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엔 여전히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이어도

어제도 봄날 같은 볕이었더니

간밤부터 내려간다던 온도였는데

여전히 볕 아래는 따쉈다.

고추장집 현관 앞 처마 아래 철퍼덕 걸치고 앉아 볕을 쪼이는 시간이 좋다.

선채로 마른 나무 사이에 걸린 별을 보는 밤도 좋지만

마른 나무 사이 동산의 푸른 소나무를 보거나

굴뚝새들이 대여섯 잠시 앉았다 또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는 풍경들을 보는

볕든 마을이 눈부시다.

당신 삶에 바라는 게 무어냐,

어느 노인에게 물었던 한 일화가 떠오른다.

당신으로 만들어진 그늘이 나를 가리우니 그 몸이나 치워주시라,

딱 그거.

생에 그 무엇이 있을 것이냐,

이 볕으로 충분하다 싶은.


눈이 자꾸 침침해서 책을 보는 게 불편하다.

짜증이 일기까지.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이전에 그 많은 시간들을 뭐 했는가 싶을 때가 있더니,

눈이 어둡고 나니 밝은 눈이었던 그 숱한 시간들이 또 이리 안타깝고 애잔하다.

더디지만 그래도 아직 글을 읽을 수 있다!

바지런해지는 요즘의 책읽기.



... 그러니까, 이건 ‘오랜’ 농담이다.

그런데, 이건 ‘가까운’ 우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지금’ 우리의 불똥일지도 모른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주된 이유는

그들이 주장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1948년 제헌헌법 당시 우파들만 참여했는데도

통진당보다 더한 좌파강령(?)이었다지.

노동3권뿐만 아니라 기업에 이익이 발생하면 노동자도 나눠야 한다는 이익분배균점권을

명문화한 건 대한민국을 재건한 보수 세력이었던 거다.

대한민국을 재건할 때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더한 것.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김일성이 쓴 것처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올라가면 이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1945년 4월 임시의정원 38차회의 의사록을 보면, 임시정부의 오랜 운동이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고,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모두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임시의정원이 임시헌장을 반포하면서 채택한 성명서를 보면, 임시정부는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 집권 제 원칙의 채용”을 주안점으로 삼아 헌법을 개정했다고 한다. 백범도 삼일운동 이후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이상을 가지고 혁명적인 정치체계를 수립한 것이 바로 현재의 임시정부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이 되면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지배를 수립할 것이라고 확언했다.’(한홍구의 <역사와 책임> p.178)

그것이 대한민국 제헌헌법이었다.

1945년 4월 임시의정원 의사록에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모두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통진당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입장은 결코 아님, 분명히!

다만 통진당 해산이 박근혜 정부 2주기 선물로 받쳐졌음을 환기하노니.)


“제헌의회(CA) 소집하라!”

우리 세대가 대중적으로, CA사건을 기억하는 마지막 학번일 것이다.

학생운동권이 뜨거웠던, 그 마지막 세대의 선배들을 몇 안다.

‘깃발’(ND)과 ‘강철서신’(NL)의 투쟁이라는 구도로 이어졌던 그 때.

‘NL은 인간성은 좋은데 머리가 나쁘고, PD(ND)는 머리는 좋은데 인간성이 나쁘다’,

그렇게 회자되었던 시절이다.

<깃발>의 MT(민주화투쟁위원회) 진영은

‘자생적인 대중조직보다 소수의 전위들이

목적의식적으로 과학적인 방법론에 근거해 조직한 비합법 전위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수뇌부들이 끌려가는 것으로, 혹은 강철 쪽에 밀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지 못하나,

2000년대 다시 움직임이 있었다고도 들었지만,

누구의 삶이나 수고롭듯이 그들 또한 그러했으리.

CA 끝자락의 한 선배를 기억한다,

학생회장으로 출마했던 그를 지지하던 이들이 기숙사 방에 붙였던 포스터로.

당시 깃발의 명문을 양성하던 문용식이 김근태에 진 빚을 또한 들었다.

고문 앞에 최민을 팔 수 없던 문용식이 당시

보다 대중적 힘이 커서 설마 다치지 않으리라 생각한 김근태를 불고,

이후 김근태의 대공분실 고문 건은 알려진 그대로다.

5공을 끝장낸 결정적 사건이었던 그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는

알려진 게 무엇이었든 깃발(CA) 그룹의 배후를 캐는 과정에서 일어났는 줄 안다.

그 아버지를 영등포구치소로 면회 갔던 적이 있다.

87년을 기억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였다.


국민의 80%가 바라지만 탄핵이 기각되고,

야당이 여전히 야당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 촛불 정국이 그렇게 결론 나 버린다면, 그래서 혼란에 빠진다면,

현실정치 안에 맡겨둘 게 아니라

마침내 제헌의회를 소집해야는 건 아닐까.

물론 이때의 제헌의회는 당시 학생운동권의 소환이라기보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든 초대 의회.

박근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서서히 이는 답답함에서 하는 말이노니.

‘어, 저 뭐야, 그 무슨 흘러간 옛 노래야? 빨갱이 아냐?’

그리 들릴까 분명히 말하노니, 앞뒤 이러저러 맥락과 함께 읽히기로.

“제헌의회 소집하라!”

“제헌헌법 소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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