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 영하 11도의 밤.

바람 거칠고 몹시 추운.

비자 때문에 네팔 대사관 다녀왔다.

머잖은 길상사도 걸었다.

관내 한 제도학교 지원수업 관련 수업계획서를

여러 어른들이며 담당샘이 전화며 메일로 챙겨 오고서야 움직였다. 에고...


부디 읽어주시라, <거짓말이다>(김탁환/북스피어, 2016).

4.16 세월호에서 깊고 차가운 바다 밑 좁고 어두운 선실 안으로 내려갔던 잠수사들 이야기.

그들은 시신을 끌어올렸다고 하지 않았다; 모시고 올라왔다, 라고 했다.

종후와 나래를 모셔오는 과정에서,

그가 겪는 트라우마로 환청과 환상에 시달릴 때,

종후 아버지가 광화문에서 물대포에 쓰러진 나 잠수사를 지키려 끌어안을 때,

종후의 아버지가 모셔온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 진도체육관으로 전송할 때, ...

울었고, 분노했다.


밑줄 긋기.

p.21

(* 21일 새벽 전화)

뉴스에 과장이 섞였다고 추측은 했지만, 오백 명과 여덟 명은 정말 차이가 큽니다. 여덟 명을 오백여 명이라고 속였다면, 이것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거짓말을 한 겁니다. 잠수사가 겨우 여덟 명 뿐이라면 로테이션하는 구조 작업 자체가 어렵습니다. 도대체 이토록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사고 후 닷새 동안이나 계속 천연덕스럽게 누스로 내보낼 수 있는 건가요. 하기야 이렇게 숫자가 부풀려져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기사까지 난 거겠지요.


p.69

빛을 삼켜버리는 완전한 어둠, 어둠을 강요하는 어둠, 너무나도 위험한 어둠인 겁니다.


p.80

그 배에서 이름표를 달고 나온 남학생은 윤종후뿐이었습니다. 평상복으로 자유롭게 다녀도 되는데, 가슴에 이름표를 단 건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나중에 종후 부모님께 들으니, 종후가 어느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윤종후란 걸 알리기 위해, 가방에 있던 이름표를 꺼내 가슴에 달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p.81

원을 그리듯 어깨동무를 하고 뭉쳐... 종후까지 네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겁니다.


p.82~83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줘, 종후부터 데리고 나가고 곧 돌아올게. 다 같이 엄마 아빠 보러 가야지?”

팔목을 쥔 손을 다시 잡곤 당겼습니다. 강력 본드처럼 붙어 있던 손이 너무나도 쉽게 스르르 풀렸습니다.

(* 반에서 키도 제일 크고 몸무게도 가장 많이 나갔다는 종후를 끌어안는다고 안았는데 품에서 미끄러져. 남은 세 아이가 종후를 다시 잡아당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다시 종후를 찾아 안고) “한번만 더 아저씰 믿어. 다시 놓치지 않을게.”


p.85

그날부터, 실종자를 수습한 날엔, 이름을 알든 모르든, 제가 선내에서 모시고 나온 이에 대해 질문을 혼자 던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묻고 묻고 또 묻노라면, 선내에 진입하며 힘들었던 순간은 점점 희미해졌고, 실종자 한 사람을 모시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거듭 선내로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느냐는 질문을 나중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선 제대로 답을 못했지만 이젠 압니다.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던진 무수한 질문들이 저를 다시 선내로 이끈 겁니다.


p.86

사람은 죽어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온전히 죽은 것이 아닐 겁니다.


p.105

맹골수도의 조류는 현란하게 스텝을 밟는 무희 같고, 맹독을 품은 채 달려드는 뱀 같고, 지난 시절 잘못을 벌하는 채찍 같습니다.


p.112

봄이 오니 꽃이 핀다.

꽃이 피니 슬프다.

잔인하구나, 이 봄! (* 1주기 때 유가족이 교실 벽 포스트 잇)

생각해보니 2014년엔 봄꽃을 즐긴 적이 없네요. 그 봄에는 오직 잠수하여 선내로 진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혔는지, 꽃이 피는지, 누가 꽃 아래로 걷고 멈추고 안는지, 꽃가지를 꺾어 거실 꽃병에 꽂아 두는지, 또 누가 시들어 가는 꽃을 밟으며 지나가는지 몰랐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히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고우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지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p.113

저는 실종자들이 침몰한 배에 승선하기 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론 몰랐고 지금도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에 안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제각각 다른 존재인지 압니다. 키나 몸무게는 물론이고, 똑같은 자세로 최후를 맞은 이는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극심한 공포와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마지막 순간일수록, 그 사람은 오롯이 그 사람인 겁니다. 그 차이를, 그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잠수사는 만지고 안고 함께 헤엄쳐 나오며 아는 겁니다. 인간은 결코 숫자로 바뀔 수 없습니다. 바지선에서 철수한 뒤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은, 너는 몇 명이나 수습했느냐는 겁니다. 제가 중요한 것은 수습한 숫자가 아니라 선내에 남아 있는 숫자였습니다.


p.115

실종자를 모시고 나온 잠수사는 용감하고 그렇지 않은 잠수사는 용감하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부분의 잠수사들은 실종자를 모시고 나오기보다 소지품이나 기타 물건을 가지고 올라온 적이 더 많습니다. 순번을 정하고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행동은 금물입니다. 작업이 진척되는 정도에 따라 어떤 잠수사는 가이드라인을 치면서 길을 내고 어떤 잠수사는 물품을 챙겨 나오는 것뿐입니다.


p.118

침몰한 배는 정지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조류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지요. 더하여 이 배에는 4월 16일 아침까진 살아 있었던 실종자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들까지 가세하여 육지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들을 만들지요. 그 소리는 기체인 공기가 아니라 액체인 물을 통해 제 귀에 닿습니다. 물의 밀도는 공기의 밀도보다 높기 때문에 약 네 배 정도 더 빨리 소리가 전달됩니다. 또 소리가 두 귀에 땋는 시간차가 줄어드는 탓에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평범한 사람은 수중에서 소리를 듣는 경험을 평생 한 번 할까 말까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지에선 맡기 힘든 냄새들이 퍼집니다. 인간의 귀와 코엔 닿지 않을 만큼, 침몰한 배가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또 아주 약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는 예상보다 잦지요.


p.113~125

(* 강나래를 모시고 나온 이야기)


p.121

잠수사인 제가 실종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실종자가 저를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지 마지막입니다... 그때 실종자의 얼굴이 마스크 위로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마스크를 지나쳐 올라가지도 않고 다시 내려가지도 않은 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멈췄습니다. 눈을 꼭 감은 채 잠을 자듯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평온한 표정을, 진도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유가족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134

바디 팩 삼백 개도 주지 못할 만큼 이 나라가 가난한가 그런 생각도 솔직하게 했습니다. ...정육면체 쇠틀로, 안은 텅 비고 밖은 철망을 두른,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를 주사위 모양의 물체가 바지선에 도착한 겁니다. 멍텅구리 정육면제, ‘멍텅’. 실종자를 한 분씩 모시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시신을 한꺼번에 넣어 끌어올리라고.


p.135

실종자의 존엄은? 시신들이 멍텅에 담겨 한꺼번에 올라오는 모습이라니. 산 자에 대한 예의만큼이나 망자에 대한 예의도 지켜야 합니다.


p.142

(* 취재기자) 눈물에 가장 가까이, 분노에 가장 가까이, 그리움에 가장 가까이,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란 명령이었습니다.


p.148

-시신을 함부로 찍어선 안 됩니다. 부도덕한 짓이에요.(* 외신기자 마리아) 시신이 도착하면 애도하며 눈물만 훔쳤습니다.


p.201

가령 제가 ‘반드시’ 있다고 예상하는 곳을 짚어 나가면서 이유를 댑니다. 다음으로 조치벽 잠수사가 몇 군데는 동의하고 몇 군데는 생각이 다르다면서, ‘반드시’ 이런 곳을 더 수색해야 한다며 의견을 냅니다. 그다음엔 다른 잠수사가 끼어들고 또 다른 잠수사가 끼어들지요. 다섯 명이 대화를 나누면, 다섯 가지 다른 ‘반드시’가 생깁니다. 겹치는 곳도 있고 혼자만 주목하는 장소도 있습니다. ‘반드시’를 계속 강조하다가 대화가 뚝 끊어집니다.

말은 안 하지만, 혹시 미수습자들이 우리가 방금 ‘반드시’라고 하며 주목한 곳에 없으면 큰일인데... 맹골수도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땐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그렇게 반드시를 다섯 번 언급한 날은 다섯 배 쓸쓸하고 열 번 되뇐 날은 열 배 공허합니다. 스무 번 강조한 날은 잠들지 못하고 눈물 쏟습니다.


p.224 

 몸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잠수한 것은 이 나라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잠수사들은 현업 복귀가 어렵습니다. 치료비를 중단한 정부가 잠수사들의 생계까지 살펴 줄 턱이 없습니다.

... 법대로 한다면, 저나 잠수사들이 맹골수도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징집 대상이 아닙니다. 법 때문이 아니라 돕겠다는 마음으로 간 겁니다.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진 이들을, 시신이라도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 그 작업을 마침 내가 할 수 있으니 돕겠다는 마음, 내 몸이 힘들더라도 조금 더 빨리 실종자를 찾겠다는 마음! 잠수사들이 마음을 한 일을 정부는 법으로 판단한 겁니다.


p.271

(* 교실에서의 일인극) 기쁨 다음에 슬픔이 올 때 그 슬픔은 기쁨을 바탕에 둔 슬픔이고, 그다음에 놀람이 올 땐 기쁨과 슬픔을 바탕에 둔 놀람이며, 그다음에 두려움이 올 땐 기쁨과 슬픔과 놀람을 바탕에 둔 두려움인 겁니다.


p.307

보상금은 국민이 낸 세금을 지급되는 게 아니다. 국가가 먼저 보상금을 유가족에게 지급하고, 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서 이미 지급된 돈을 받아낸다. 이 방식은 정부가 먼저 제안했고, 성수대교 붕괴나 대구 지하철 같은 대형 재난 때도 같은 방법. 다른 참사에 비해 유가족에게 지급된 보상금이 지나치게 많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보상금을 받는 건 유가족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 이 참사는 일반 교통사고 수준으로 책정. 희생 학생들도 도시 일용직 노동자 기준으로 산정. 아이들의 재능과 꿈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가장 낮은 수준으로 일괄 정리. 유가족이 받은 돈은 이 보상금에 희생자들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금과 국민성금을 합친 것. 세금 한 푼 나간 게 없다!


p.340

쓰러진 나경수 잠수사를 윤태식, 종후 아빠가 물대포를 맞으며 끌어안았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막겠습니다. 지켜드리겠습니다.”

젖은 가슴이 제 가슴을 덮었습니다. 포옹 외에는 답이 없는 순간을, 맹골수도에 이어 광화문 거리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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