 애정일 거란 생각.

그 인물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등장했다, 가위손처럼.

팀 버튼은 여전하데.

오랜 시간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고 색을 덧입히는 이들이 주는 감동이 또 있는.


아이들의 능력은 특별했다,

괴력을 지녔거나 식물을 자라게 하거나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거나

두 손에서 불을 내뿜거나 뱃속에 벌떼가 살고 있거나.

하지만 그 능력은 마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보여준 신들의 인간적 매력처럼

이들 역시 그 능력은 힘이기보다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예컨대 뒷통수에 입이 달린 아이가 낯선 사람 앞에서 밥 먹기를 주저하는.

특유의 인물,

하지만 우리가 한번쯤 상상함직한 등장인물들,

잔혹함이 덤덤하게 배여든 화면 두어 개쯤,

거기 어린아이 같은 잔인함도.

왜 그런 것 있잖나, 아이들은 작고 여린 것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존재들에게 가학하기도 하는.

그런 걸 팀 버튼은 잘 아는 듯.

그의 영화에서 표현주의 또한 여전하다. 그 표현으로 하는 화면 장악력 역시 건재하더라.

상상을 영상으로 전환시키는 그에게 늘 감탄, 감탄!

아주 조금 무서워도 했지만,

즐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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