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3.쇠날. 맑음

조회 수 792 추천 수 0 2017.02.16 10:51:28


아이 하나가 억울하다 호소.

지독하게 공부했고 한 만큼 좋은 결과도 얻었다.

그런데 무슨?

“남들 열심히 공부하는데 PC방 가고 놀고 그러고도...”

그래놓고도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은 아이들을 보면

열심히 한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겠냐고,

남들 열심히 일할 때 놀던 사람들이 뭔가 얻는 건 정말 공평치 못하다고.

원체 정의감에 불타는 아이였기도 했다.

오르비나 수만휘라는 수험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너티에도 보면

비슷한 까닭으로 화가 난다는 이야기가 더러 있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대 또한 살면서 무임승차하는 일들이 있잖여?”

우리가 애쓰지 않고도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사회적 영역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장 부모님이 내게 주시는 것들만 해도 그렇지.

“더구나 그대는 있는 사람이니, 그대가 승자이니...”

더 너그러울 수 있지 않겠는가 전하다.

기본소득 개념에 대해서까지 이야기가 확대되고.


새해 인사와 함께 달골 공사 건에 대해 물어오다.

지난가을 끝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의 달못 공사 건을 의논했더랬다.

아무래도 겨울 지나 하자 미루게 되었던.

굴삭기들이 바빠지기 전 오가던 이야기 마무리 하면 어떠냐네.

새 학년 준비로 두어 기관과 조율도 있어야 하고,

네팔에 가기 전 하고 가고 할 일들도 줄을 서

아무래도 3월 중순으로 미루어야겠다.

굴삭기와 함께 필요한 사람 손도

물꼬 형편으로서는 역시 손을 보탤 사람을 찾거나 우리 안에서 해결해야지

인건비를 따로 고려해야 한다면 어려울 일이라 전하기도.

물꼬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더라.


세 번째 2017 수첩을 바꾸었네, 맘에 안 들었던 거지.

챙겨주기로 하셨던 분이랑 만나는 일이 늦어져 2016년 기록장에 이어 쓰다가

아쉬운 대로 먼저 손에 닿은 걸 썼는데...

음력이 없다. 이 나라에선 음력이 또 여러 곳에 쓰이니.

마침 일지도 나날의 날짜가 있는 것으로 금룡샘이 챙겨주시었네.

그 해는 그 해의 기록끼리 모여있는 게 아무렴 좋을 테지.

그리 세 차례 옮겨적었더라.


네팔 건으로 모이다.

가는 걸음에 ABC(안나푸르나도 베이스캠프)까지 또 오르자 한다.

첫길을 가는 이 하나 동행.

전화 좋고 메일로도 어렵지 않은 소통일 것이나

그래도 한번쯤은 얼굴 맞대고 일정을 잡는 게 좋겠기에.

가려나 보다.

이러저러 이곳 일을 챙기다보면 가기 전 한 이틀이나 준비에 날을 쓸 수 있을.


품앗이 샘 하나 선물을 보내오다.

내용물보다 상자에 더 관심 있는 어린 날 아니어도

그가 직접 그림을 그려온 상자로 마음 더 좋았네.

“너무 세속적이죠?”

“무슨! 나 그거 좋아! 필요해.”

아줌마가 되니 그런 선물을 챙기게 되더란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러면서 또 다른 삶의 부분들을 헤아리게 되었던 거라.

그게 무엇이든 멀리서 그리 챙겨온 마음이 더할 수 없이 기뻤네.

산골 노인네를 잊지 않아준.

잊히지 않아 고마울 날이 많을 나이일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나야, 혹은 나는 김철수야 라는 고유명사이면서 보통명사일 제목.

역시 켄 로치!

노년에 이르러 이제 와서 보니 생이 어쩌구가(사랑이라느니 살아볼 만 하다느니) 아니라

여태 해왔던 목소리를 여전히 내고 있다는 것,

자신의 삶을 한 방향으로 꾸준히 견지해왔다는 것,

그가 거장인 까닭이다.

누구 말마따나 위엄 있는 가치를 놓치지 않는.

건강문제로 실업급여를 타야하는 목수 다니엘과

그가 만나게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가 이야기의 축.

관료의 폐해, 오늘날의 서구 중심의 세계가 가진 한계에 대한 꾸짖음 혹은 야유,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말하는!

다니엘은 그를 걱정하는 유니온 동지들이 있고

자신을 지켜주었던 사회적 보호막이 있는 세계를 경험했고

그 토대 위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금도 놓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집에서 설거지를 하냐 물으니, 나는 옛날 사람이잖아 했다.

우리는 어느새 옛날 사람이다.

우리는 그래도 나를 지켜주던 사람들이 둘러싼 공동체에 대한 경험을 가진 세대.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통장이 바닥이지만

전기가 끊긴 케이티네에 전기료를 쥐어주고,

식료품 지원을 받다가 소스 캔을 뜯어서 허겁지겁 먹다

수치스러움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껴야 했던 케이티는

굶주리며도 자신의 먹을 것을 수일 을 블레이크에 내놓는다.

사람의 마음,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 이야기.

그래서 희망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일.


힘이 나는 켄 로치의 영화라.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장식에 대한 내 많은 고민에 지금도 좋은 기준이 되어준다.

장식 내지는 세련됨이 작품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내 말은 갈수록 짧아졌고, 더 짧아지고 싶다.

맨 삶으로부터 맨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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